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끼리 왜 이래
결혼 전에 '며느리 길들이기'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 주위의 결혼한 친구들과 만나도 시댁 이야기는 그녀에게 관심 없는 주제일 뿐이었다.
나중에서야 그때 좀 많이 들어둘걸... 후회가 들었다.
'차라리 연을 끊더라도 가지 말았어야 했나?'란 생각조차 들었다.
몇 달간의 냉전을 끝내고 다시 잘 살아보기로 결정한 그녀는 시부모님께 사과를 하고 그들의 결정을 전달하러 사댁으로 향했다.
집안에 들어서자 냉랭한 시어머니는 그녀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시아버지는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물론 기대도 안 했다.)
남편은 시아버지 방에 들어갔다 잠시 후 나왔다.
어쩔 줄 몰라 그녀는 어정쩡 서 있다 남편 옆 소파에 앉았다.
남편도 시어머니도 아무 말 없이 시간이 흘렸다.
"들어가서 아버지께 인사하고 나와"
시어머니가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두려운 마음으로 노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님 저 왔습니다."
"지금 너 인사받을 기분 아니다. 나가 있어."
(어느 정도 예상된 반응이었다. 그 성정이 어디가랴...)
방에서 나온 후,
그녀에 쏟아진 질타들은 그녀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나는 너한테 당했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날 시부모한테 그런 게 제정신이냐? 어디 제정신으로 그런 건지 한번 말을 해봐.
결혼하면 대접받고 살 줄 알았어?
시부모와 우리 집안이 그렇게 우습게 보였어?
나이가 어린것도 아닌데 왜 그 모양이냐? 마음에 드는 데가 하나도 없어.
그리고 근무표 달라고 하는 게 사생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가 어디 전화도 안 하고 그냥 갈 사람으로 보였어?...”
시어머니는 거든다.
“왜 이리 늦게 왔어. 아버지가 계속 기다렸어. 너라도 매일 와서 무릎 꿇고 용서해 줄 때까지 빌었어야지”
‘아 이건 아니지 않나? 매일 와서 무릎 꿇을 만큼 내가 잘못했나? 다시 부딪쳐야 하나? 그래도 남편이랑 다시 살겠다고 사과하러 온 거니까 참아야지.’
그녀는 마음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막바지에 다 달았을 무렵이다.
갑자기 시어머니가 너희들 한테 물어볼 것이 있다며
“나중에 우리 둘 중 하나가 먼저 죽으면 너네는 우리 모실 거야? "
"나는 모신다고 했잖아.." 남편이 대답했다.
"너는?" 그녀에게 물었다.
이 뜬금없는 질문에 어이없던 그녀는 남편을 쳐다보고 있던 중이었다
.
순간 머릿속에 온갖 생각들이 몇 초간 후루룩 지나갔다.
'남편이 모신다고 하는데 싫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문제에 대해 대뜸 좋다고 할 수 도 없고...'
"저는 남편의 의견을 따라갈 의향은 있습니다..."
그다음, 시어버지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건 답이 아니다"
듣고 있던 시어머니 왈
"요즘 시부모 모시고 사는 사람도 많아."
"......"
'왜 지금 시부모 모시는 이야기가 나오는 걸까? 안 좋은 부부 사이 이제 조금 이어가려고 하는데... 머가 그리 급한 거지? 왜 지금 이런 질문들을 하는 거지?'
시아버지가 말을 이어갔다.
"이제부터 내 말 잘 들어. 너네는 편하게 살아서 정신을 못 차렸다. 그러니까 돌아가면 지금 집 내놓고 들어와서 시집살이 해"
"......"
그녀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말로만 듣던 '답정너'에 이어 이건 '합가 명령? ' 그리고 또 ‘시집살이 타령을 이 순간에?’
남편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있었다.
집 내놓고 들어오라는 말을 끝으로 그만 가라는 시아버지의 말에 가져온 것을 드리고 가자고 했다.
그녀는 사과의 의미로 써온 손편지를 시아버지에게 건네고 뒤돌아 섰다.
문을 나서는 그들 부부에게 시아버지는 뒤통수에 대고 한마디를 더 던졌다.
"난 아직 승낙한 거 아니다. 다음에 오면 저녁 먹고 가”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생각했다.
‘뭘 승낙하지 않았다는 거지? 이미 결혼한 성인이고 이혼하려던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살겠다고 찾아왔는데.. 도대체 시아버지가 뭘 승낙을 하고 말고 한다는 거지? ‘
그녀는 중간중간 시어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안 살 거면 빨리 정리하고 살 거면 각오해”
그때 그녀는 생각했었다.
‘ 왜 자꾸 안 살 거면.. 이런 말을 하는 거지? 이미 다시 서로 잘 살아보겠다고 얘기했는데.. 그리고 각오하란 건 뭐지? 시집살이 각오하라는 건가? 아님 내가 자기 아들과 이혼하기를 바라는 건가??’
아무 말이 없는 그녀에게
"엄마가 떠볼라고 그런 건데 모신다고 하지 그랬어." 가마니처럼 가만히 있던 남편은 물었다.
"......"
이미 상처 받은 마음 상태인 그녀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다시 잘 살아보겠다던 그녀 부부에게 다시 한번 큰 파장이 일어날 것을 예감하는 순간이었다.
들어와서 시집살이하라는 말이 진짜일까? 아닐까?
그런데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 부부에게 있어 독립성은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이 참에 '며느리 길들이기'를 하겠다는 속내가 드러났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한술 더 떠서 남편은 아버지 말을 허투루 듣지 말라고 했다.
이때 그녀의 느낌은 절망감과 외로움이었다.
그녀가 복잡한 마음을 친구에게 털어놓았을 때 친구는 말했다.
"누가 가족끼리 테스트를 해? 테스트를 하는 건 가족이 아니지"
시부모 부양을 할 건지 떠보고 시집살이하러 들어오라고 하고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를 테스트를 하는 것이 가족일까? 결혼과 동시에, 며느리란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았던 나는 그들에게 가족이었을까?
후에 알았지만, 아직도 한국의 많은 시부모들이 이 '며느리 길들이기'를 많이 한다고 한다.
특히, 신혼초 몇 년간 며느리들을 조련하면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며느리로 만들려고 노력을 한다.
대부분의 부부가 신혼 몇 년은 많이들 싸운다고 한다. 연애 때 한 번도 싸우지 않았던 동생네 부부도 이때는 정말 미친 듯이 싸웠다고 했다. 신혼초는 각자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하나의 가정을 이루기 위해 티격태격하는 기간이다. 이땐 서로의 문제만으로도 벅찬 시기이다. 연애시절 몰랐던 서로의 모습을 알아가고 서로 조율하고 맞춰가는 시기이니 말이다. 이것 만으로도 스트레스인데, 시부모는 자기 말 잘 듣는 며느리를 만들겠다고 안 그래도 일하고 살림하고 힘든 며느리를 길들이겠다고 나서니 원참...
당신들 자식도 맘대로 못하면서 왜 며느리는 길들이려고 하는지...
친정엄마는 나중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며느리도 결혼하면 반은 가족인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니? 잘 다독이고 자기 사람으로 만들 생각은 못하고..."
내 식구가 된다는 건 절대 '길들이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우리 집에 시집왔으니 친정에서의 일은 잊어버리고 우리 집 가풍을 따라야 한다는 구 시대적 사고방식에 젖어 강요를 해서 먹히던 시절은 지났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 며느리이기 전에 한 사람의 독립된 인격체로 보고 서로 맞춰가는 것이 요즘 시대의 가치관이지 않나?
다른 가정문화에서 살아온 그 사람을 받아들이고 배려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새로운 식구가 생김으로 인해 생기는 변화를 받아 들 일 준비를 해야 한다.
당신의 아들이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선택한 여자이다. 두 사람이 잘 사는 걸 보는 게 당신들의 바람이 아녔던가? 섣부른 며느리 길들이기는 한 가정, 당신 아들(딸)의 가정을 파탄 낼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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