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속의 찍먹
준비물
쌀국수(얇은 면) 적당량, 돼지고기 앞다리살(불고기용) 200g, 어린잎채소
돼지고기 양념장 - 진간장 1큰술, 굴소스 1큰술, 피시소스 0.5큰술, 설탕 1큰술, 맛술 0.5큰술, 다진 마늘 1/4큰술, 다진 생강 약간, 후추
분짜 소스 - 피시소스 1.5큰술, 물 100ml, 다진 마늘 1/4큰술, 설탕 1~1.5큰술, 레몬즙 1.5큰술, 식초 약간, 베트남 고추 2개, 다진 당근/양파 약간 -> 사실 시중에 파는 소스도 있다.
만드는 법
1. 돼지고기 양념장을 만들고 돼지고기를 버무려 재워둔다
2. 쌀국수를 미온수에 넣고 20~30분 정도 불린다.
3. 분짜 소스 재료를 넣고 냉장고에서 차게 식혀둔다. (쿰쿰/신맛이 좋아서 피시소스, 레몬즙을 더 많이 넣었다)
4. 어린잎 채소를 씻는다.
5. 불린 국수를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건져 찬물에 헹구고 물기를 뺀다.
6. 양념된 돼지고기를 중불에 익힌다.
7. 토치로 불맛을 입혔... 어야 하는데 나는 토치가 없어서 생략함. (정말 아쉽다 이걸 꼭 해야 한다)
먹는 얘기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치열하게 자신만의 철학을 고집하는 몇 가지 주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유서 깊은 논쟁인 '찍먹과 부먹'이다. 찍먹과 부먹 모두 각자의 매력이 있기 때문에 나는 상황이 되는대로 먹곤 하는데, 인터넷 상에서의 장난을 넘어서서 뭔가 배려와 매너의 영역에 들어온 건가 싶은 기분이 들면 탕수육 앞에서 괜스레 진지하고 엄숙해지곤 하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분짜라는 음식은 내게는 또 다른 신선함이었다. 국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부먹, 혹은 끓먹(같이 끓여 먹기...?)의 방식이 아니던가. 면을 오래 익힐 필요가 없는 쌀국수는 대체로 데친 면에 뜨거운 국물을 부어 먹는 듯한데. 물론 국수의 세계 또한 무궁무진해서, 끓여먹거나 부어 먹는 것 이외에 여기서 다 서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요리의 방식이 있다. 국물과 즐기는 방식이 아닌 것에는 아주 보편적으로 볶아 먹는 방식이 있을 테고. 그러나 이 수많은 방식 중 왜 찍어먹는 방식을 택했냐고 한다면, '뜨겁게 먹기 싫어서'가 가장 납득되는 이유일 것이다. 사실 서양의 요리에서는 메인 디쉬를 차갑게 먹는 것을 선호하지 않고 특히나 면은 더 그러해서, 샐러드 느낌으로 먹는 냉 파스타 정도가 한계인 듯 싶다. 반면 얼어 죽어도 아메리카노를 먹는 사람들의 공식적인 모임이 있을 정도로 차가운 액체를 좋아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희한한 현상이다) 그냥 미지근한 것도 아닌, 얼음까지 띄워 아주 그냥 '차가운' 면, 냉면이라는 음식이 있다. 냉면의 세계도 찍먹 부먹과 함께 한국인의 난제 중 하나인 물냉, 비냉이라는 든든한 양대 산맥으로 구성되어 있다. 뭐 사실 보편적으로 말하는 냉면 말고도 찬 국물에 말아먹거나 양념에 비벼 차갑게 먹는 비슷한 아류들도 여럿 존재한다. 막국수라던지, 비빔라면이라던지...
반면 찍먹면의 세계는 우리나라에서의 차가운 면들과는 약간은 성질이 달라 보인다. 우리나라 식문화는 어쨌든 건더기만큼 양념, 국물이 중요한 나라라서 차가운 면조차도 머리가 쨍- 하고 아플 정도로 냉면 국물까지 사발 째 먹는 것이 미덕이지만, 다른 나라에서 보이는 이 '차가운 면'의 핵심은 어떤 양념 맛이나 풍미를 입힌 '면' 그 자체에 있는 것도 같다. 분짜와 비슷한 음식으로는 일본의 츠케멘이나 자루소바 정도가 있으려나. 그러나 일식의 찍먹면들과 먹는 방식은 비슷해도, 나에게 주는 음식의 느낌은 다르다. 일식의 찍먹면들이 면에 상당한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에 비해 분짜에서의 면은 그 음식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고기, 국물(소스), 야채 같은 재료들이 면과 함께 세팅되어야 비로소 한 그릇의 음식이 완성되는데, 이것은 마치 한국의 김밥, 미국의 햄버거와 같이 한 끼에 탄, 단, 지를 모두 갖춘 종합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베트남 음식점에 가서 먹는 분짜는 기껏해야 어린잎채소와 상추 정도를 얹어주기 마련인데, 현지에서 먹었던 분짜는 항상 각종 야채와 신선한 생 허브를 함께 두둑하게 서빙하곤 했었다. 솔직히 면이 없어도 불향 가득 달달한 고기와 허브의 조화 만으로도 한 평생 쌈 싸 먹으며 살아온 한국인들에겐 한 그릇 뚝딱이다. 그 소스는 또 어떤가. 집에서 간단하게 만들어보긴 했지만 베트남 식당에는 항상 매운 고추나 라임, 절인 마늘 같은 것이 선호하는 맛의 극강화를 위해 항상 대기하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여느 동남아 음식들과 마찬가지로, 찍먹면조차도 베트남에서는 시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단맛, 신맛, 꼬롬한맛, 짠맛, 매운맛, 허브향, 불향, 고기, 야채, 탄수가 이 간단한 하나의 접시 안에 꽉꽉 들어차 있다니.
양껏 먹었는데도 더부룩하지 않은 산뜻한 느낌을 느끼며, 언젠가 다시 현지에 가서 그 맛을 느낄 수 있을까 그려본다. 베트남 음식을 발리에서 사 온 나무 볼에 담아 정말 진정성 없는 그럴듯함만을 조성해 보았으나;;; 불향이 입혀지지 않은 나의 홈메이드 고기 볶음처럼, 어딘가 부족한 느낌은 그곳의 찌는 듯한 더위, 착한 사람들, 알 수 없는 언어들, 그리고 여행자로서의 나의 마음과 함께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