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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문 Sep 15. 2021

마음속에 건담이 필요해

어울리지 않는 건담과 모기 상관관계에 대한 고찰

여보, 조심히 잘 다녀와요


다소 차가운 바람이 부는 가을 아침


평상시에 채식을 즐기는 남편이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제도 함께 지내던 친구의 아내가 사망한 터였다.


그는 길지 않은 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well dying이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태어나고 물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한동안 웅크려 지내다가 어른이 되어 배우자를 만났다.


세상의 수많은 꽃들과 꿀의 달콤함을 깨닫기도 전에 어른이 되어 자손들을 건강하게 낳고 이제는 힘이 많이 빠진다.


배우자가 그저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고 아이들이 잘 태어나 자라기만을 바랄 뿐,다른 부귀영화는 누릴 것 생각도 없었다


이 모든 기억들은 순간순간 찰나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아내가 무리하지 않고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모기 관점에서의 세상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

잠시 가족여행이라도 가고 싶어 선택한 곳은 동네 공원이다.


아이들에게 늘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겠다고 차를 타고 2~3시간씩 갔다.

가는데 2~3시간, 오는데 또 그만큼 시간이 걸리니 그만큼의 시간은 길에서 보내야 했다.


가만히 보니 답답해하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나였다. 아이들은 가까운 공원을 좋아하고,  나는 차를 타고 가는 특별한 곳을 좋아했던 것 같다.


공원에서 돗자리를 펴고 여유를 즐기니 좋았다.

하지만 이곳에도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이 모여들었다.


모기와 개미


아마도 그들의 영역에 우리가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이겠지


개미는 그럭저럭 같이 지낼만했는데 모기를 참을 수 없었다.  나름 모기를 잡아가면서 과자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술래잡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집으로 가는 길에는 10군데가 넘는 처절한 전쟁의 상처를 안고 집으로 향해야 했다.

우리 관점의 세상




산란기에는 늘 배가 고픕니다.

남편과의 만남 이후 배 속에는 새 생명들이 느껴집니다.


오늘은 남편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공원 도착하자마자 20m 멀리서 냄새를 맡았습니다.


사람들의 땀냄새, 숨 쉬면서 나오는 공기 냄새, 여자 사람의 호르몬 냄새를 열심히 맡습니다.

드디어 한 가족을 찾았습니다. 오늘은 혈액을 섭취한 지 딱 10일째 되는 날입니다.

한 번의 산란을 위해서 10번이나 위험을 무릅쓰고 동물의 피를 섭취해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큰 부담입니다.


남자들은 꽃의 꿀, 과즙, 수액 등을 먹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늘 편하죠. 바깥활동은 하는 우리 여자들은 늘 위험에 노출이 되어 있죠

고마워할 줄 모르는 남자들은 오늘도 잘 다녀오라는 인사만 건네면 다인 줄 압니다.


그래도 알고 있습니다. 남편은 저와의 만남 후 이제 얼마 더 살지 못한다는 것을요

저는 오는 영양을 충분히 섭취하고 3~4일에 걸쳐 수정과 산란을 할 계획입니다.


새 생명이 태어나는 과정은 어찌나 신기하지 모릅니다. 약 30일이라는 우리 모기의 생에서 가장 신비로운 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부모님도 그렇게 살아왔나 봅니다.





다음날 다시 한번 같은 공원을 찾았다.

이번에는 그 소나무 밑이 아닌 좀 떨어진 풀밭에 자리를 잡았다.


봐, 오늘은 모기가 없지?


역시 여유로운 공원이 최고야!


조금 나고 나니 눈에 간신히 보일까 말까 한 작은 벌레가 보였다. 잡으려고 하니 톡톡 튀었다.


"벼룩인가?"

" 벼룩이 뭐야?"


"응, 옛날에 있었던 벌레인데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어."

"이것도 피를 빨아먹어?"


그때부터 호들갑이 난리가 났다.

자리를 또 옮기자는 둥 그러다가 아들은 삼촌이 사주신 건담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는 희한하게도 벼룩이니 벌레나 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건담 조립에 집중하느라고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을까

딸은 나와 산책을 한 바퀴 돌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반장선거를 했는데 한 표 차이로 당선이 되었다는 둥, 요즘 그림 그리기가 잘 안된다는 둥, 좋아하는 웹툰 작가의 굿즈가 나왔다는 소소한 이야기들


우리는 저마다 이야기를 펼치고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잔디밭 위 돗자리에 누워 있었고 아들딸들도 편안한 자세로 일요일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잔디밭의 손님이었던 저희는 그렇게 좋아하는 일을 했다. 그리고는 옷을 훌훌 털고 돗자리를 걷어서 자리를 비웠다.


모기에 집중하던 그때,

벌레에 두려워하던 그때는 언제였는지 잊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공존하는 법을 배웠다.




모기와 벼룩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모기도 벼룩도 각자의 인생을 살아갑니다.

특별히 우리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 살고 있다기보다는

그들의 생존이 의도치 않게 우리에게 피해를 주거나 맞기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내가 싫어하는 모기 밭에서 굳이 하얀 살갗을 드러내 놓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모기가 싫으면 장소를 옮기거나 모기퇴치약을 뿌리고 갈 것 같습니다.


모기가 많으면 장소를 옮겨도 되고, 모기를 다 잡아도 되죠.

모기향을 피워도 되고 방법은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여기는 모기가 문제지만 저기는 벼룩이 문제이고

또 어디는 뜨거운 햇살이 문제일 수 있다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건담이 필요합니다.

우리 머릿속의 모기를 물리쳐줄 건담


행복은 어느 날 우연히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아요

진정으로 행복하고 싶다면 우리가 몰입할 수 있는 건담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꼭 건담이 하나일 필요도 없고, 또 꼭 건담일 필요도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젯밤에 먹다 놓은 물컵에 화가 나고, 아이들이 정리하지 않은 장난감에 잔소리하고, 화장실 머리카락에 신경이 곤두섰던 날들이 기억납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은 인간의 생존본능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것들은 우리의 생존과 관계가 없어진 지 오래입니다.


행복에도 훈련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는 훈련 같은 것이요.


오늘도 나를 위해 아침에는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준다던가 커피 향기를 맡으며,

어젯밤에 읽었던 책의 주인공이 있던 장소로 순간이동을 하는 연습을 합니다.


고등학교 때 읽었던 파울료 코엘로의 연금술사라는 책의 이런 구절 문득 떠오릅니다.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도다.
                                                                                  - 연금술사(Alchemist) -
행복을 위해 마음속에 모기향을 피워두기로 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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