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밥 먹고사는 일
매우 좋아하는 미드 <Sex and The City>.
하지만 단 하나 동의할 수 없는 건 캐리가 일주일에 칼럼 한 편 써서 집세 내고, 마놀로 블라닉 구두를 사고, 파티를 즐기고 그런 것들. 아무리 집세를 맘대로 올릴 수 없는 빌딩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마 무시하게 고료를 받는 게 아니라면, 일주일에 섹스 칼럼 한 편으로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 (특히 수백 켤레의 마놀로 블라닉? 웃기지 마세요.) 모아놓은 돈이 엄청 많다면 모를까. 현실성을 위한 보정인지는 모르지만 - 결국 드라마에서 캐리는 가산을 탕진하고 버스를 타거나 걸어 다닌다. 여하튼, 캐리처럼 일해서는 먹고살기 힘들다. 왜냐하면, 칼럼 한 편의 고료는 그렇게 높지 않으니까. 캐리가 신문 한쪽에 길게 박스로 들어가는 정도의 칼럼을 쓰고 거기에 100만 원쯤 받는다면 또 모를까.
팝 칼럼니스트로 꽤 유명한 김태훈 씨도 원고료 좀 올려달라고 한 방송에서 말했을 정도로 우리나라 글쟁이들의 원고료는 후하지 않은 편이다. 그냥 뚝딱거리면 나오는 게 글인 줄 아는 사람도 많다. 사보나 홍보물을 제작할 때도 기획편집 비용부터 깎고 들어간다. 안 그래도 없는 거에서 더 깎는 거다. 실제 이윤을 남기는 부분은 다른 곳인데 말이지.
나 역시도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대답하기 애매한 질문은 원고료에 관한 것이다.
누군가 내게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으면 나는 "이러 저러한 글을 써요"라고 답을 한다.
그러면 곧 돌아오는 질문은 이렇다.
"글 쓰는 일 쉽지 않을 텐데" 내지는 "글 쓰는 일은 돈 보단 자부심, 명예 뭐 그렇다던데, 그래요?"
풍문으로 떠도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듣자면 글 쓰는 일은 먹고살기 힘들 정도의 고행 같다.
정말 그런 것이냐... 그런 게야..?
아니다. 꼭 그렇지는 않다. 소설가로, 시인으로의 조금 특수한 경우까지 아울러 말을 하긴 어렵지만, 칼럼을 쓰거나 프리랜서 기자, 또는 프리 작가와 같은 일을 하는 글쟁이의 분류에서라면 꼭 먹고살기 힘들다고만 할 수는 없다.
고료는 짜다.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라는 거다. 그러나!
(물론 사람에 따라 행복한 생활의 기준이 다르겠지만) 엄청나게 사치스러운 생활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면 여러 가지 일을 한다는 전제하에 충분히 인간답게 먹고살 수 있다. 흔히 평균이라고 이야기하는 생활 수준을 영위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먹고사는 문제, 그러니까 일거리를 찾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평균적인 원고료가 궁금했던 적이 있다. 이 일을 시작했을 땐 그랬다. 보통 작가들은 얼마를 받을까. 전문 칼럼니스트들은 한 꼭지에 얼마를 받을까. 한 번 취재를 다녀오는 데 얼마가 적정한 고료일까. A4 한 장, 원고지 1매에 얼마를 받아야 할까. 시간당 계산은 어려울 테고(같은 질문을 던졌다면 한 번 생각해보자, 이게 말이 되겠나. 무슨 최저시급으로 시간당 얼마에 나올 수 있는 일이던가.)
기획 일도 하면서는 얼마의 고료를 지불하는 것이 적정할까를 항상 고민한다. 예산 내에서 운용은 해야 하고, 그렇다고 무조건 고료를 퍼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런 상황에서 고료 대비 고퀄의 원고가 나오지 않을 경우엔 일이 두 배가 되니 속이 쓰리고 피로는 늘고.
어쨌든 책정 기본 단위는 원고료 1매, 또는 A4 1장이다.
캐리가 "보그에서 글자당 00을 주기로 했어~"라면서 호들갑 떨 듯 영어권 국가에서는 보통 한 글자당 얼마로 계산한다. (- 기본 원고료와는 상관없는 얘기지만 - 영문 번역의 경우 글자 수로 계산하기도 한다. 아마 많이 그런 듯. 나도 한-영 번역을 해야 하는 경우 글자 수로 계산해서 고료를 지급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단어로 계산하기 어려워서 매수로 계산한다. 그것이 a4든 원고지든.
평균적으로 a4 1장에 10만 원 더하기 빼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전문성이나 매체 특성에 따라 더 낮아지기도 하고 높아지기도 한다. 사보 쪽을 기준으로 보면 평균적으로 10만 원 선이다. 잡지의 경우에는 6~7만 원 정도라고도 들었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지고 빼지는 부분들이 변수다. 매체에 따라 지급하는 정도가 천차만별이기 때문. 많이 주는 경우는 a4 1장에 30만 원까지도 가지만 보통은 10만 원에서 20만 원 사이에서 정해진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드는 경비, 지방 취재의 경우 교통비 등은 별도 지불된다.
잠깐, 사담.
꽤나 유명했던 모 학자에게 원고 청탁을 했던 적이 있는데 a4 1장에 100만 원을 받는다고 했다. 헐랭. 하면서 당황했지만, 분량이 적고 그러니 좀 더 양해를 해주십사- 요청해서 조금 낮춰 간 적도 있었다.
여하튼 이 분의 경우엔 워낙 유명한 분이기도 했으니 그런 프리미엄이 붙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개 프리랜서 글쟁이에게 100만 원을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하하.
얼마 전에 모 기자 분께 원고를 청탁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원고료 이야기에서 멈칫. 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원고료는 여전하네요."
10년 전에 이 일을 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ㅠㅠ) 이런 이야기를 빈번하게 듣는다. 내가 일을 처음 시작할 때와 지금을 비교해봐도 원고료는 거의 그대로다. 마지노선에 맞지 않는 경우엔 하지 않지만, 대체적으론 평균을 유지하고 있다.
고로, 경력이 쌓이면 반드시 오른다고는 말할 수 없다. 연봉제 직장인도 아니고, 그렇게 금액을 정하기엔 좀 애매한 부분이 많다. 그러나 일한 경력 만큼 전문성을 쌓는다면 해당 분야에서는 가능하다. 그리고 경력이 쌓인 만큼 커버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넓다면 고료는 올려 받을 수도 있다. 위의 기자분과는 조율해서 원고료를 상향 조정해 지급했다. 그만큼의 원고도 만들어 주시니 의뢰자로서도 아깝진 않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고료가 지급되는 건 아니다. 비슷한 칼럼을 취재하고 쓰는 자유기고가에게 게야 정해진 매수에 따라 고료를 지급한다. 하지만 인지도나 글 쓴 경력이 많아짐에 따라 조금은 더 받을 수도 있고, 전문성에 따라 더 받을 수 있기도 하다. 일정 부분 조율도 가능하다. 실제 전문가들은 기획자와 논의 후 얼마를 더 요구하기도 한다. 5만 원이든, 10만 원이든 적정 선에서 조율은 언제나 가능하다. 그러니 자신의 기준을 명확히 하고 상대의 적정선도 파악해 잘 조율해 보자. 냐하하.
몇 년을 해도 고료 조율은 언제나 어렵다. 특히나 "저희가 예산이 줄어서 고료가 많지가 않아요"라거나 "상황이 요즘 어려워서..." 뭐 이런 얘기를 하면 뭐라 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모든 회사는 예산이 별로 없고, 시장 상황은 언제나 좋지 않다. 영화 <베테랑>에서 유아인도 그랬지 않나. 항상 경기는 안 좋았다고.
그러니 요구할 만하다고 생각이 들면 그런 말은 생각하지 말고 내 시간과 비용을 고민해서 당당히 요구하자! 물론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된 사람이라면 평균 선에서 그냥 받고 하자. 경력을 쌓는 게 더 중요하니까. 하지만 조금 더 기획의 범주까지 발을 들이게 된다면 조율할 건 조율하자~ 금액을 조정하지 못한다면 일의 범위, 내용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시간도 돈이다.
글의 퀄리티에 따라 고료를 지급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간혹 원고료를 주기 아깝다 느낄 정도의 막 쓴 글을 주는 필자도 있으니까. 기획자의 의도나 주제에 맞지 않거나,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이도 저도 아닌 그런 경우엔 고치기도 힘들어서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글의 퀄리티를 논하기는 어렵다. 잘 쓴 글과 못 쓴 글, 누가 평가하고 누가 그에 맞춰 금액을 정할 수 있겠나. 막 써서 주는 이들도 있겠지만, 신경 써서 글을 쓴 이들이 더 많을 터. 함부로 논할 문제는 아니다.
어쨌든, 필자에게 지불되는 원고료에는 분명 평균적 금액선은 있다. 하지만 매체별로, 필자에 따라 천차만별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먹고 살 만큼의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원래 회사에서도 여러 가지 일 하니까) 조율을 하든 주는 대로 받든, 자신의 능력에 맞는 적정 고료를 받는다면 먹고사는 게 그리 어렵기만 한 일은 아니다.
덧.
글밥 먹고사는 일에 궁금하신 게 있으면 질문을 주세요.
성심성의껏 답변드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