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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갱 Jan 03. 2021

차, 입문

 식문화 중 음식 만큼 중요한 것은 바로 마시는 것이다. 

 나의 경우 먹는 것은 거의 가리는 것 없이 골고루 즐기는 편인데, 마시는 것만큼은 꽤 강한 기호가 있다. 강한 카페인 때문인지, 커피는 그 맛과는 상관없이 나와 궁합이  맞지 않는다. 너무 단 맛이 강한 것도 좋아하지 않고 탄산이 많은 종류도 배가 부른 그 느낌 때문에 별로 선호하지 않아서, 온갖 종류의 탄산음료 및 주스류 등도 즐기지 않는다. 그래서 성인이 되었을 때 좋았다. 커피도 아니고, 달지도 않고, 탄산도 없으면서 음식과 곁들여서 오래오래 먹을 수 있는 술이라는 음료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레벨이 오르면서 새로운 아이템에 색깔이 들어오며 선택 가능하게 된 게임 캐릭터 같았다. 그래서 술은 종류를 불문하고 즐기는 편이고, 특히 음식과의 궁합에 대해 재미있어하고 또 신경을 쓴다. 다만 술은 신체에 끼치는 여러 가지 영향으로 당연히 때와 장소와 타이밍을 가려가며 마실 수밖에 없다는 제약이 있고, (그래서 여행 가서 마시는 낮술이 그렇게 좋다....) 또 운동에 취미를 붙인 이후 컨디션과 멘탈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어서 주춤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찾은 것은 바로 차(tea)였다. 사실 카페에 가서 커피 아니고 달지 않은 것을 찾아야 한다는 점 때문에 늘 차나 관련 음료를 마시곤 했지만, 그것은 순전히 대체제였지,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차는 언제나 내 곁에 있었고, 찻물이 우러나듯 내게로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 교환학생 시절 숙소에 도착했던 첫 저녁 아일랜드 출신인 룸메이트가 머그컵에 건네주던 얼그레이와 인사했을 때, 구례 피아골 어느 숙소 주인분이 내어주시던 지리산 국화차의 향긋한 내음을 느꼈을 때, 손끝 발끝과 몸의 중앙에 찬기가 있던 날 따끈하고 고수운 쑥차의 편안함으로 마음을 데웠을 때, 어느 주말 오후 마음 편한 친구들과 동네 깊숙이 숨어있던 찻집을 발견하고 중국 차의 깊은 잔잔함을 처음 접했을 때, 그렇게 천천히 차는 내게 다가왔다. 

 유독 손발이 차고 추위를 많이 타는 나의 몸의 성질, 그리고 복잡한 것보다 조용하고 느린 것을 좋아하는 마음의 성질에 차라는 음료, 그리고 차라는 문화는 사실 완전한 궁합이었던 것을, 코로나 시대의 겨울에야 알아버렸다. 물 끓는 소리부터 시작해서 차의 티백 혹은 틴케이스의 아기자기함, 찻잔이나 티팟 등 소박한 살림살이에서 오는 편안함과 따뜻함, 그리고 향기와 맛... 우리나라에서는 확실히 차 문화보다는 커피 문화가 우세하지만, 출근한 평일에 먹는 커피와 집에서 즐기는 차는 확실히 다르게 다가왔다. 직장인에게 있어 커피라는 것은 이미 기능성 음료이며, 슬프게도 대부분은 그 맛을 진지하게 음미하지 않는다. 천천히, 집중해서 음미하는 것은 더 말이 안 된다. 생각해보면 커피를 안 마시는 내가 차를 시켰을 때도, 남들이 커피 먹듯 그렇게 마셨던 것 같다. 입가심으로, 목마르니까, 당떨어져서, 잠깐 바람 쐬러 나가고 싶어서 등등... 그러나 막상 배워본 차의 문화는 얼마나 느긋한가. 얼마나 느긋하고, 복잡하고, 시간이 필요하고, 또 도구는 얼마나 이것저것 필요한지, 아무튼 사무실에서 절대 펼쳐놓고 할 수는 없는 모습이다. 한 번에 마시는 차의 양도 스타벅스 톨 사이즈의 1/3 정도 될까? 스타벅스만큼 차를 마시려면, (뜨거운 물이 계속 있다는 전제 하에) 차를 우리고 시간을 재고 그것을 잔에 따르고 마시는 행위를 세 번이나 반복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차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찬장 속에 숨어 있었던 각종 차들을 끄집어내고, 유통기한과 그 종류를 확인하고, 꺼내먹기 좋게 정렬해둔다. 선물 받았던 것들도 많아서, 낯선 차들은 검색해보기도 한다. 차를 우릴 수 있는 작은 디퓨저들이 있었는데, 잎차를 맛있게 우리기가 힘들어 간편한 티포트도 하나 구입해본다. 차마다 우려야 하는 시간과 온도가 다름을 배우고 차마다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티백에 쓰여있기도 하다.) 초심자이지만 나름 여러 라인업을 갖추고 있어서, 각 차와 가장 어울리는 짝꿍을 생각한다. 차를 마시는 사람들과 그들이 사랑하는 차에 대해 하루 종일 찾아본다. 그렇게 꼼꼼히 살펴보고 나니, 찬장 구석에 그냥 있었던 것들이, 그 차 하나하나가 색깔을 입고 향을 입었다. 동그랗게 말려있던 마른 잎들이 뜨거운 물을 부으면 하나하나 잎을 펴내면서 그 향을 뿜어내듯이, 내게 새롭게 다가온다. 그래서, 좀 더 진지해보려 한다. 미각이 아주 예민한 편은 아니라 조예가 깊으신 분들 만큼의 멋진 시음 기를 쓰지는 못하겠지만, 음식만큼 요리만큼 차에 대해서도 조금 더 고민해보고 또 사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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