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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ine Jun 18. 2024

우울, 퇴사 그리고 도피한 결과

죽고 싶을 만큼 심각했지만

 퇴사한 지 6개월 째다. 작년 새로 들어간 회사에서 질병으로 인한 휴직, 복직을 하고는 결국 퇴사로 끝을 냈다. 퇴사 후에도 많이 아팠다. 매주 병원을 가고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었다. 계속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시 입원을 할까 생각하다가 병원이 아닌 제주도로 향했다. (회사에서 늘 상상했다. 혼자가는 제주도를...) 무작정 혼자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다. 여행가는 당일, 서귀포의 어느 호텔에 6박 7일을 예약했고 예전에 남편과 타봤던 같은 차를 렌트했다. 오후 5시 쯤 공항에 내려 렌트카를 끌고 서귀포까지 1시간 넘게 운전해서 호텔에 도착했다. '정말 왔네. 혼자.' 32년 살도록 혼자 여행은 처음 온 거였다. 게다가 아픈 몸을 이끌고 삶으로부터 도망쳐 온 여행이었으니 제대로 낯섬을 경험한 순간이었다. 


 이렇게하면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싶어서 떠나왔는데 일단은 배가 너무 고팠다. 제주도까지 왔으니 맛집을 가고 싶은데 1인이라고 하면 가게 주인이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적당히 메뉴만 제주도스러운 곳으로 찾아갔다. 고기국수집에 가서 1인분을 시키고 앉아있는데 불편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젊은 여자가 혼자 왔나?', '왜 저 사람은 혼자 온 걸까?' 이런 내 머릿속에서만 들리는 말들이 나를 괴롭혔다. 누구도 그런 눈총을 주지 않는데 혼자서 그런 생각들로 가득차 고기국수를 허겁지겁 먹고 호텔로 돌아갔다. 혼자가 되고 싶었으나 혼자가 불편하고 어려운 나였다. 헛배가 찬 상태로 호텔로 돌아왔고, 다시금 여기에 온 이유가 되살아났다. 조울증으로부터, 현실로부터의 도피.


 도피가 안식처일리는 없다. 그냥 살아야겠으니까 마지막 힘을 다해 행동해 본건데 역시나 불편하고 불안하다. 결국에는 탈이 다 나고 말았다. 두통이 끊임없이 지속됐고 뒷목과 어깨 부근 근육통에 시달렸다. 제주도까지 와서 호텔방 안에 지내야 하는 처지의 내가 또 처량하게 느껴졌다. '뭐... 그래도 여기까지 혼자 온 게 어디야.' 애써 처량한 기분을 떨치며 스스로를 보살폈다. 푹 쉬게 해주고, 호텔에서 보이는 바다뷰를 보며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고, 좋아하는 로맨스 영화를 보고 웃으면서 조금씩 몸과 마음을 회복시켰다. 안식처까지는 아니지만 도피처치고는 안락함을 느꼈던 것 같다. 그렇게 차츰 자살을 생각하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잠시 자살에 대한 진짜 내 생각을 이야기 하자면... 나는 진심으로 죽고 싶지 않다. 그런데 조울증이라는 병은 심각하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이 병이 발병하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거의 해본 적이 없었는데, 병을 앓고 난 이후에는 습관적으로 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잘 살다가도 뭐 하나 힘들어지면 '막막하고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불쑥 들기도. 너무 쉽게 삶을 포기하고자 하고 자주 우울함을 느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나를 돌보고 관리하고, 아프면 바로 병원을 가서 상담하고 약을 복용해줘야 한다. 8년 된 환자가 느낀 조울증을 극복하는 노하우의 전부랄까? 기본적으로 내가 나를 보살피고 나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게 뭔지, 뭘 해줘야 할지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우울과 불안이 덜어진다. (까다로운 자신과 살아가는 방법 같기도 하네.)


 무튼 제주도로 간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 곳에서 10일을 지내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바로 우울감으로부터 회복되진 않았지만 점차 좋아졌다. 인간 관계도 운동도 일도 하나씩 늘려가며 삶의 균형을 맞췄다. 제주도 여행을 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는데 우울한 감정이나 자살에 대한 생각은 심각한 때의 10%정도로 낮아진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미래 걱정, 돈 걱정을 끌어안고 스트레스를 왕창 받는 날이면 한없이 자존감이 바닥치고 우울의 바다로 떠내려가긴 하지만... 제주도 때의 경험을 살려 다시 나를 구출해 낸다. 몸에 좋은 걸 먹게 하고, 피곤할 땐 일을 덜 하게 하고, 뭔가 돼보겠다는 생각 대신 뭐가 돼도 좋다는 생각을 가져보게 한다. 내가 나를 알고 행동하다보니 효과는 즉방이다. 이제보니 그 때 난 도피가 아닌 삶을 직면했던 것이었을까? 아마 그랬던 게야..! 



- F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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