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해야 하는일
요리사 자격증을 세 개나 있는 요리를 할 줄 아는 그는 그녀에게 요리를 해 주곤 했다.
그가 파스타를 요리해 둘이 맛나게 먹었던 날이었다. 식사 후에 그녀가 먼저 말했다.
"네가 요리해줬으니까 설거지는 내가 할게."
"그래. 좋아."
설거지를 시작하는 그녀에게 그가 다가왔다.
실리콘 솔을 이용해서 먼저 음식찌꺼기를 제거하면 좋다고 알려준다.
"요리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에 정리도 중요해. 요리 자격증 시험 때 뒷정리를 얼마나 잘하는지도 점수에 들어가거든."
"아, 그렇구나. 어쩐지 깔끔하게 정리 잘하더라. 난 혼자 오래 있다 보니 그런 줄 알았어."
"그것도 맞아. 혼자 살다 보니까 어차피 설거지나 청소처럼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있더라고.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결국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미루지 않고 하는 버릇이 생기게 됐어. 그렇게 하다 보니 밥하고 상 차리고 설거지하고 이런 집안일이 힘들다는 걸 알게 됐어. 그래서 여자한테만 미루면 안 되는 것 같아."
"알아주니 좋다. 너처럼 말하는 한국 남자는 처음 본 것 같아. 그렇게 생각 안 하는 한국 남자들이 많거든. 아직도 자기 아들이 부엌에 들어가는 걸 말리는 엄마들도 많으니까. 그럼 우리는 한 명이 식사 준비할 경우 다른 한 사람이 설거지 하는 걸로 하자!"
"그래, 그래도 내가 아프거나 하면 대신해줄 거지?"
"하하하 그럼.. 그런 특수한 상황은 예외로 하지 뭐."
그녀는 예전에 혼자서 살아보지 않은 남자랑은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했던 후배의 말이 떠올랐다. 왜냐고 물어봤던 그녀의 질문에 그 후배는 이렇게 대답했다.
"혼자 살아보고 살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도가 떨어져요. 여자의 힘든 점도 이해 못하고 여자가 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혼자 살아본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데 문제도 적고 편할 것 같아요."
그녀보다 한참 어렸던 그 후배는 벌써 이런 기준을 정하고 있었다.
아마도 맞벌이를 해야 하는 요즘 세대들에게 있어 오로지 집안일와 육아를 여자에게만 떠 넘기는 남자는 매력이 없는 것이 당연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 외국 친구의 집에 방문했을 때도 유학생활을 13년이나 했다는 그녀 친구의 남편은 식사를 마치자 그녀와 그녀의 친구를 위해 커피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 친구의 남편도 그와 같은 말을 했던 것이 문득 떠올랐다. 여자만 하면 힘들고 그러다 보면 사이가 안 좋아질 수도 있다면서 커피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었다.
만약 40살이 넘도록 세탁기 한번 돌려보지 않은 남자라면 ,,,
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모든 걸 엄마가 해주고 그걸 당연시 여기며 살았던 사람과의 결혼생활은... 당연히 힘들다.
"세탁기가 빨래하고 건조기가 건조하는데 뭐가 힘들어." 이런 말이나 내뱉을 테니 말이다.
집안일은 안 하면 티가 나도 매일 해도 티가 나지 않는 일 중에 하나이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런 일들을 함께하고 이해하는 남자를 만나는 건 큰 행운 중에 하나 일 것 같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를 하는 기간 동안 상대방을 잘 파악하고 결혼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생활 습관이나 가치관은 바꾸기가 어렵기 때문에 연애를 하면서 나랑 맞는지 안 맞는지를 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뭐,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인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