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eSoo Jan 02. 2022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뜨거워진 손을 놓고 싶은 순간....

"이제 가야 돼. 나 안아줘."


그가 오른팔을 내민다.

그의 품에 안겨본다. 그리곤 가슴에 얼굴을 묻고 두 팔로 감싸 안는다.

그의 팔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살포시 안으며 그녀의 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맞대는 것이 느껴진다.

잠시 시간이 흐른다.


그녀가 그의 품에서 빠져나온다.

"이제 가야겠다."

그의 표정을 살펴보니 부드러워진 것이 느껴진다.  

'나를 밀어내고 친구 하자더니 행동은 다르게 느껴지네. 아직 나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는 걸까?..’

이런 생각을 뒤로하며 그녀는 발길을 돌렸다.


'친구가 좋은 것 같아. 친구로 오래가고 싶어.'


사람의 인연이 소중하다며, 특히나 나이가 들어가는 요즘은 좋은 인연을 맺기도 어렵고 그런 인연이 생긴다면 오랫동안 이어가고 싶다고 그가 말했다.




찬영이와의 만남을 그에게 이야기한 후, 그는 그녀에게 느닷없는 통보를 해왔다.

 

"우리 친구 사이로 지내자. 나는 여자 친구가 처음 만난 남자랑 술 마시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워. 나는 술을 입에도 못 대지만 에일리는 술도 잘 마시잖아. 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를 그런 불안감에 살고 싶지 않아."

"나를 그렇게 못 믿어? 나에게 믿음이 간다고 했었잖아.”

"그 의미랑 이건 달라. 나 너무 고민이 많아져서 잠도 잘 못 잤어. 그리고 요즘 나를 대하는 에일리의 행동이 나에 대한 집착도 느껴지고 점점 그 강도가 강해지는 것 같아서  좀 숨 막혀."


그녀의 심장이 저려왔다.


'내가 이런 통보를 받을 만큼 그렇게 큰 실수를 한 걸까? 내가 그에게 집착하는 태도를 보였나? '

잠시 말이 없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 그럼 생각할 시간을 좀 줘. 나 역시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 아직 너를 향한 마음이 남아 있는데 친구가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

눈물이 살짝 그녀의 눈가를 졌셨다.

 

"그래. 어떤 것이 우리를 위해 더 나은 결정인지 생각해봐. 여유 있게 시간을 갖고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해. 기다릴게."


그의 집을 나와 그녀의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바빠진 그와 점점 연락이 어려워지고 먼저 잠들거나 하는 시간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머리로는 다 알고 있고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점점 불안감이 밀려오고 그에게 집착이 생기기 시작했다. 또한 전의 연애처럼 자신이 점점 그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깨닫기 시작했다.


언제든 문자를 보내도 되고 항상 답을 해주는 그였다. 솔직히 그가 술 마시고 문제를 일으킬까 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그녀는 그를 대하는 행동이 점점 전의 연애 패턴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생겼던 것일까?


그런 상황 속에서 함께 골프를 쳤던 찬영에게로부터의 연락이 계속 오고 있었다. 큰 의미 없는 보통의 인사였다. 처음엔 간단히 대답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그런 간단한 안부인사가 며칠째 이어 지지자 그녀는 점차 의구심이 들었다.

‘왜 굳이 이런 문자를 보내는 거지?’

그녀는 찬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굳이 이런 안부인사 안 해도 돼요. 다음에 기회 되면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골프 연습하러 가요. ‘

친해지려고 그랬다는 답변과 함께 메시지는 며칠 뜸해졌다.

그러다 또 찬영이로부터 메시지가 온 날, 그녀는 생각했던 바를 행동으로 옮겼다.

'아무래도 이런 메시지 받는 것이 많이 부담이 되네요. 지금 남자 친구한테 미안한 마음도 들고 또 남자 친구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 이제 문자 안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날 감사했습니다. '

그녀는 찬영이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찬영이로부터 알았다는 메시지를 받은 후 다시 연락이 오는 일은 없었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서 그녀는 생각에 집중해야겠다고 결정했다. 그리고는 집 근처 학교의 운동장 트랙을 걸으며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 지금 분명히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고 있는데도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고 있을까?

  처음 만난 남자와 맥주를 마신다는 것이 그에게는 그렇게 큰 상처가 된 거였구나.. 난 왜 그런 행동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걸까?'


그건 아마도 전의 연애에서 느꼈던 것들이 다시 조금 느껴지자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전 남편과 그는 너무나 다른 사람임에도 아직도 그것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행동한 그녀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다 정리했고 이제 달라졌다 생각했지만 아직도 내면 깊숙한 곳에 치유되지 않았던 상처들이 남아있었던 것이었다.

한편으론 '내가 계속 연인으로 남자고 할 자격이 있는 걸까? ' 그녀의 고민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이 관계를 더 이어가고 싶다는 걸 알았다. ' 그렇다면 어떤 것이 서로를 위해 더 나은 결정일까? 친구가 된다면 서로 한 발짝 떨어져서 보게 될까?'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었다.



그와 만나기로 한 날이 되었다.

그녀는 그녀의 집에 있던 그의 물건들을 챙겨 그의 집으로 향했다.

마주 앉은 그들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 그래. 친구 하자! 어쩌면 그게 덜 부담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실은 남녀 사이에 친구가 될 수 있을지 확신은 없지만 한 번 해보지 뭐.  그동안 나도 모르게 집착하는 태도를 보였던 건 사실이었던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더라고. 이런 패턴의 연애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 내가 너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미안해. "

그가 말했다.

"그렇게 결정했구나. 그래 어쩌면 이 결정이 서로를 위해 더 나은 결정일 수 도 있을 것 같아. 이제부터 만나는 인연들은 소중하게 생각하고 싶거든. 쉽게 헤어지고 그런 거 말고 길게 가져가는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어. "


" 여기 너 물건 가져왔어. "

"내 거?" 그가 좀 놀란 듯 물었다.

물건을 받더니 "결정이 느릴 줄 알았는데 행동도 빠르네. ㅎㅎㅎ"

"원래 결정하기까지가 어려운 거지. 결정하면 행동은 빨리해. ㅎㅎㅎ" 그녀가 받아쳤다.



앞으로 또 어떤 다른 날들이 찾아올까?

막연히 알 수 없는 미래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내가 이 관계를 잘 이어갈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 둘 다 핑계 많은 겁쟁이 일지도..'

그녀는 이런저런 생각을 뒤로한 채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쉬이 잠이 들지 않는 밤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흔들 다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