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함께 살아내는 삶, 아이와 나, 그리고 다시

by 류하정

“엄마, 요즘은 엄마가 웃을 때가 제일 좋아.”


아이의 그 한마디는 짧았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어떤 감정을 조용히 깨워주었다.


나는 오랫동안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무엇을 더 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시간을 더 내야 하나, 좋은 음식을 먹여야 하나,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나.

그런데 지금에 와서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늘 웃는 엄마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지키며 살아가는 엄마라는 것을.


요즘 우리의 아침은 조금 더 천천히 흐른다.

나는 아이보다 먼저 일어나 차를 내리고, 책상에 앉아 하루를 기록하며 내 리듬을 먼저 맞춘다.

그렇게 중심을 잡은 상태에서 아이를 깨우면, 목소리도 눈빛도 다르다.

아이 역시 그 변화를 느낀다.


“엄마가 오늘은 아침부터 기분 좋아 보여요.”

그 짧은 말 하나에, 나는 다시금 다짐한다.

이 평범한 하루가 우리가 지켜야 할 가장 따뜻한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우리는 함께 도서관에 간다. 각자의 책을 읽고, 각자의 자리에 앉아 고요히 시간을 보내며, 서로를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그 경험은 아이와 나 사이에 또 다른 신뢰를 쌓아준다.


“엄마랑 함께하는 이 시간이 너무 편안해요.”


아이는 그렇게 말한다.

나는 아이와 무언가를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가 아니라,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관계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밤이면 우리는 각자의 하루를 나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내 하루의 솔직한 기분도 전한다.

예전엔 아이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오늘은 조금 지쳤어.”


그 말에 아이는 말한다.

“괜찮아요, 내일은 괜찮아질 거예요.”


이 짧은 위로는 우리가 서로에게 얼마나 깊은 이해와 신뢰를 쌓아왔는지를 증명해 준다.


아이와 함께 살아내는 이 일상은 내가 ‘엄마’로서의 역할을 넘어서, 사람으로서의 나를 다시 세워가는 시간이다. 그 무엇도 숨기지 않고, 감정을 억누르지 않으며, 실수하고 회복하는 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아이에게 남기고 싶은 진짜 유산이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엄마,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중심을 먼저 챙기는 사람.

나는 지금 그런 사람으로 존재하며 아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제 다시 세상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누군가의 인정을 갈망하며 나를 소진하지 않고,

내 속도대로, 내가 할 수 있는 방식대로 세상과 마주하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내가 살아낸 이야기를 올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위로받는다.


“이 문장을 읽고 나니까 오늘을 버틸 수 있었어요.”

그런 피드백은 내가 다시 누군가와 연결되고 있다는 조용한 증거였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더 이상 나를 깎아내는 노동이 아니라, 삶을 지탱하고 감정을 나누는 내 안의 힘을 외부로 흘려보내는 일이 되었다.


사람들과의 관계 역시 바뀌었다.

예전처럼 나를 포장하지 않고, 감정을 숨기지도 않는다.

불편한 것은 불편하다고 말하고, 감당할 수 없는 부탁은 정중히 거절한다.


그랬더니 오히려 더 편안한 인연들이 남기 시작했고, 이제 나는 누구에게도 나를 ‘설명’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과 조용히, 그러나 깊게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다.


아이와 나 우리 둘이 함께 만드는 이 삶은

소란스럽지 않지만 단단하고,

화려하지 않지만 따뜻하며,

매일을 살아내는 루틴 속에서 점점 더 진실해지고 있다.


나는 더 이상 나를 증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하루를 살아내는 이 삶 자체가 내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알게 되었다.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스스로를 사랑하고,

지금을 사랑하고,

이 아이와 함께 있는 이 하루하루를 온 마음으로 지켜내는 것이

내가 선택한,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살아낼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이 작고 평범한 하루를 사랑하듯 살아낼 수 있다면, 그 삶은 이미 충분히 위대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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