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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문 Mar 19. 2022

아빠의 슈가 포인트

바나나를 보면 아빠 생각이 나

아빠, 아빠, 신기한 거 발견했어!


"아빠 내가 방금 이 바나나에 볼펜으로 점을 찍었어."

"어디에 찍었게?"

딸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러게, 진짜 모르겠네"


딸은 식탁에 놓인 바나나와 볼펜을 들고 싱글벙글~

"근데 있잖아, 난 바나나를 보면 아빠 생각이 나"

"점이 많잖아 ㅎㅎㅎ"


순간 모두들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가족들이 아빠를 놀리는 것 같지만 사실 아빠에 대한 관심과 친근함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이들은 할 일이 없으면 아빠 얼굴 위의 점을 세어주기도 합니다.

"하나, 둘, 셋, 넷... 우아 많다."


악의가 있는 대화나 일부러 기분을 나쁘게 하려는 의도는 이제 파악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종종 큰 의도가 없는 대화 중에도 버럭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순간은 바로 내가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Complex)에 대해 언급할 때가 아닐까 합니다.


내 마음속으로 "점이 많은 것"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면, "점이 많다"는 말에 화가 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기분이 상하는 이유는 남이 놀려서 아니라, 나 스스로가 그것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의 그 말이 마음 한구석 나의 감정을 움직입니다.


"얘들아 근데 그거 알아? 갈색 점 있는 바나나가 더 달아~"

"뭐 그렇긴 하지? 그래서 아빠가 달아?ㅎㅎ"


아빠의 이 점들은 "슈가 포인트"라고
슈가 포인트(Sugar Point)


[ 바나나 껍질이 검게 변하는 이유와 슈가 포인트(Sugar Point) ]

바나나 속에 있는 항산화 물질의 일종인 폴리페놀이 산소와 닿아 산화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잘 숙성된 검은 점이 있는 바나나는 TNF( tumor necrosis factor; 종양 괴사 인자)라는 면역세포를 생성시켜 덜 익은 바나나에 비해 백혈구 기능을 8배까지 높이는 작용을 한다고 합니다.

 또 면역자극 물질인 "렌티난" 활성에도 도움을 주는데, 특히 검은 점이 생기는 검을 슈가포인트라고 해서 바나나 속의 당분이 집중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달콤한 가족들의 대화 점이 생겼습니다.






그림러 딸이 생일선물로 저를 그려주었습니다.


물론 점을 뿌린 층(Layer)을 얹어서 보여주는 신공을 잊지 않았죠.

또 한 번 저의 점은 가족들의 사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굴에 점이 많다는 것은 인생이 험난하다는 말을 종종 듣곤 했습니다. 학교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저는 자연스레 점과 잡티가 많아졌습니다. 살다 보면 생기는 점들은 이제 바나나 반점처럼 늘어만 갔습니다.

도전적으로 악착같이 살았기 때문일까.. 정말 인생이 조금 험난하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그래서 피부과에서 가서 점을 빼기로 결심했습니다. 더 나은 인생을 위해서


점을 빼는 것까지는 좋은데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코 밑 인중 부분에 있는 점이었습니다.



사실 인중에 점이 있어 굉장히 망설여졌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물어봅니다.


"이 점도 빼드릴까요?"

"네? 네.."


얼떨결에 대답을 해버렸습니다.

과연 그 점은 어떤 의미가 있었던 걸까 집에 와서 찾아봤습니다.


- 인중 밑 점의 관상학적 의미 -

1. 부자가 될 재물점
2. 어린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상냥한 성격
3. 두 번 결혼할 상


저런, 빼고 나니 부자가 될 점이랍니다.

그런데 더 찾아보니 "두 번 결혼할 상" 이랍니다.

여기서 안도와 아쉬움이 동시에 교차합니다. (사람 마음이란)


이것저것 찾아볼수록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았습니다. 마치 점괘는 정해져 있는데 제 마음을 점괘에 맞추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점에도 이렇게 다양한 해석이 있다는 점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어떤 이야기를 붙여도 되지 않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 인생을 얼굴 위 작은 점에 의지하려고 하고 있구나



"아빠도 점 뺏는데 너도 거기 점 빼볼래?"

딸아이 눈가에 있는 점을 보고 물었습니다.


"아니, 난 이 을 좋아하는데?"


피부과에서 다녀온 작가 아빠는 딸에게 오늘도 배웁니다.

내 얼굴의 작은 점도 내가 좋아하면 복이 되고, 내가 싫어하면 화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점 덕분에, 이 점 때문에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 삶은 점 때문에 어떻게 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웃음을 줄 수 있는 점이 못내 아쉽게 까지 느껴지는 날, 딸에게 말했습니다.


"응, 아빠도 너의 그런 이 마음에 들어"





 "얼마 안 가 죽을 운명이니, 너무 무리하게 일하지 말게"


한 선인이 길을 걷다가 나무하러 가는 머슴을 만났습니다. 그의 관상을 보니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선인은 머슴에게 "얼마 안 가 죽을 운명이니 너무 무리하게 일하지 말게"라고 일렀습니다. 그 말을 들은 머슴은 하늘을 보며 탄식했습니다.


머슴은 산속에서 탄식하던 그때 나무껍질이 계곡물에 떠내려 왔습니다. 머슴은 나무껍질 위에서 개미떼가 물에 빠지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것을 보고는 불쌍한 생각에 껍질을 건져 개미들을 살려 주었습니다.


며칠 후 그 선인은 머슴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그의 얼굴에 서려 있던 죽음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부귀영화를 누릴 관상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작은 선행이 그의 관상과 운명까지 바꾼 것입니다. 머슴에게서 개미 이야기를 들은 선인은 크게 깨닫고는 <마의상서>에 '관상은 신상만 못하고 신상은 심상만 못하다'는 글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마의상서』중에서


사람의 얼굴을 관상(觀相)하는 것은 사람의 말을 들어 보는 것만 못하고,
사람의 말을 들어 보는 것은 사람의 일을 살펴보는 것만 못하고,
사람의 일을 살펴보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것만 못하다.     
 
相人之面(상인 지면),不如相人之言(불 여상인 지언)
相人之言(상인 지언),不如相人之事(불 여상인 지사)
相人之事(상인 지사),不如相人之心(불 여상인 지심)

                                                                                                       성대중 『청성잡기(靑城雜記)』


내 얼굴의 생김새, 얼굴 위의 점보다는 내 마음 상태를 다시 돌아봅니다.

그런데 말이죠. 신기하게도 점을 빼고 나니 인생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 인생을 만드는 것은


얼굴 위 이 아니라, 마음의 짐이 었나 봅니다.


오늘 여러분 하루는 무엇이 좌우하나요?
얼굴 위 점일까요? 아니면 마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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