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프는 대체 어디서 오고 어떻게 사라지는 걸까..?
한참 바쁜 날들이 지나가고 조금 안 바빠질 때쯤, 이제 일에 익숙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뭔가 알 수 없는 무기력증이 찾아왔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이건 마치-
집-회사-집을 반복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몸만 움직이고 있고 머릿속은 계속해서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침에 회사에 와서 내 자리에 앉으면 - 카카오톡으로 한국에 있는 친구와 대화하기, 급하지 않은 일들은 다음 주나 다다음주로 미루기, 안 해도 되는 일은 하지 않기, 넷플릭스로 드라마 보기, 진짜 엄청 급한 일만 빨리 해치우기, 어차피 집중이 안되니까 놀다가 퇴근 시간 때쯤 후다닥 일하기, 멍하니 앉아 있기 등등... 다양한 행동들을 하며 퇴근시간이 어서 오기를 기다렸다.
억지로 일을 하려고 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래서 억지로 일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 대신, 출퇴근 시간은 잘 지키려고 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날수록 죄책감이 생겼다.. 회사에서는 딴생각, 넷플릭스, 유튜브를 보며 카카오톡을 하고 급한 일들만 빠릿하게 처리하고, 집에 와서는, 오늘 하루도 낭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백설공주언니에게 SOS를 보냈다. 언니랑 회사 근처에 쌀국수를 먹으러 갔다.
나: 언니, 슬럼프가 온 것 같아..
언니: 음.. 슬럼프.. 가끔 오지..
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언니: 응.. 어쩔 수 없어.. ^0^ 그냥 버텨야지..
그리고 우리는 셀카를 열심히 찍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슬럼프는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가..? 회사에 멍하니 앉아 있는 게 월급루팡처럼 느껴져서 스스로가 한심했다. 너무 답답한 마음에 구글에 월급루팡을 검색했다...
월급루팡 - 회사에서 하는 일 없이 월급만 축내는 직원. 월급과 도둑의 대명사인 프랑스 괴도 소설의 주인공인 루팡을 결합시킨 단어
그랬더니..
그렇다. 나는 놀고 있는 게 아니었다. 월급에 맞춰서 일하고 있는 것뿐이다.. ㅇㅅㅇ
죄책감이 조금 사라졌다...
이거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ㅇㅅㅇ
나는 월급루팡도 못됀다.. 월급좀도둑이나 월급경범죄자다.
한참 짤들을 보면서 웃고 있다 보니까 스트레스가 풀렸다- 답답한 마음으로 집-회사-집을 반복하며 2주 정도가 지나자, 자연스럽게 다시 손에 일이 붙기 시작했다. 시간이 답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니까 괜찮아졌다. 슬럼프가 지난 후, 모임이나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슬럼프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다들 한 번씩은 슬럼프에 대한 경험이 있었다. 슬럼프가 오는 게 어쩔 수 없다면, 잘 이겨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