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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 Nov 16. 2022

슬픔을 느끼지 못해 슬프다.

22년 5월 10일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생각보다 씩씩하네?’다. 


 다들 나보고 씩씩하다고 한다. 그런가? 난 잘 모르겠다. 나는 우울증 약을 1년 넘게 복용 중이다. 갈수록 더 안 좋아지니, 계속 약의 강도를 올리다 보니까 감정의 기복이 없어졌다. 그래서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면 상처도 잘 안 받고 –물론 심한 말을 하면 받지만- 그러다 보니 그냥 무덤덤해졌다. 그래서 그런가?     


 엄마가 돌아가시고 딱 2번 울었다. 

 엄마를 화장하고, 그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 엄마를 품에 안았을 때.

 텅 빈 엄마 집에 가서 엄마 냄새가 나는 옷을 치울 때.     


 처음에는 슬퍼하지 않는 내가 너무 슬펐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러다가 괜찮아졌다. 오히려 슬퍼하지 않는 게 좋은 거지? 스스로 합리화했다. 그러다가 또 슬퍼지고... 그냥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또 어떤 일로는 어제 약을 새로 받으려고 병원에 갔다. 이제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 약을 받을 시간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내 기억에... 약이 1주일치 남아 있던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갔더니 내가 지난주에 병원에 왔다고 했다. 한 달치 약을 타간지 1주일밖에 안 지났다고 했다. 이게 정책상 1주일 분이 남았을 때부터 추가 처방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당황스러웠다. 아니? 내 생각에는 한 달 전에 온 것 같고 엄마가 위급하실 때 상담받으러 한 번 왔는데, 이런 일이 있으면 나는 또 땅굴을 판다. 내가 진짜 정신병이 있구나 하는 우울이 나를 덮친다. 그럼 집에 가서 또 잔다.


 엄마는 코로나 확진자였기 때문에 동생과 나는 엄마의 임종조차 화면으로 봤다. 엄마의 시체를 빼지 못해서 그다음 날 아침에 시신 가방에 담겨있는 엄마를 봤다. 수의도 입히지 못하고, 입관도 보지 못했다. 염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너무 슬프지 않았기 때문에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너무 화가 났다.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말이다.     


 마음이 너무 아픈데, 아프다고 생각하는데 안 아프다. 그 사실이 때로는 나를 미치게 한다. 내 감정조차 나 스스로 결정하고 느낄 수 없으니... 하긴, 난 슬프다고 느끼는 순간 죽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카페 한구석에서 엄마와 나눴던 대화를 보고 눈물이 났다. 어마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카톡에 1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다. 앞으로도 이 1이 사라질 일은 없겠지. 눈물이 나는데, 분명 가슴이 아픈데 가슴이 안 아프다. 그냥 나는 가만히 있는데 눈물이 주룩주룩 났다. 운다고 인지도 못하고 눈물만 줄줄 흘리고 있었다.     

 어떨 때는....... 어떨 때는 그냥 내가 대신 죽었더라면 하는 마음이 든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 없이 자랐다. 그래서 엄마와 함께 했던 지난 행복이 너무 짧다. 그래서 더 사랑했다.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제 행복해지나 했는데, 효도도 한 번 해보지 못했는데...

 누가 상주는 죄인이라던데, 맞는 말이다. 나는 죄인이다. 내가, 내가.......

 내가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엄마.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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