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을 밝혔을 때 당신의 반응
"팀장님, 저 휴직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저... 조울증을 앓고 있어요."
스타트업에서 대기업으로 갑작스럽게 이직을 했다. 전 직장에서의 임금체불이 이직의 출발선이 되었고, 너무나 운이 좋게도 단 한 번에 합격, 믿기지가 않았다. 내 생애 이런 회사를 다니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채용이 된 것에 진심으로 기뻤고 감사했다. 그러나 그 감사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절망했다. 임직원 5명이 일하던 곳에서 700명 이상이 일하는 곳으로 오자 처음 회사를 다니는 사람처럼 모든 것이 낯설고 무섭고 어려웠다. 대기업 수준에 맞게 내로라하는 사람들도 많아 보였다. 매일 같이 나 자신이 작아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내 능력이 부족하다고 탓했고, 근무 시간을 갈아 넣었다. 그렇게 결국 탈이 났다. 힘이 들어 죽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찼다. '이대로는 진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이직 3개월 만에 휴직을 하겠다고 말했다.
정말 잘 보이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가장 보이고 싶지 않은 나를 드러내게 되었다. 조울증이라는 병을 앓아왔고 현재 건강 상태가 많이 좋지 않다라며 일을 못하겠다고, 쉬어야 할 것 같다고... 그 말을 하기까지 참고 또 참고 버텼는데 결국 내뱉으면서 속상하기도 조금은 후련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 병에 대해 알게 된 회사 동료들은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팀장님은 내가 항상 밝은 모습이라 그런 병이 있을 줄 전혀 몰랐다고 했다. '네가? 조울증이라고?' 팀장님은 이런 물음표를 가득 안은 표정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었다. 휴직 소식을 듣게 된 동료들이 한 명씩 나에게 위로의 말을 전해주었는데, 그들의 반응이 내가 생각한 것과는 너무도 달라 나 또한 충격이었다.
누군가는 조울증에 대해 기존 배경 지식이 있어 현실적이고도 따뜻한 위로를 건넸고, 누군가는 본인과 가족에게 크나큰 상처가 된 일과 그로 인해 가족이 우울증에 걸리게 된 이야기(다른 동료들은 전혀 모르는)를 하며 나를 감동으로 울리기도 했다. 그리고 몇몇 동료들 외에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내 병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 내 병에 대해 아는지 모르는지도 모르게 이전과 똑같았다. 조울증을 밝히면 나를 기피하고 멀리하지 않을까 염려했던 것이 다 기우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정신 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태도가 과거보다 관용적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정신 질환자 자체이다. 겉보기엔 절대 알 수 없는, 본인이 커밍아웃을 하면 "네가?"하고 놀랄 그런 정신 질환자들이 인간관계 속 곳곳에 있다고. 나의 경우 그 사람이 나 자신인데, 나조차도 '정신 질환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좋지 않으니까.'라고 생각하는 편견덩어리라 회사 동료들의 따뜻하고 변함없는 태도가 놀라움으로 다가올 정도로 인식이 왜곡되어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다면 정신 질환을 감기처럼, 당뇨병처럼, 암처럼 그런 질병으로 환자 본인도 타인도 생각하는 것이 당연해야 하지 않겠나.
- FINE -
어딘가에서 멀쩡하지 않은데 괜찮은 척
살아가고 있을 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