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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갱 Mar 06. 2021

대추고

몸에 좋은 것이 입에도 달기 위해서

준비물

대추 200g (밖에 없었다), 물 800ml, 흑설탕 약간


만드는 법

1. 대추를 물에 헹구고 식초 물에 잠시 담가 둔다.

2. 주름 사이 먼지를 잘 제거하고 (칫솔을 활용하면 좋음) 찬물에 여러 차례 씻어내준다.

3. 뜨거운 물 800ml을 대추에 부어준 후 1시간 정도 불려준다.

     - 보통은 바로 끓이는데, 내가 참조한 레시피에서 좀 더 잘 말랑하게 하기 위해 팁을 주었다.

4. 1시간 후 물과 대추를 약불로 1시간 정도 끓여준다. (중간중간 으깨준다)

5. 다 삶고 나면 20~30분 뜸을 들여준다.

6. 대추물은 따로 담아두고, 삶아진 대추를 체에 걸러 씨와 껍질을 분리해준다.

7. 어느 정도 걸러진 것 같으면 대추물을 부어 한번 더 완벽하게 걸러준다.

8. 농도를 확인한 후, 취향에 따라 흑설탕을 넣고 필요한 만큼 살짝 더 끓여준다.

9. 유리병에 담아 보관한다.



 대추라는 식재료는 나와는 통 인연이 없었다. 밤과 마찬가지로 명절 제사상에서나 만날 수 있지만, 아무래도 밤보다는 좀 더 호불호 타는 향과 식감 때문에 (특히 말린 것의 경우) 식재료나 디저트라기보다는 약재류나 향신료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처음 언니네 텃밭 꾸러미 목록에서 대추를 발견했을 때, 기껏해야 삼계탕이나 약식 같은 음식들을 떠올렸으니. 아무튼, 몸에 좋다는 것 같긴 한데, 쉽게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그 강렬한 향기와, 건과일의 쫀득함이라고는 없는 애매한 식감 때문에 대추라는 것은 아무튼 쉽사리 생각나지 않는 독특한 포지셔닝을 취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 주먹 넘게 생긴 대추를 모두 삼계탕 끓여 먹을 수는 없는 법. 대추라는 것도 결국에는 달콤한 열매인지라, 열매로서 실패가 없는 방식을 취해 보자니 그것은 바로 '꾸덕하고 달콤한'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그 꾸덕하고 달콤한 것의 형태를 부르는 이름은 무척 다양하다. 지난번 해외 식품 마트를 구경하다가 색색의 유리병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같은 회사의 같은 제품 같은데 각각 이름이 다른 것을 보고 무척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우선 가장 흔하게 알려진 이름은 잼. 과일의 과육과 설탕을 졸인 것을 통칭한다고 한다. 그런데 또 한참 좋아했던 '오렌지 마멀레이드'라는 노래가 있다. 마멀레이드는 시트러스 계열의 과일과 껍데기, 설탕을 넣고 졸인 것이라고 한다. 다소 두꺼운 껍데기까지 함께 넣기 때문에 따로 구분하는 듯싶다. (레몬의 껍질을 따로 쓰는 것처럼 나름의 기능이 있어서 그런가?) 그리고 또 요즘 브이로그 동영상에 자주 등장하는 콤포트라는 것이 있는데, 잼과 똑같이 과일의 과육과 설탕을 졸인 것을 말하지만 대체로 과육의 형태가 살아있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블루베리 콤포트처럼 블루베리가 알알이 살아있도록. 비슷한 계열로 처트니라는 것이 있는데, 재료의 범위가 다양하고 다양한 향신료를 쓴다는 점에서 앞의 항목들과는 구분되는 것 같다. 주로 식초를 가미하며, 잼같이 만든 피클 같은 용도, 혹은 페스토 같은 것으로 보인다. 음... 어렵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또 새롭고 독특한 형태가 존재한다. 바로 물에 타 먹을 수 있도록 만든 '청'. 외국에서 차(tea)라고 하면 보통은 그... 우리가 생각하는 녹차, 홍차와 같이 '차'라는 고유 품종으로 만든 음료를 지칭하며, 차의 범위를 아주 넓게 넓힌다 해도 허브티 정도까지를 포함한다. (사실 그것도 tea라고 하기보다는 인퓨전이라는 말을 더 쓴다.) 그러나 한국 차의 세계는 더 너그러워서, 곡물차, 그리고 달콤한 과실차까지 포함하며 사실 그것들이 더 대중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하면 이 대추로 만든 '꾸덕하고 달콤한' 형태의 그것은 바로 무엇인가? 그것은 '대추고'라고 한다. 음 사실 위에서 언급한 것들과 궤를 같이 하냐는 데에는 조금 애매함이 있는데, 어쨌든 설탕에 '졸여서' 만드는 음식은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위에 언급되지 않은 '퓌레' 같은 것과 좀 더 가까우려나? 하지만 발라먹거나 타 먹는 방식, 그리고 과육을 활용한 꾸덕한 질감이라는 데에서 우선 먼 친척으로 보아준다.

 수분이 있는 어떤 식재료를 꾸덕한 정도까지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공정이 필요하고, 졸인다는 과정 자체는 느긋한 기다림과 애정, 관심을 요한다. 센 불에 팔팔 끓여서도 안되고, 작은 거품들이 바글바글 오르는 것을 지켜보며 눌어붙지 않게 찬찬히 저어내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리 특별할 것 없지만 또 무관심하게 두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게다가 대추의 씨와 껍질을 분리해내기 위해 끊임없이 체에 걸러내는 과정은... 달콤한 냄새와는 다르게 상당한 노동이었다. 하지만 그 쪼글쪼글 말랐던 대추들이 물에 불어 통통해지고 부드러워져서 마침내는 달콤하게 유리병에 담기는 것을 보며 마음까지 보들보들해진다. 게다가 대추에서 나오는 건강하고 따끈한 기운이란, 누가 뭐래도 겨울의 차. 잼과도, 콤포트와도 다른 '대추고' 만의 한국적인 달콤함에 찬찬히 빠져든다.


양갱과 곁들인 겨울의 티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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