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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가울 Jul 16. 2023

다시 만난 보건소의 세계에서 외치다

절망이 절망으로만 끝나지 않을 때

나는 환상이 환상으로만 끝나지 않을 때, 절망이 절망으로만 끝나지 않을 때, 비로소 각자가 원하는 삶에 다다를 수 있다는 말을 굳게 믿는다. 다만 그 끝에 환한 빛이 있을지, 막연한 어둠이 자리 잡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지금 내가 해야 되는 건, 이 각오가 허황된 꿈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 그뿐이다.





1년 전, 보건소에서 마지막 근무를 하고 나서 바라본 밤하늘에는 별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복직을 하루 앞둔 전날이 되었다. 밤이 되자 잊은 줄만 알았던 그때의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음의 동요가 전혀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복잡 미묘하다 못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챙겨야 할 서류와 짐도 다 준비했고, 당일 입을 옷도 미리 꺼내놨는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애꿎은 입술만 힘을 준 채 핸드폰 화면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다시 마주할 보건소 건물에 도달할 때까지, 최소 1년에서 2년 내지는 세월이 흘러간 것만 같았다. 2시간 가까이 대중교통에 몸을 싣고 보건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9시 정각을 넘어섰다. 발걸음을 재촉하며 마음이 급했던 것과는 무색하게, 내가 대기해야 할 곳은 아무도 없는 회의실이었다. 가만히 그곳에 앉아 있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익숙하면서 낯선 이곳에 혼자 있다는 사실 하나로 시간이 멈춰버린 기분이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어디에서 근무할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유일하게 알 수 있던 건 1년 전과 별반 다를 게 없을 정도로 그곳은 변한 것이 없다는 점이었다. 건물도 그러했고, 대부분의 직원들도 그러했다. 마치 휴직이 아닌 며칠 휴가를 받고 돌아왔다는 착각에 빠진 사람처럼 정신이 혼미해졌다.


신가울 주임님, 몸은 괜찮아요?



복직한 이후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내 건강 상태를 묻는 안부의 인사였다.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긍정 어미로 끝나는 확언으로 마무리되었다. 애써 웃음을 지으려고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보건소로 되돌아갈 자신이 없었던 지난 과거는 찾아볼 수 없었다. 1년 동안 단련된 내면의 힘은, 생각보다 많이 견고해졌고 단단해있었다.


그토록 힘들어했던 보건소의 세계에 발을 디디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에 대한 원천은 예상외로 단순했다. 공직에서 하루빨리 탈출하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심히 모순적인 이 문장에서 내가 중점을 뒀던 건 삶에 대한 방향성이었다. 처음엔 그저 생계 문제와 얽힌 욕구로 인해서였다. 결국 그 욕구는 지난 휴직 기간의 결실을 증명하듯 삶의 최종 목표를 향한 열망으로 옮겨갔다. 돈에 구애받지 않고 걱정 없이 글을 쓰는 삶에 가까워지기 위해 결정한 나의 선택이었다. 복직하면서도 그 목표에 도달할 확신이 있었기에 마음에 평온이 찾아왔다. 보건소에서는 본연의 업무를 하되, 퇴근 후에는 그 일에서 벗어나야 했다. 해야 하면서도 하고 싶은 나의 일을 하는 삶, 나는 이 시간에 몰두하게 된 것이었다. 다시 한번 보건소의 출구로부터 나가기 위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 셈이었다.


과거의 나는 7급 공무원의 신분으로 보건소에서 일하면서 몸을 망칠 정도로 업무에 몰입했다. 그 결과, 각종 질환을 얻게 되었고 일종의 회피로 휴직을 택했다. 정체 모를 갈망을 어떤 식으로 끄집어낼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을 알게 된 이후, 머지않은 곳에서 제2의 인생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그 삶의 경계선에 서게 되는 순간까지 이르게 되었다. 휴직하면서 지쳐 있던 나를 위로하며, 자신을 정의내림으로써 얻게 된 값진 결과물이었다. 해야 할 일은 부를 축적해 나가기 위한 경제와 투자 공부였지만, 그토록 원하던 삶의 방향성은 변치 않았다.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을 용기를 얻기 위해 글은 계속해서 써야만 했다. 어느샌가 글에 대한 갈망은 나를 대표하는 단어로 탈바꿈해갈 것이다.


나는 환상이 환상으로만 끝나지 않을 때, 절망이 절망으로만 끝나지 않을 때, 비로소 각자가 원하는 삶에 다다를 수 있다는 말을 굳게 믿는다. 다만 그 끝에 환한 빛이 있을지, 막연한 어둠이 자리 잡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지금 내가 해야 되는 건, 이 각오가 허황된 꿈이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 그뿐이다.


그러므로 끝이 보이지 않는 모험일지라도, 쉽게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어떨 때는 스스럼없이 들이대는 것만으로도 답으로 향해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결국 돌고 돌아 우리들이 각자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사는 것도 이런 일련의 경로에서 오는 무의식이 아닐지 생각해 본다.


그러니, 나를 위해서라도 혹은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분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날은 꼭 오리라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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