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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Soo Apr 24. 2021

행복 찾기

무엇에 가치를 둘 것인가?

예전부터 생각해오던 것이 하나가 있다.

그건  '노래와 드라마는 왜 다들 사랑을 이야기할까?'였다.

어쩌면 그 이유는 그런 사랑이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그럼 HERO들이 나오는 영화는 왜 많아질까?

아마도 현실이 녹녹지 않으니까...

이 부조리를 벗어나고 싶으니까...


그냥 막연히 요즘 드는 생각은 점점 돈이나  권력 같은 것들 아래서 누군가의 신념이 무너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돈에 대한 집착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보다 더 많이가진 자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처지를  폄하하기도 한다.

돈을 갖고 싶은 욕심의  제한점(Limitation)이 없는 삶을 사는 건 참으로 불행한 일인 것 같다.  


유명 강사 '김미경'씨의 강연 내용이 떠오른다.

자신의 부에 대해 제한점을 정하고, 그것을 달성했을 때 부자 선언을 하라는 것이었다.

너무 위만을 바라보고 부를 쫒으면 삶이 불행하다는 것이다.

부자 선언 뒤에는  들어오는 부에 대해서는 다른 목표를 가지고 쓰라는 것이었다.

기부를 하거나 불우이웃을 돕거나 등등

뇌리에 박히는 말이었다.

물론 그 기준은 누구나 다르겠지만 자신의 삶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수준의 부의 기준을 정한다면, 끝없이 위만을 바라보며 불행하게 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어쩌면 현재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런 이치를 안다면 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짧은 견해이지만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2008. 쾌도 홍길동 마지막회 중에서

또한 오래전에 보았던 쾌도 홍길동이란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홍길동과 일당들이 사라지고 세상의 계급이 사라지고 기회가 동등한 세상이 되었다.   스님이 길을 걷는데 어느 소년이 울고 있는 것이었다.  

"너는 왜 울고 있느냐?"

"하고 싶은 게 있는데 할 수가 없어요."

"요즘은 누구나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이 되었는데 왜 그러느냐?"

"하고 싶지만 돈이 없어요..."


그때 그 느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선견지명을 가진 작가분에게 기립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마 그 작가분은 그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겠지만, 마냥 세상을 순수하게 바라보았던 그때의 난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어릴 적 꿈꾸었던 것처럼  '이 세상이 아름답지 만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곳곳에 그것들보다 가치 있는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


몇 년 전 이태원을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있었다.

삼각지 역 근처에서 장애우 한분이 휠체어로 저상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세 번 정도 시도했으나 버스 안으로 올라오지 못했다. 그때 뒷좌석에서 그것을 보던 '나는 왜 아무도 도와주지 않지? '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때 그 장애우분이 도움을 요청했다.

그런데 뒷문 주위에 있던 4~5분이 서둘러 내려가 휠체어를 거의 들다시피 버스 안으로 들여놓는 광경이 펼쳐졌다.

와~~~ 그때 그 가슴의 뭉클함과 눈물이 핑 돌았던 것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세상에는  많은 면들이 있지만 어느 곳을 바라보고 가치를 둘 것인가는 각자의 판단이다.

다만 너무 한 곳을 , 너무 높은 곳만을 바라보며 뒤도 아래도 보지 못하고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언제 아니면 무엇을 할 때 행복함을 느끼는지...

한 번쯤은 목표나 목적이 아닌 그저 순수하게 나를 행복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들에 집중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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