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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문 Dec 20. 2021

테이블 위 구슬

흔한 연말

월요일 아침, 사내 게시판에 승진 발표가 났습니다.

아끼는 회사 후배가 올해는 어려울 것 같다며 좌절하던 모습에 가장 먼저 후배 이름을 검색해 보았습니다.


승진 과장 OOO.

'오~ 됐네!' 마치 내가 승진이 된 것 마냥 기뻐, 바로 후배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축하해! O과장"


재택근무 중인지라 아내와 학교 가는 가방을 멘 아들도 스피커 폰으로 모두 축하의 인사를 건넸습니다.

순간, 마시고 있던 커피가 더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후배뿐만 아니라, 동기들도 제법 승진을 하였습니다.

오늘은 기쁜 날임에 분명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마음이 아프고, 세상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요.


제가 그랬었고, 또 제 동기가 그랬을 것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이제는 크게 기대하지 않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쁜 일은 함께 축하해주고 마음 아픈 일은 엊그제 쌓인 눈처럼 금세 녹기를 기다립니다.

눈이 오는 중에 빗질을 해도 힘만 든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친한 동기 한 명이 퇴사를 했습니다.

오늘 어떤 동기는 승진을 하고, 또 다른 동기는 퇴사를 한 샘입니다.


"새로운 길을 가는 나에게 축하를 해주라!"

퇴사한 동기는 본인에게도 축하를 해달라고 했습니다.


연말이 되자 다들 저마다의 길을 걸어갑니다.

가슴속에 품었던 소중한 무엇을 선택해 나아갑니다.

내 가슴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들여다봅니다.


테이블 위 구슬

세상의 선택을 요구하는 곳이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모두 다 가지고 싶어 한다는 데 있다.

world is trying to make you choose
The problem is you trying to live two different lives.


아침에 커피를 마시다가 원탁 테이블 위에 있는 귤이 굴러 떨어졌습니다.

귤을 얼른 줍겠다고 하다가, 컵에 담긴 커피를 툭 쳐서 대형사고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문득 머릿속에 든 생각은 "내 삶의 테이블"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건강, 가족, 돈, 일 등이 그것일지 모릅니다.


삶은 한 테이블에 놓여있는 이들 구슬이 쏟아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날 회사일에 목을 매며, 건강과 가족들이 떨어지는 줄도 몰랐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가족과 건강을 챙기다 보니 이번에는 돈이, 일이 반대편으로 쏟아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 균형을 맞추기란 이토록 어렵구나!'


그나마 주요했던 것은 코로나로 인해

왕구슬을 발견하고 중심에서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균형을 잡아갔다는 점입니다.


한 결 나아진

매년 연말이 되면 승진이다, 포상이다 세상이 만들어낸 무엇으로 의미를 찾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진정한 "나" 더 가까워졌는지, 발전했는지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을 빌려보자면

"남보다 우수하다고 해서 고귀한 것은 아니다. 진정 고귀한 것은 과거의 나보다 우수해지는 것이다"

승진도 상장도 재산도 내가 남보다 고귀하다거나, 혹은 남이 나보다 고귀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각자의 테이블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올 한 해 내가 '남보다' 혹은 '남이' 나보다 가 아니라


'내가 올 한 해 진정 좋아하는 일을 했는지..?',

'내가 누군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한결 나아졌는지..?'


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 있었으면 합니다.


남들이 내가 과하다고 놀림받고 있는 바로 그것,

반대로 그것이 내가 가지고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다.


평화롭고 차분한 연말 나만의 균형 감각은 잃지 않고

"한결 나아진 나"의 몸과 마음이 편안했으면 좋겠습니다.


테이블 위에 혹시 너무 많은 구슬로 힘들어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구슬의 수를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있는 사람은 바로 '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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