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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갱 Oct 09. 2020

전복장

멋진 재료와 깊은 육수의 고요한 만남


준비물

싱싱한 전복, 양은 넣을 수 있는 만큼 :) (나는 8미) 

건표고(가 없어서 생 표고), 마늘 8쪽, 대파 1대, 사과 1/2개, 양파 1/2개, 건고추 2개, 생강 2쪽, 통후추, 건다시마 5장, 월계수 잎 2장 , 물 1.6L

간장  600ml, 청주 400ml, 물 1.6L, 사이다 400ml, 매실액 6큰술, 올리고당 2T


조리과정

1. 안 쓰는 칫솔과 솔을 이용하여 전복을 구석구석 박박 닦아준다. (껍데기 째 사용하므로 껍데기도 세척한다.)

2. 전복의 이빨과 식도를 제거한다. 껍데기 구멍이 있는 쪽에 전복의 이빨이 있는데, 싹둑 자르지 말고 살살 뽑아내면 안쪽에 있는 식도까지 뽑힌다.

3. 찜기에 손질한 전복을 넣고 청주 200ml을 뿌린 후 10분 정도 쪄준다.

4. 큰 냄비에 절임장 재료를 모두 넣고 육수를 끓여준다. (청주 나머지 200ml 포함) 강불에서 간장이 끓어오르면 중불로 30분간 끓인다.

5. 간장이 다 끓고 나면 건더기는 모두 제거해 주고 식혀준다.

6. 간장이 식고 나면 사이다 400ml를 넣어준다.

7. 보관 그릇에 전복을 착착 쌓고 전복이 잠길 때까지 간장을 부어준다.

8. 홍고추, 청양고추를 썰어 넣어준다.

9. 냉장고에서 숙성시킨 뒤 만 하루쯤 지나고 나서 먹는다.


 처음으로 받아보는 고가의 추석 선물이었다. 백화점에서 보내주는 고오급 선물은 배송 과정에서부터 다르다. 신선 식품이라 언제 도착할지 잘 받을 수 있는지 걱정했는데, 도착하기 전 후로 안부를 잘 살펴주셨다. 예쁜 보자기에 싸여있는 크고 아름다운 활전복. 언제 배송해 드릴까요?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마음이 설렜다. 열다섯 마리라고 했다. kg 단위로 배송되는 육류와는 다르게, 마릿수로 받게 되는 전복은 어쩐지 한 마리 한 마리가 더 귀중하다. 반짝이던 시인이 별 하나에 사랑, 또 별 하나에 어머니, 를 세었던 것처럼 나도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과 아름다운 요리들을 떠올리며 세어본다. 전복 하나에 부모님, 전복 하나에 사랑하는 사람...

 도착하자마자 몇 마리는 버터에 부드럽게 구워 먹고, 내장으로 꼬수운 볶음밥도 해 먹었는데, 문제는 그 도착 시점에서 부모님을 뵈러 갈 추석 연휴까지는 며칠 남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선도가 중요하기에 전복을 냉동해서 가져가는 잔인하고 비참한 짓은 하고 싶지 않았고, 어떻게 하면 이 전복의 훌륭한 품질을 뽐내면서도 상하지 않고 부모님께 선보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결국은 전복장이었다. 상하기 쉬운 재료를 상하지 않게, 게다가 더 감칠맛 나는 방법을 알려주신 우리의 조상님들 존경합니다. 살아 있는 전복만의 느낌은 낼 수 없겠지만, 또 장을 담그기에 꼭 필요한 것이 싱싱한 전복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시작된 나의 전복과의 사투. 전복을 하나하나 정성껏 씻겨주고 이빨을 빼주는데 거의 전복과 정들기 직전이었다. 그나마 껍데기 채 먹는 음식이어서 다행이었을까... 버터구이를 위해 전복을 껍데기에서 떼 내고 게다가 내장은 터뜨리지 않는다는 미션을 수행할 땐 정말이지 피 땀 눈물이었다. 땀이 뻘뻘 났고 전복에 손을 다쳐 피가 흘렀고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고기가 아닌 해산물이 가진 일종의 묘미인 것을. 손질이 어렵고 낯설고 번거롭다는 것은 육류에 비해 거의 모든 해산물이 가진 맹점이지만, 또 그런 점이 해산물 요리를 값지게 하고 또 도전하게 한다. 그 번거로운 손질 뒤에 따라오는 풍성한 향과 풍미가 보장되므로.

힘든 사투였다.

게다가 절임장에 들어가는 무지막지한 재료들은 또 어떠한가. 가끔 육수를 낸다는 행위에 대해 생각한다. 그 생각을 하게 될 때는 주로 육수 속에 때려 넣었던 수북한 건더기를 건져 식힌 뒤 음식물 쓰레기로 직행하게 될 때이다. 우리는 식재료들을 말 그대로 섭취하고자 한다. 그것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영양소와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단백질과 섬유질들을 직접 섭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육수를 낸다는 행위는 그 기대를 무참히 저버린다. 재료의 향만 취하고 원물은 버리는 것은 영혼만 취하고 육체는 남겨두는 어떤 죽음과도 같다. (사실 이렇게 극단적으로 표현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쓰다 보니 그 본질이 그렇게 느껴졌다.) 한 무더기 나오는 그 원물이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지만, 막상 또 완성된 요리를 맛보게 되면 그 한 몸 희생한 식재료들에 대해 감사함이 느껴진다. 제대로 된 육수를 낸 음식은 그렇지 않은 음식과는 완전히 깊이가 다르다. 맹물로 만든 음식이 짜고, 달고, 신 1차원의 맛이라면, 육수에서 느껴지는 맛은 그것보다 복잡 미묘하고 깊이가 있어 생각의 여지가 있는 요리로 만들어 준다. 그 육수를 우려내는 몇십 분은 마치 유명한 고전 문학이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쳤던 그 오랜 세월을 닮았다. 뭐라 한 마디로 단언하기 어렵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침을 꼴깍 삼키고 머릿속을 정리할 여유가 필요한 그런 맛.

 어쨌거나 전복장은 전복이라는 원재료를 손질하고 육수를 끓이기만 하면 그 이후는 어떤 조리 과정이 있지는 않다. 그 이후로는 그저 기다림이다. 하루, 이틀, 짧은 기다림 끝에 보관 그릇을 열어보면, 은은하게 검은 절임장 속에 전복들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다. 박박 닦을 때는 야들야들한 아이보리였는데, 어느새 태양 아래 멋들어진 캘리걸처럼 태닝 되었다. 한 마리씩 소중하게 썰어 아름답게 데코하고 나면, 좋은 재료와 훌륭한 육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감칠맛. 비록 지지고 볶고 하는 과정은 없지만 각각 다른 곳에서 조리되어 마침내 밀폐된 공간 안에서 고요하게 서로에게 스며드는 조용한 음식, 그 음식에서 나오는 깊이는 별미다. 확실히 별미다.

반짝반짝 아름다운 자태와 더 아름다운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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