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그래야만 하는 일’은 없단다

by writer JELLY

***

젊은 지원아.


앞으로

몇 번의 굵직한 선택을 해야 할

순간들이 올 거란다.


너는 주관이 뚜렷한 아이라

네가 택할 것에 대해

확신하는 경향이 있지.


네가 읽은 지혜로운 책들로,

네게 영향을 준 사람들의 말로,

네가 보고 느낀 예술작품들로

너의 가치관이 단단해졌다는 것을

안단다.


하지만 젊은 지원아.


이 세상에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

대학생 때 너는 만나던 사람에게

어학연수를 갈거라고 통보했었지.


그 사람은 너를 붙잡았지만

너는 무조건 기다려달라고만 했고.


80이 넘은 지금도

그 때의 마음이 생생하구나.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

‘지금 안가면 미련이 남을 것 같다’

‘내 미래는 창창한데 이 사람이 내 발목을 잡는 것 같다’


그가 하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너는 이미 답을 내렸었어.

무조건 갈 거라고.


그런데 인생 막바지에 와 보니...


‘꼭 그때가 아니어도 됐었다’

그때 너는 조급한 나머지, 단 1년이 네 미래를 좌지우지 할 거라는 착각에 빠져있었어. 살아보니 일생 중 1년은 그리 길지 않더라. 해외를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고. 미리 말해두지만, 넌 평생의 반 정도는 외국에 있을거란다. 2070년 지금은 한국에서 미국 가는 일이 2020년에 서울에서 도쿄 가는 것과 비슷해졌거든. 세상은 변하니까… ‘꼭 지금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조금 덜어내도 좋겠구나.


‘어차피 미련 없는 삶은 없다’

너는 그때 미련이라는 게 없앤다고 없앨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구나. 어떤 걸 선택하더라도 일정 수준의 미련은 남게 되어있어. 안 가본 길이 아름다운 법이거든. 내가 선택한 한 가지 외의 수만가지 가능성들이 왠지 좋아보이지. 그래서 삶 전체는 미련투성이란다. 버리려고, 없애려고 해봤자 늘 따라다니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예쁜 청춘시절에, 너무나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게 됐는데, 서로를 할퀴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시간을 가졌더라도 좋았을거야. 그 한 번의 연애가 네 발목을 잡을만큼 중대하게 작용하진 않았을거야. 아니, 어쩌면 너에게 힘들 더 실어줬을지도 모르지. 살아보니 나는 사랑할 때 가장 많은 걸 배웠더라. 지금까지 남편과 지혜롭게 같이 살 수 있었던 원동력은 모두 사랑하며 배운 것들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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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

‘대충 선택하고 대충 살라’는 건 아니야.


네 집의 모든 문을 닫아놓지는 말거라.

창문 하나만은 항상 열어두렴.


네 확신대로 선택할 수 없는 일들이

앞으로 펼쳐질거야.


생각지 못했던 선택지가

지혜로운 길을 열어줄 수도 있으니

뭐든 단정짓지 않기를 바라.


‘꼭 그래야만 하는 일’은 없으니.


2070년 5월 13일

할머니가 된 지원이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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