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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ing Tree Sep 03. 2019

[독후감 시리즈]나라는 개인을 찾아가는 과정

개인주의자 선언 - 문유석

입대 직전부터, 아니,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군대 가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리고 한국인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만한 말이다. 군대라는 조직의 억압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이 없을 것이다. 특히 나는 외향적인 성격이긴 하나, 동시에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누군가 억압적으로 통제하려고 하면 고통스러워한다 (반항을 한다기보다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 몸에 물리적인 증상들이 나타난다). 이런 개인주의적 성향은 약 10년간 미국에서 혼자 유학생활을 하며 더 심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한다.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을 그가 속한 집단에 의해 판단하기도 한다. 그런 판단을 삼가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실제로 나는 전에 친구들과 판단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판단이 왜 나쁜지 이해하지 못하기도 했다. 나에게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이 사회가 세운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모든 한국인이 그렇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나의 이런 모습은 많은 한국인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한국인들의 성향은 문유석 판사의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비판된다.


내가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한 이유는 꽤나 단순했다. 내 개인주의적 성향이 집단주의적 성향보다 강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판사가 쓴 에세이라니, 사람의 사회적 지위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나에게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어야 할 명분은 충분했다.


이 책의 초반부를 볼 때는 소위 말하는 "집돌이/집순이"들을 위한 책이라 생각했다. 아, 이런 내용은 내향적이고 집에 있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공감하겠구나. 그리고 이 사회의 집단주의가 어떻게 세상을 좀먹고 있는지 보여주겠구나 (책에서 문유석 판사는 앞서 언급한 한국인의 부정적인 측면을 집단주의와 군대문화에서 나왔다고 평가한다). 내 예상이 틀렸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 책은 그보다 더 깊은 내용을 담고 있다.


흔히 개인주의자라고 하면 사회와 동 떨어진 사람, 집단에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 이기적인 사람 등으로 인식된다. 그런데 사회의 공익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판사가 개인주의자라니. 역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문유석 판사는 단순히 "개인주의자 만세! 집단주의 망해라!"를 외치지 않는다. 집단주의적 사고를 교육/사회에서 끝없이 강요받고, 억지로 소속감을 느끼게 만드는 조직문화와 현실을 우려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불행함은 "헬조선"에서 태어나서 그렇다며, 이민을 가면 다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그럴 일은 없다"라며 일침을 날리기도 한다.


문유석 판사가 생각하는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는 다르다. 오히려 자기 자신을 존중해야 하고 그만큼 남을 존중하면서 그들과 같이 살아가는 것이 개인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인간에게 사회는 필수적이다. 문유석 판사는 덧붙여 우리가 함양해야 하는 사회, 그리고 이를 위해 필요한 개개인의 노력을 알려준다.


내 주변인 중 한 명은 이 책을 이렇게 평가했다.


"뒤로 갈수록 책이 제목이랑 상관이 없어져."


이는 책이 정말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개인주의는 개인만 잘 살면 되는 것이 아닌, 모두가 잘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뒤로 갈수록 사회와 집단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 것이다. 주제와 동떨어지는 책이 싫어 이 책을 그만 읽었다는 그 사람에게 책을 끝까지 읽고 깊이 생각해보라고 조언을 해주고 싶었지만, 이는 너무 주제넘은 일인 것 같아 그러지는 않았다.


집단이, 공동체가 무의미한 사회는 없다. 우리는 모두 특정 집단에 소속되어 있고 가끔은 그 집단을 위해 우리 스스로를 희생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가끔은 집단의 힘에 의해 내키지 않는 일을 할 때도, 희생을 강요받을 때도 있다. 희생은 공동체 생활을 할 때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미덕이기도 하지만, 그 무엇도 개인의 자유를 강제로 빼앗어가서는 안된다. 마음도 내키지 않는데 모두를 위해서 희생을 강요당한다면, 그래서 나에게 소중한 것을 빼앗긴다면 희생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집단 구성원의, 그리고 국민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함양해야 할 사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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