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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Tree Jul 19. 2019

인사글

내가 글쓰기를 결심한 이유

아버지는 늘 책을 읽고 계신다. 은행에서 근무하시는 아버지는 경제학, 법학 등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책들부터 아버지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생물학, 물리학 등 자연과학과 관련된 책들도 즐겨 읽으신다. 피곤한 한 주를 보내고 집에서 쉬는 주말에 소파에 누워 책을 읽다가 잠드는 모습을 보면 정말 책을 읽고 계신가 하는 의문도 가끔 든다. 하지만 그런 의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나중에 읽은 책들에 대하여 통찰력 있는 이야기를 해주시곤 한다.


어머니 또한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책을 즐겨 읽으신다. 특히 아버지에 비해 문학을 많이 읽는데, 고등학교 때 문학에 빠져 공부는 하고 책만 읽다가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감성이 풍부하다. 그리고 어머니는 종종 아버지가 읽는 비문학을 가져가 읽는다. 아버지도 어머니가 읽는 비문학 도서를 가끔씩 읽는다.


이런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나는 불행히도 책을 많이 읽는 편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는 꽤나 많은 양의 책을 읽긴 했지만, 이는 내가 정말 원해서였다기 보다는 책을 몇 권 읽으면 부모님이 내가 원하는 물건을 사주셔서였다 (물론 그러면서 정말 좋아하는 책들이 생기기도 했다).


내가 본격적으로 책과 거리가 멀어지게 된 것은 중고등학교 과정을 거치면서였다. 중학교 때부터 거칠게 들어오는 입시에 대한 압박은 내가 책뿐만 아니라 공부를 제외한 모든 것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결국 나는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유학을 떠났다. 그러나 유학 생활 9년 동안도 학교에서 필수로 읽히는 책들을 제외하고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는 스포츠와 SNS에, 대학교 때는 게임과 음악에 빠져 책과 거리는 점점 더 멀어졌다. 유학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의 대학원에 입학하고 나서는 읽어야 할 "리딩"이 너무 많아져 수업을 위해 읽는 양이 늘어났으나, 이도 내가 진정으로 원해서 하는 독서는 아니었다. 부모님은 나의 독서량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하셨다.


그런 내가 남들보다 조금 늦게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남들보다 훨씬 편하다는 의무경찰인데, 예민하고 통제를 싫어하는 내 성격 때문에 적응을 하기 힘들어 하고있다. 게다가 20대 초반 남자들의 대화 주제는 주위에 "여사친"이 훨씬 더 많은 나의 관심사와 너무 다르다. 평소 생각이 너무 많고 세심하며 단순한 대화보다는 깊은 대화를 좋아하는 나는 어느새 부대에서 "군대에서 적응도 못하는 온실 속 화초"로 낙인이 찍힌 듯하다.


신병의 우울함을 이해해주고 달래주기에 군대는 너무 가혹한 곳이다. 아직도 신병 딱지를 떼지 못한 소위 말하는 "짬찌"인 군대에 나의 속마음에 정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사회였다면 하루 종일 핸드폰만 보고 있을 텐데, 군대에선 그마저 불가능하다 (물론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군대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보여주는 사례이긴 하다). 의무경찰의 주된 역할은 시위를 막거나 주요 시설을 경비하는 일인데, 출동을 나가게 되면 경찰 버스 안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매우 길다. 처음 전입을 와서 부대에 적응을 못하는 예민한 신병에게 이 시간은 잡념과 우울감에 사로잡혀 있는 시간이 되었다. 나만을 위한 조치가 시급했다. 도대체 어떤 일을 해야 조금이라도 우울감을 덜어낼 수 있을까.


뭔가를 읽으면 잡념과 우울감이 사라지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그래서 부대에 있는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재미있어 보이는 책이 없으면 집에 있는 수많은 책을 가져와 읽어보기로 했다. 집에도 없으면 책을 사서라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내가 책을 읽는 것을 누구보다 환영하는 부모님은 내가 책에 지출하는 비용을 모두 지원해주시겠다고 했다. 나는 부대에서 몇 권, 집에서 몇 권, 온라인 스토어에서 몇 권의 책을 골라 독서를 시작했다.


독서는 신기했다. 나는 생각이 많은 내 성격상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사상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에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많았다. 게다가 그 사람들은 나보다 더 논리적으로 생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 책을 이미 펼쳐냈다.


또 독서는 내가 얼마나 무지한지 가르쳐주었다. 어떤 책은 나에게 새로운 정보를, 어떤 책은 내 무의식에 있는 특정 사상과 신념이 얼마나 그릇되고 위험한 지를 알려주었다. 분명 많은 독서를 한 것도 아닌데 나 자신이 계속 부끄러워졌다. 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늘 마련해준다.


가장 신기한 독서의 효과는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많은 책을 갈망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책을 읽고 나면 깨달음과 함께 의문이 생기고,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결국 또 독서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독서에 대한 조언을 할 때 '좋아하는 책부터 시작하라'는 말을 이제 이해했다. 결국 읽다 보면 점점 독서에 대한 스펙트럼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서 초보자들은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모른다. 어떤 책을 골라야 하는지도 모른다. 나만 해도 책을 고를 때 나보다 독서량이 많은 친구에게 많이 의지한다. 책을 고르는 과정은 읽는 과정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책 추천은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책을 공유할 때 필수적이다. 그래서 브런치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다.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친구의 추천에 의해서인데, 사실 시작하기로 마음먹은지는 꽤 오래되었다. 자대배치를 받자마자 브런치를 소개받았는데 벌써 일경으로 진급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 밤마다 혼자서 끄적끄적 쓴 글들은 나중에 읽어보면 남들에게 공개하기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형편없었다. 계속 수정하고 다시 읽어봐도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생겼다. 그래서 첫 글 게시가 계속 미뤄졌는데, 문득 이러다가 시작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대단한 작가도 아니고 복무기간동안 잠깐 동안이나마 글을 써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하는 일이라 부담을 갖고 글을 게시하기 보다는 생각나는대로 올리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사람들의 흥미를 크게 유발하지 않더라도 글과 큰 관계도 없는 사진이나 그림을 억지로 가져와 첨부하기보다는 편하게 글만 작성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아직까지도 독서에 대한 지식이 많이 없고 전문적인 작가도 아니다. 생각도 짧고 좋은 책을 구별하는 능력도 떨어진다. 심지어 한국어로 글을 쓰는 것 마저 나에게는 나름 엄청난 도전이다. 9년 동안 영어로 글을 썼고 한국어로 글을 쓴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내가 쓰는 독후감을 읽고 좋은 책을 읽게 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로 만족할 것 같다. 비록 남들 다 가는 군대에서 제대로 적응도 못하는 "폐급" 신병이 쓰는 형편없는 글이지만, 한 두 명이라도 내 글을 읽으며 생각을 공유하고 서로 책을 추천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 독서와 글쓰기가 더 즐거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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