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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문 Apr 03. 2022

삶은 계란

뻐꾸기가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이유

삶은 계란


계란 프라이, 계란찜, 계란말이, 수란, 그리고 스크램블까지 계란은 기분에 따라 기호에 따라 그 모습과 맛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계란이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요리를 넘어서는 순간, 누군가와 함께하는 순간

빵, 파스타, 과자까지 그 가짓수는 무궁무진 해집니다.


변화무쌍한 우리 삶은 계란


눈을 뜨자마자 아들이 품으로 안깁니다. 아빠로서 요리가 시작됩니다.

회사에 출근하자 회의가 반깁니다. 회사원으로서의 요리.

 점심에 식당에 가서 손님이 되고, 선배사원이 되고 또 후배 사원도 됩니다.

그리고 퇴근길에 부모님께 전화를 드립니다. 다시 아들이 됩니다. 그리고 다시 아빠.


따지고 보면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떴을 때, 그리고 밤에 눈을 감았을 때를 제외하고 그대로의 '나'로 살았던 순간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꿈은 찬란했던 젊은 시절, 그런데 현실은 늘 파김치고 파란만장합니다. 혼자이기도 했고, 때로는 혼란스러운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불혹에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만 은근 주변에 저와 같은 사람들이 많아서 놀란 적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또 남들과 다른 모습이 논란이 되는 날이 많은 그런 알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저마다 알알이,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많은 알 중에서 "뻐꾸기 알"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탁란"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봄이 되면 오는 새가 있습니다. 산속의 고요함과 어울리는 낯익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새벽 산책길에 내린 아침 이슬과 함께 차분함을 더해주는 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뻐꾹! 뻐꾹!

저 새는 어떻게 저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일까요?


살면서 뻐꾸기를 제대로 본 적이 없기에 찾아봤습니다.

그런데 뻐꾸기를 찾아보니 "탁란"이라는 단어가 자주 눈에 띕니다.

탁란(托卵)
다른 종의 둥지에 알을 낳아 그 종으로 하여금 새끼를 기르게 하는 것


뻐꾸기는 자기 둥지를 짓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새끼를 어떻게 기를까요?

둥지를 짓는 대신 딱새, 붉은 머리 오목눈이와 같이 다른 새들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습니다.

그러면 그 둥지 주인인 어미새가 자기 새끼인 줄 알고, 뻐꾸기를 대신해서 새끼 뻐꾸기를 키운다고 합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새끼 뻐꾸기의 생존본능입니다.

다른 둥지에 낳아진 뻐꾸기 알은 가장 먼저 부화합니다.

그리고는 다른 알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냅니다.

심지어 곧 부화한 새끼들까지도 둥지 밖으로 밀어내 떨어뜨려 둥지를 독차지합니다.



과연 새끼 뻐꾸기는 사악한 존재일까요?

해당 영상에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댓글들이 활짝 피었습니다.

뻐꾸기는 잔인하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이 느껴집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요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아름답던 뻐꾸기 소리가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제 마음속에 상(생각)이 제대로 맺혔나 봅니다.

[ 뻐꾸기가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는 이유 ]

뻐꾸기는 기온에 민감한 철새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5월부터 약 3개월만 머뭅니다.
단 3개월 안에 ① 둥지도 짓고 ② 알고 낳고 ③ 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수천 년 역사 속에서 이런 방식이 생존율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이후로 몇 번이고 그 장면을 돌려보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알들과 부화한 새끼들을 벌벌 떨며 밀어내는 그 모습에서 처절함 느껴집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몸집이 큰 뻐꾸기는 먹이를 충분히 먹지 못하고,

뻐꾸기 종 자체가 멸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뻐꾸기를 비난할 자격이 없습니다.

매일 수도 없이 다른 종의 알을 깨어 생존을 위해 먹습니다.

심지어는 그 어미도 튀김옷을 입히고 끓는 기름 속에 넣습니다.

같은 물음입니다. 우리는 과연 태어날 때부터 사악한 존재일까요?


평화로워 보이는 자연에는 이처럼 생존을 위한 뒷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점잖아 보이는 우리 사람들 사이에서도 많은 스토리가 있습니다.


네, 알에는 저마다 사연이 있습니다.

한 동안 이 세상의 알 들이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지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뻐꾸기 소리가 유난히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아마 그 생존 스토리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제 소리가 아닌 이야기에 집중해봅니다.


멈칫, 뻐꾸기 소리는 제게도 어느 순간을 그 무엇을 떠오르게 합니다.

바로 뻐꾸기시계입니다. 90년도에 유행했던 이 시계는 매정 시마다 시계 안에서 뻐꾸기가 문을 열고 나와 뻐꾹뻐꾹 시각만큼 노래를 부르고 들어갑니다.


어릴 적 이모님 댁에 있었던 뻐꾸기시계는 정말 어린 저에게는 신기함 그 자체였습니다.

시간이 되면 새가 나와서 뻐꾹 거리는 그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뻐꾸기시계는 가지 않습니다.


이젠 더 가질 않네
가지를 않네


옳고 그름을 따지는데 너무 오랜 세월을 써버렸습니다.
이제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가까운 사람들과 행복한 오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자 합니다.


[ 할아버지의 옛날 시계 ] 함께 드립니다. https://youtu.be/KfIf4dV3m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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