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의 위치

옷도 맘대로 못 입나요?

by HeeSoo
어느 순간 상대방으로부터 어떤 말을 들었을 때 그 사람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생각들이 무엇인지를 가늠할 수 있을 때가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았던 점 중에 하나가 이런 통찰력이 조금은 생겼다는 것이었다.


무대를 옮긴 그들은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먼저 대화를 시작한 건 시아버지였다. 그 첫마디는 이랬다.


"아까 내가 덥다고 했는데 말을 안 듣고 어디 시부모랑 남편 앞에서 고집을 피워. 그리고 수저를 시아버지가 놓게 만들어."


식사를 하러 밖에 나가자고 해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그녀에게 시아버지는 밖에 덥다고 알려 주었다.

아마도 재킷을 걸쳐 입은 그녀에게 그 재킷을 벗으라는 의미였었나 보다. (나중에 돌이켜 생각했을 때 말이다.)

음식점에서 수저 서랍이 시아버지와 남편의 옆에 있어 그녀의 손에 닿지 않아 시아버지가 수저 세팅을 했었다.


그녀는 그때 그 순간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왜 대화의 첫마디를 저렇게 시작한 걸까? 아마도 그게 뇌리에 꽂혀서?

어디서 감히 시아버지가 얘기하는데 며느리가 말을 안 들어? '

'바로 앞자리의 자신의 아들도 가만히 있었는데 멀리 앉은 며느리 탓만 하네'


지금 생각하면 가부장제의 구조의 집에서 '왕 노릇'을 하고 있던 그에게 어느 누구도 반항(?)을 한 적이 없었던 모양이다. 저런 것조차 고집을 부린다고 표현을 한 걸 보면 말이다.


이때 그녀가 깨달은 건 집안에서의 '며느리의 위치'였다.

시부모 앞에서 고집을 피워도 아닌 시부모랑 남편 앞에서....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말이다.


먹이 사슬의 제일 위는 시아버지, 그 밑에 시어머니 (어쩌면 아들이지도), 그 밑에 아들, 그리고 그 맨 아래에 며느리...


그녀는 결혼이란 남편과 아내의 동등한 결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시부모님은 내가 사랑해서 결혼 한 남자의 부모님이니까 존중해야 된다고 생각했지, 떠받들고 그 말에 무조건 '네네' 충성해야 되는 위치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결혼과 동시에 시부모는 '갑'의 존재가 되고 며느리는 '을'의 존재가 된다는 걸 어리석게도 인식하지 못했던 그녀의 실수였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자들에게 아직도 결혼 후의 위치는 '을'이어만 하는 걸까? 요즘은 '시집을 간다.'가 아니라 '결혼을 한다.'라고 표현한단다. 이 말 즉슨, 예전처럼 온 가족이 모여사는 집에 며느리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가 하나의 독립된 가정을 이루고 사는 세상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와 더불어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볼 때, 자녀들의 사교육비를 생각할 때 등등 많은 남편들은 아내들이 맞벌이를 하길 원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시댁에서의 여성의 위치는 남편의 옆이 아닌 아래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건 부당하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본인이 말했는데 말한 대로 액션을 취하지 않았단 이유만으로 '고집을 부린다.'라고 평가해 버리는 건 도대체 무슨 기준인 것일까?


화성으로 우주선이 날아가고 스마트 폰으로 은행업무부터 대부분의 일이 가능해진 이 첨단 세상이 되었어도 여전히 시집이라는 가족 안에서의 며느리는 그저 말하면 들어야 하는, 나쁘게 말해 복종을 해야 하는 '몸종'과도 같은 위치가 되어야 하는 그 결혼을 왜 그리도 하라고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며느리는 남의 자식이다. 당신의 아들만큼 공부하고, 당신이 아들을 귀히 여기는 만큼 며느리고 귀하게 자랐다. 그 여인은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한 것이지 시부모에게 복종하려고 결혼한 것이 아니다.

왜 아들이 선택한 여자에게, 남의 집 귀한 딸에게 이런 취급을 하는 게 옳은 걸까?


혼인신고를 했다고 "너는 이제 우리 집 사람이다."라고 말을 했으면 가족으로 대해 주던가!!


독립적으로 살아온 그녀에게 있어 결혼과 동시에 나란 존재는 없어지고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만 남았다는 느낌이었다. 운전석에 앉아있던 내가 조수석으로 밀려난 느낌이라고 표현했던 곽정은 씨의 말이 그렇게 공감이 될 수가 없었다.


결혼을 하기 전 이런 점들을 미리 파악하지 못한 건 그녀의 불찰이었다. 다른 누군가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한 지인으로부터 결혼하지 않아면 절대 알 수 없다며 자책하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다.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고 충분히 '난 누구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 자신을 먼저 알아채고 그 다음 결혼에 대해 상대방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눠야 한다. 심리상담가는 대화를 통해 그와 그의 가족에 대해 알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족들과의 만남을 갖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실제로 겪어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렵다. 특히나 결혼 후에 태도가 달라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물론 다 똑같지는 않지만, 아직은 가부장적인 형태의 가족이 많은 것이 사실이고 이러한 결혼생활 속에서도 살아갈 자신이 있다면 그때 신중하게 결혼을 결정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니면 자신에 맞는 배우자와 분위기의 집안을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기도 하다.


결혼은 연애와 다르다. 삶을 같이 살아간다는 거에 대해 신중히 고민하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서로가 맞춰보고 또 맞춰본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Cover photo from https://mind-move.tistory.com/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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