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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 Nov 16. 2022

그날의 기억 (2/2)

22년 5월 14일

 2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했던 수술이 20분도 안 돼서 끝났다. 엄마의 허벅지를 열었는데 이미 근육이 다 괴사 해서 피 한 방울이 안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억지로 많은 약물을 투여해서 환자가 너무 힘들어한다고, 곧 사망할 수도 있다고 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란다.

 그냥...... 어이가 없었다. 믿기고 안 믿기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어이가 없었다. 이게 지금 현실인지 꿈인지도 알 수 없었다. 그냥 사망만 남았다고 했다. 연명치료를 할 건지, 장기 기증을 할 건지 여러 가지를 물었는데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엄마라면 연명치료를 선택하지 않을 것 같아서. 또 엄마가 너무 괴로울까 봐 안 한다고 했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너무너무 아파서 내 마음에 누가 못을 대고 망치로 치는 것 같았다.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처음으로 너무 아파서 주먹으로 가슴을 막 쳤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께 구구절절 오늘 있었던 일을 다 말했다. 동생이 옆에서 드라마 찍냐고 그만하라고 뭐라고 했지만, 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냥 서러우니까, 난 이런 게 처음이니까...... 가슴이 수 만 갈래로 찢어진 것 같았다.     


 이제 남아있어도 엄마를 못 본다고 집에 가도 된다고 했다. 동생은 집에 간다고 했다. 나는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엄마를 혼자 두고 그 병원을 떠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냥 남아있겠다고 했고, 아무 데나 앉아있을 수 있는 곳에서 그냥 무작정 남아서 눈에도 잘 들어오지 않는 TV를 봤다.


 TV에서 여자들이 자신을 안 만나 주는 것은 엄마 때문이라며 엄마를 살해한 30대의 뉴스가 나왔다.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어떻게 엄마를 죽일 수 있는 걸까... 다시는,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는 건데 어떻게 엄마를 죽일 수 있는 걸까.


 그렇게 우울하게 새벽에 병원 아무 곳에서 앉아있다가 전화가 왔다. 엄마를 보게 해 주겠다고.

 엄마가...... 곧 죽기 직전이라서.


 울면서 달려갔다. 동생이 전화를 했지만, 동생은 도저히 못 보겠다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엄마를 직접적으로 볼 수가 없었다. 화면으로만 봤다. 티브이 너머로 있는 엄마를 보면서 하염없이 우는데... 


 엄마가, 엄마가 숨을 쉬고 있었다.

 산소 호흡기 때문이었지만, 엄마가 숨을 쉬고 있었다.


 그 순간 엄마가 살아날 것 같았다. 연명치료든 뭐든 하면 살아날 것 같았다. 화면을 부여잡고 30분을 가까이 울었다. 너무 울어서 눈이 아플 때까지. 그런데 30분이 지나니 나가야 한다고 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의료진 분들에게 민폐를 끼칠 수 없으니 다시 내가 기다렸던 곳으로 갔다.                    


그렇게 새벽 5시까지 커피랑 각성제 먹으면서 억지로 버텨가며 있다가 연락이 없어서 일단 엄마 집으로 갔다. 가니까 엄마 냄새가 나서 또 얼마나 울었는지.    

 

 그 이후로는 벨소리만 들리면 무조건 바로 전화를 받았다. 전화 벨소리도 가장 크게 해 놨다. 너무 혼란스러우니까 누군가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어서 내가 다니는 병원에 정신과에 갔다.  

    

 들어가기 전 병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엄마의 연명치료를 할 건지 물었다. 나는 당연히 할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가격이... 가격이 100만 원이었다. 그것도 하루에. 하루에 100만 원. 내가 한 달 겨우 일해서 100만 원 벌까 말까였는데, 하루에 100만 원이 나간다고 했다. 동생한테 전화했다. 동생은 반대했다. 동생의 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 서운했다. 사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안 하는 게 맞았다. 우리는 너무 어려 돈도 없고, 엄마도 너무 괴로울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담당의사 선생님과 이야기하면서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 착잡하고 슬픈 심정으로 정신과 상담실에 들어가서 선생님과 이런 얘기를 하고 있던 도중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나는 힘겹게 엄마의 담당의사 선생님께 연명치료를 안 하겠다고 했다. 그 말을 하면서도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그런데 불행 중 다행히도, 엄마가 지원받는 것이 있어서 다행히 100만 원까지는 안 나온다고 하셨다. 지원이 대부분 된다고 했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칠 수 없어서 죽자고 생각하고 한다고 했다.


 몇몇 사람들은 돈이 없는데 뭐하러 연명치료를 하겠다고 하냐, 그게 더 괴로운 거 모르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른다. 화면 너머로 엄마가 숨 쉬고 있는 것을 봤을 땐, 그냥... 연명치료를 하면 엄마가 살 것 같았다. 이게 정말 기회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엄마 집에 가서 한참 울다가, 엄마 집을 정리를 했다. 엄마가 며칠간 아예 꼼짝을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에 집은 완전히 엉망이었다. 나는 다이소에서 청소 물품을 사 와서 하나둘씩 정리를 했다. 그러다가 엄마의 옷 냄새를 맡으면 또 눈물이 났다. 그리고 그날은 엄마를 보러 갈 수 없었다.


 그다음 날 아침에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연락이 올 때마다 심장이 덜컹거렸다. 다행히 어제와 다른 점이 없다고 했다. 내가 보러 갈 수 있냐고 물으니, “어제 보셨잖아요.”라고 했다.

 “아... 그러면 못 보는 건가요?”

 “어제랑 똑같아요. 그냥 그러고 계세요.”

 너무 기분이 나빴지만 네....... 하고 끊었다. 


 빨래 방에 가서 엄마의 옷 중 일부를 빨았고, 정말 몇 년 만에 사촌언니와 통화를 했다. 사촌언니와 엄마도 굉장히 각별한 사이였는데, 언니는 먼 해외에 있어 답답하다고 울었다. 언니가 우는 소리를 들으며 나도 울었다.     

 그러다가 엄마가 있는 병실에서 엄마의 손발이 너무 차가우니 수면 양말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이 날씨에 수면 양말을 파는 곳이 없어 등산 양말 2개와 엄마는 식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마침 또 가정의 달이고 하니 그동안 이런저런 핑계로 준 적이 거의 없었던 카네이션을 샀다. 다행히 병원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수면 양말도 샀다. 



 병실로 올라갔는데, 엄마를 볼 수 없다고 했다. 솔직히 너무 짜증 나고 답답했지만 어쩔 수가 없으니... 그냥 조용히 나왔다. 엄마는 내가 왔다 간 것을 알고 있을 거니까. 대신 간호사님께 엄마의 옆에 이 꽃이 보이게 해달라고 했다.


다시 엄마 집으로 가서 배달을 시켜먹었다. 먹다가 또 울었다. 엄마가 해 준 된장찌개와 계란말이를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또 청소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엄마...... 너무 힘들지? 이제 가도 된다.... 나랑 동생이랑 잘 살아볼게...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얼마 후,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위독하다고. 곧 임종하실 것 같다고.  

    

 그 이후로는 그냥 패닉이었다. 울면서 달려갔다. 원래 따로 올라오면 안 되는데 그냥, 그냥 나 혼자 올라갔다. 그리고 엄마를, 화면 속에 엄마를 부여잡고 울었다. 화면 안에는 엄마와 내가 준 꽃이 놓여있었다. 너무 사랑하는 엄마인데,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엄마인데,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했다. 그동안은 엄마에게 목소리를 들려주지 못하다가 그때 처음으로 마이크를 연결해 말을 전할 수가 있었다. 그냥... 뭐라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 사랑해, 엄마 너무 예쁘다. 사랑해. 앞으로도 영원히, 엄마, 다음 생에도 우리 엄마와

딸로 만나자. 그때는 내가 엄마를 낳아서 엄마의 엄마가 될 게.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 사랑해. 엄마 가슴 아프니까 미안하다는 말은 안 할게.      


 그리고 엄마가 가장 좋아했다던 김현철의 왜 그래를 불러줬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너의 얼굴이 말이 아냐 말해봐

왜 그래 나쁜 일인 거야?

나랑 눈도 맞추질 못해 지금 넌     

도대체 왜 아무런 말도 없는 거야?

미안해서 못하는 거야

하기 싫어 안 하는 거야?     

도대체 왜 아무런 말도 없는 거야

내가 알면 안 되는 거야?

이젠 할 말도 없는 거야    

 

 의료진분들이 점점 엄마 곁에 있던 것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때 동생과 아빠가 도착했다. 아빠를 보자마자 아빠가 너무 원망스러워서... 너무 원망스러워서 아빠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빠 때문이라고. 엄마가 저렇게 된 건 다 아빠 때문이라고. 그러고선 또 울었다. 아빠는 말이 없었다. 그것조차 원망스러웠다.     


 동생 태현이도 와서 마이크에 대고, 엄마 걱정 마세요, 잘 살게요.라고 했다. 애써 담담한 척 하지만 동생의 속도 말이 아닐 것을 알았다. 우리는 너무 어렸을 때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동생은 항상 엄마에 대한 애정결핍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면 내가 달래줘야 했고, 엄마는 길에서 아이가 우는 소리만 들어도 동생 생각이 나서 울었다고 했다. 그랬던 사이였다. 나도 어린아이였지만, 동생은 이제 스물둘 밖에 되지 않았다. 아직 어린애였다. 둘 다.   

  

 그리고 담당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2022년 4월 30일 오후 9시 41분 엄마가 죽었다.


 믿기지가 않았다. 산소호흡기가 계속 산소를 주입하고 있어서 화면 너머의 엄마는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엄마가 죽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냥 암 전이 었다.  

   

 왜냐면 그때 내 세상이 끝났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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