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정말로 말도 안 되는 감정이지만,
내가 이 집에서 투명인간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나는 이 집의 계약자이고, 생활비를 감당하며 하루하루를 굴러가게 하는 사람인데도,그런 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부엌도, 거실도, 아이의 방도, 내가 머무는 방조차도 그저 '다른 사람들의 공간'이 되었고, 나는 그 틈새에서 마치 주방 기기처럼, 의자처럼, 기능만 수행하다가 한켠으로 밀려난 존재였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이 집의 가장이 아니라, 스텝이었다.
내가 움직여야 돌아가는 삶,
내가 잠시 쉬면 멈춰버릴 것 같은 구조 속에서 언제나 조심스럽게, 조용하게, 쉬지 않고 움직이고만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움직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나의 노력을 인정하거나 고마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정도는 당연하다’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익숙해져 있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돌아온 아침, 거실에는 늘 똑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엄마는 소파에 누운 채 무표정하게 드라마를 보고 있었고,
동생은 커튼을 닫은 어두운 방 안에서 이어폰을 낀 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문을 열자마자 정적 속에서 느껴지는 시선을 의식했고,
무의식적으로 발소리를 죽인 채 조용히 신발을 벗고 부엌으로 향했다.
뜨거운 물을 올리며 커피를 준비하는 내 손은 언제나처럼 분주했지만,
그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일조차도 어딘가에서 허락을 받아야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
이 집에는 나의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것.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감정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이 집에서 나는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 말이다.
거실은 엄마가 장악했고, 큰방은 동생의 휴식처였으며, 아이의 작은방마저도 엄마와 동생의 짐들이 장악해서 그들 둘 모두가 자연스럽게 드나드는 공간이 되어 있었다.
나는 방 안에서조차 온전히 쉴 수 없었고, 어딘가에 앉아 있다 보면 '왜 아직도 거기 있어?'라는 무언의 기류에 떠밀려 몸을 일으키곤 했다.
이 집은 분명 내 이름으로 계약했고, 내가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나는 머물 수 있는 권리를 갖지 못한 사람이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없는 사람이 되었고, 말을 하면 '예민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점점 침묵을 선택하게 되었고,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억누르기를 택했다.
그건 강함이 아니었고, 인내도 아니었으며,그저 생존을 위한 무감각이었다.
어느 날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왜 맨날 미안하다고 해?”
그 질문은 내 가슴을 세게 치고 지나갔다.
생각해보니 나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었고, 그 말 속에는 내 존재에 대한 부정이 담겨 있었다.
내가 조금 더 일찍 일어나지 못해서,
밥이 아이 입맛에 안 맞아서,
엄마가 불편할까봐,
동생의 눈치를 봐야 해서,
나는 늘 어떤 이유로든 죄를 짓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 죄의식이 나를 점점 사라지게 만들었다.
‘존재 그 자체가 폐가 되는 경험.’
그건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누구에게 설명해도 ‘그래도 가족이잖아’라는 말로 되돌아오는 현실 앞에서,
나는 차라리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말해봤자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체념,
이해받기 위해 또 내 감정을 쥐어짜야 한다는 피로감,
그리고 말하는 것조차도 나를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조용히, 이 집의 '그림자'가 되었다.
커피를 마시며 혼자 깊게 숨을 내쉬고, 아이를 위해 도시락을 준비하고,
엄마가 싫어하는 소리와 동생이 불편해할 행동을 피하며, 하루를 살아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든 걸 피하면 피할수록, 나는 더욱 뚜렷하게 '부재'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나는 분명 존재하는데, 누구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지 않고, 계속해서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어 조절되어야만 했다. 그게 바로 이 집에서의 내 위치였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
움직이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
사랑받기보다는 기능을 제공하는 사람.
그리고 결국은 사라져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사람.
이제는 다르게 살고 싶다.
누군가의 딸,엄마가 아니라'류하정'이라는 이름으로,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으며 살아가는 삶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 삶을 상상하는 것조차 죄책감 없이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다시 나로 살아가기 위한 첫 번째 결심은
'이 집에서 나는 없다'는 사실을,
더 이상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