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끄적임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 걷는다는 것은 잠시 동안, 혹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 다비드 르 브루통, <걷기 예찬> 중
진행하는 일 중에 명사에게 책 한 권을 소개받는 칼럼이 있는데 이번에는 인문학자인 김경집 교수님께 원고를 받았다. 그 분은 '삶의 속도를 조절해주는 책 한 권'이라며 다비드 르 브루통의 <걷기 예찬>을 추천했고, 걷는 일은 곧 바쁜 일상에서 잃었던 내 감각을 회복하고 영혼의 속도를 조절하는 일이라며, 그런 때 함께하기 더없이 좋은 책이라 설명했다.
솔직히 <걷기 예찬>은 쉽게 읽히지 않는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접한 건 벌써 3년도 더 됐는데 그 사이 벌써 몇 번을 읽다 놓기를 거듭했고 심지어 아직도 (자랑은 아니지만) 다 읽지 못했다. 그래서 삶의 속도를 조절해주는 책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는지 모른다.
문득, <걷기 예찬>을 다시 생각하게 됐고, 김경집 교수님께 걷기란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일이라면, 과연 내게 걷기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됐다. 뭘까. 걷는다는 것은. 내게.
그리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온종일 걷기도 한다. 여행을 다닐 때 그렇다.
뭐, 누구나 여행 다닐 때면 많이 걷겠지만 나는 유독 아픈 다리를 두드려 가면서, 커피 한 잔에 몸을 쉬어가면서 아침부터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걷고 또 걷는다. 비단 여행을 가서만은 아니고, 왠지 여행지에선 걷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내 모든 감정이 다 새롭게만 느껴지고 그 기분이 내겐 또 다른 감정으로 다가온다. 이 또한 여행허세라고 할 수도 있겠다. 정말 고수는 익숙한 곳에서 떠나지 않고도 언제나 낯섦과 새로움을 느끼기도 할 테니까.
여하튼, 익숙하지 않은, 완전히 낯선 환경에서 걸을 때 나는 비로소 '오롯하게 서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정말 기댈 곳 하나 없는 곳에서 혼자 힘으로 무언가를 해낸다는 그런 기분이랄까. 소파에 손을 딛지 않고 혼자 일어선 아이처럼, 처음 혼자 걸음마를 뗀 것처럼, 오로지 내 뜻에 따라 진로를 결정하고 인생의 방향을 틀었던 때처럼 진짜 내 생각과 의지대로 움직여 이뤄낸 성과를 마주하는 기분이다. 여행길 걷는 매 순간이 그렇다.
어쩌면 걷는다는 것은 내게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손을 뻗어도 도움 하나 청할 곳 없는 막다른 길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설 용기를 얻는 일.
기댈 어깨가 있어도 먼저 혼자 힘으로 도전해보는 습관을 갖게 하는 일.
정글과도 같은 험악한 경쟁사회에서 밟히지 않고(혹은 덜 밟히고) 여럿과 함께 서 있을 수 있게 하는 일.
걷기, 란 내게 그런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다비드 르 브루통도 책에서 비슷한(혹은 같다고 볼 수 있을) 말을 했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 때 경험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돌아온다
나라는 세계를 온전하게 경험하고, 나를 온전히 가늠하고, 이끌어갈 수 있게 하는 힘. 걷기란 그런 것 같다.
오랜만에 <걷기 예찬>을 다시 꺼내 읽어봐야겠다. 어쩌면 이번엔 끝까지 완독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또 다른 걷기에 대한 재밌는 나만의 의미를 찾아낼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