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나로 산다는 건, 결국 사랑하는 일이다

by 류하정

홀로 살아가는 하루가 조금씩 익숙해질 무렵, 나는 조심스럽게 세상을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누군가와 부딪히지 않는 고요한 공간에서 나를 회복하는 데 집중했던 시간은 생각보다 더 길었고,

생각보다 더 깊고도 고요하게 흘러갔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처음엔 외로움이 두려웠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외로움조차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 감정마저 부정하지 않고 품어낼 수 있을 만큼 나는 스스로에 대한 신뢰와 유연함을 얻어가고 있었다.


이전의 나는 누군가를 만나면 늘 나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고 느꼈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조심스러웠고, 오해를 만들지 않기 위해 애써 웃었고, ‘좋은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기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삭제하고 조정해야 했다.

그렇게 관계는 늘 나를 소진시켰고, 나는 그 안에서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잃는 법’만을 배워갔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다시 누군가와 연결되는 일이 예전처럼 나를 상처 입히지 않도록, 나는 먼저 나 안에 남은 결핍부터 하나씩 정리해 가기 시작했다.


관계란 무엇인가.

그건 무언가를 쥐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조금 덜 외롭게 지켜봐 주는 일이라는 걸

나는 이 조용한 시간 속에서 깨달았다.


누구도 구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그저 함께 있음으로 서로를 더 편안하게 해주는 것.

그것이 내가 지금 꿈꾸는 새로운 관계의 방식이었다.


어느 날 블로그에 쓴 글을 통해 한 독자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당신의 문장 덕분에 오늘을 견딜 수 있었어요.”

그 말 한 줄 앞에서 나는 한참을 조용히 앉아 있었다.

내 글이 정말 누군가에게 닿고 있었을까.

이전처럼 계산된 콘텐츠도 아니고, 팔기 위한 글도 아니었다.


그냥 살아 있는 사람이 하루하루를 버티며 쓴 문장이었고, 그 문장들이 누군가의 감정에 조용한 울림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날은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다.


누구를 위로하려 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겠다는 마음도 아니었지만

내가 살아낸 하루의 언어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안이 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세상과 다시 연결되고 있다는 감각을 느꼈다.


그리고 그 연결은 예전과는 달랐다.

더 이상 나는 누군가에게 나를 증명하지 않으려 한다.

그저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조금씩, 천천히 꺼내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안에 사랑이 있고, 진심이 있고, 무너지지 않기 위한 애씀이 있다면

그건 가장 건강한 방식의 연결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나는 이제 갖게 되었다.


요즘 나는 사람을 새롭게 다시 바라본다.

어떤 인연은 말없이 곁에 있기만 해도 고맙고,

어떤 인연은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을 좁히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된 이후 나는 사람을 거절하는 법도 배웠다.

거리를 둔다는 것이 이기적인 게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도

조용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단숨에 대답했을 메시지에도 이제는 한참을 고민하고, 조금 늦더라도 마음을 다해 답장하려 한다.


“혼자서, 처음부터 다시.

그래도 그럭저럭 잘 살아내고 있어.”


그 말은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이기보다는 결국 지금의 나에게,

매일 다시 나를 믿고 일어나는 나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흔들릴 수 있고, 때로는 다시 무너질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다시 나를 일으키는 힘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나만의 의지라는 것을.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앞으로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그 안에서 나를 잃지 않을 만큼 나는 충분히 단단해졌다는 것을 말이다.

예전처럼 사랑에 기대어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내 존재를 깎아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제 누군가의 사랑 없이도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나는 다시 세상과 연결되고 있다.


조금 더 담담하게,

조금 더 건강하게,

나의 사람들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나의 하루는 여전히 조용하지만 그 안에 머무는 감정들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어졌고,

나는 그 감정들 속에서 사람을, 세상을, 그리고 나 자신을 다시 조심스럽게 껴안고 있다.


이제 나는 안다.

나로 산다는 건, 결국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어 가는 일이란 걸.

그리고 그 연결은 언제나 사랑에서 다시 시작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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