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우리 요가할래?

by 롸잇테리언








겁이 많은 편이다.




언제부터였냐고 물어보면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이가 들면서

겁이 더 많아지고 있단 사실.








수없이 넘어져 무릎이 깨져도

한바탕 울고 후시딘 바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자전거에 오르던 나는

이제 없다.



얼마 전, 남편이 따릉이를

타보겠냐며 건네줬는데

페달 두어번 밟다

무서워서 발을 땅에 디뎠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그렇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 사람과 나의 결을 조율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무례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이

상당히 떨리는 나이가 됐다.





업무에 변화가 있는 것도 두렵다.


아이들 돌이 지났을 무렵,

청천벽력처럼

선배님 자리를 맡게 됐을 때

통장에 들어오는 돈이

조금 더 늘어났다는 사실보다

'변화값'과 '책임값의 무게'가 커졌다는

사실이 굉장히 피곤하게 다가왔다.






고작 서른 여덟,

뭘 그리 오래 살았다고

사사로운 변화를 반기지 않게 된 걸까.


이래선 안 된다.

뭔가 확실한 계기가 필요하다.

인생의 전환점.



한방병원에 입원한 엄마는

암 수술 직후보다

걱정이 더 많아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사방이 암 환지고,

항암 부작용과

재발을 겪은 분들이니...

남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밖에.



결국 엄마는 일주일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떨어진 체력 탓에

아이들을 번쩍 안아주지도,


예전처럼 상다리 휘어지게

밥을 차려먹지도, 못했다.




"내년에 일 할 수 있을까...?"



엄마는 평생을 일한 워킹맘이었다.


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건

식당일이었는데


이 식당일로 말할 것 같으면

기관지도 문제지만,

식재료를 대량 옮기고 다듬고,

조리하는 과정에서

허리, 손목 등이 모두 망가지는

고된 일이다.




엄마는 허리도, 무릎도,

손목도 좋지 않다.



내가 길길이 날뛰어

식당일은 쳐다도 보지 않기로

굳게 약속했지만,

백세시대에 환갑 좀 넘었다고

쉬는 게 말이 되냐며

방문 요양을 알아보겠다고 했었다.



그런 엄마가, 갑자기

인생에 모든 자신감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조직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던 날,

우리는 떨리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진료실 문을 열었다.





"1기네요. 다행입니다.

추적만 하면 되겠어요."




그날 저녁,

엄마는 고생했다며

우리에게 갈비를 쐈고,


다음날 새벽부터,

서울식물원으로 조깅을 나가기

시작했다.




묘한 변화가 감지됐다.


나는 그것이 삶에 대한

의지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폰을 한참 들여다보던 엄마가

말했다.



"외숙모는 줌바댄스인지뭔지를 한다더라."


"00아줌마도 문화센터에서

한국무용인지 그런 거 한대."





"엄마도 하면 되지."




평생 일만 하느라

그 흔한 네일아트 한 번 받아본 적 없고,

에어로빅 한번 가본 적 없는 엄마.




"내가? 나 혼자?"



"...내가 같이 가 줄게."






엄마의 상태를 고려해

집 앞 상가에 있는

작은 요가원에 등록했다.




엄마와 함께 요가를

할 줄이야....

인생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우리는 뻣뻣함까지 닮아

요가원에서 가장 뒤쳐지는

꼴찌1, 꼴찌2로

물을 한껏 흐리고 있다.





그럼, 뭐 어떠한가.



어떤 모습이든,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엄마.



정말 '나마스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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