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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문 Aug 07. 2022

무궁화 꽃이 지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미 피어있는 꽃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6:06

여름휴가를 다녀온 다음 날 아침,

분명 전날 잠자리에 들 때만 해도 새벽 요가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건만 몸은 아직 휴가지에서 돌아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일어나 보니 6시 6분. 애매한 시간.


요가원에 헐레벌떡 달려가기도, 사색에 잠겨 글을 한편 쓰기도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우물쭈물하는 순간에 대한 경험이 많습니다. 해결책으로 일단 문 밖으로 나섰습니다. 새벽이라고 하기에는 쑥스러운 새벽 산책을 택합니다. 요즘 같이 무더운 날, 새벽 산책은 저에게 "아이스 캐모마일 차"와 같이 시원하면서도 차분한 순간을 선물합니다.


지난 4월부터 바쁘게 달려온 데이터 분석 글쓰기는 캐모마일이 아닌 에스프레소였습니다. 다양한 회사에서 다수의 분들에게서 진한 제안이 왔습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그분들 한 분, 한 분이 어찌 그리 좋은 분들이 신지, 덕분에 좋은 작품이 나왔고, 또 탄생 과정에 있습니다.


한 가지를 얻으면
한 가지를 잃는 게 있다.


기쁨도 잠시,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잠을 줄여서 글을 써야 했고, 글감은 자투리 시간에 틈틈이 머릿속 곳간에 채워두어야 했습니다. 손에 바나나를 쥐고, 상자에서 손을 꺼내지 못하는 원숭이가 되는 순간도 많았습니다. 두 손에 무엇인가 들려 있다면, 다른 것을 쥐기 위해서는 손에 들고 있는 무언가는 놓아야 하니까요.


영화 "원더우먼 1984"에 보면 모두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는 신비한 돌이 등장합니다. 원더우먼은 사랑했지만 세상을 떠난 옛 연인 스티브를 얻은 대신, 초능력을 잃어갑니다. 그토록 원하던 출판과 많은 기회들을 얻었지만, 마음의 여유와 거기서 나오는 에세이와는 잠시 이별해야 했습니다.


몇 달이 되지 않았지만, 데이터 분석 작품 활동에 완전히 취해버렸습니다. 아니 취하지 않고는 해낼 수 없다는 표현이 맞았습니다. 저는 소금물에 푸욱 재워놓은 오이피클이 되었습니다.



그런 저를 아내가 강제로 꺼내서 강원도 바닷물에 담갔다가, 산속 나물비비고 섞어주기도 했네요.

그래서일까요? 마음은 휴가에 대한 준비가 안되었고, 여름휴가의 첫째 날과 둘째 날은 작품 생각에 취해 덜 깬 유체이탈 상태였습니다.


집 나갔던 마음이 돌아왔다


집을 떠나서 바다로 산으로 다녀도 마음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돌아온 날은 바로 이 날, 이곳이었습니다. 휴가의 셋째 날, 비가 세차게 내렸습니다.


'이런',

깊은 산속 절간에 갇혀버렸네요


창 밖에 세차게 내리는 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빗소리, 따뜻한 오미자차, 시원한 바람,  차분한 세상. 아내와 빗소리를 듣다가 한 시간 정도 의자에 앉은 채로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바로 그 순간이 집을 나갔던 제 영혼이 돌아온 순간입니다.


"내 마음"에서 살던 영혼이 "글"에 가서 짓이긴 라벤더 향을 충분히 남기고, 다시 내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영혼이 마음에서 시작해서, 글을 거쳐 다시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왜 이제야 왔니? 다시 돌아오니 너무 반갑다야"


이제 집을 나갔던 마음도 돌아왔고,

집을 나갔던 나도 휴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시작과 끝이 같은 여행이 금세 끝이 나버렸네요.


어느새 새벽 산책을 하고 있는 내 발 등을 보며 다시 시작점으로 와 있음을 자각합니다. 그때였습니다. 단지 내 아름다운 무궁화 꽃이 피어있었습니다.

나는 가까이 가서 꽃에게 장난을 걸어 봅니다. 살금살금 간지럼도 태워보고 향기도 맡아봅니다.


그리고 돌아서는 순간 바닥에는 피지도 않은 무궁화 꽃 봉오리가 제법 떨어져 있었습니다. 휴가기간에 왔던 비 때문인가? 별생각 없이 돌아섰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습니다. 왜냐하면 꽃이 만개한 상태에서 떨어진 꽃잎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무궁화는 필 때의 모습과 질 때의 모습이 같다는 것을요. 무궁화 꽃이 질 때는 그 꽃을 단아하게 다시 감싸고 예쁘게 말아서 봉오리가 통째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큰 깨달음이고 충격이었습니다.


무궁화 꽃은 질 때

무궁화 꽃은 꽃잎이 5장인 홀꽃입니다. 언뜻 봤을 때는 장미와 같이 꽃잎이 갈라진 갈래 꽃처럼 보이나, 사실 꽃잎이 하나로 된 합판화입니다. 그래서 꽃잎 아래 꽃받침 부분이 붙어있어, 꽃이 질 때 잎이 하나씩 떨어져 지지 않고, 한 번에 말린 형태로 떨어집니다.


시작과 끝이 같은 꽃


바닥에 떨어진 무궁화 꽃 봉오리는 피기 전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다 피고 진 꽃 봉오리입니다.


                       6:06


잘 생각해보면 차에서 내려서 사무실 일을 본 뒤 다시 차로 돌아왔고, 집에서 시작해서 회사에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의 하루는 처음 시작과 끝이 같은 실험실이고,

삶은 고향을 찾는 기러기 여행입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옵니다. 여섯 시 분. 그렇게

무궁화 꽃이 지었습니다.


무궁화 꽃이 지었습니다


무궁화 꽃은 다른 꽃들과 지는 모습이 다른 것처럼,  꽃들은 저마다 색깔도 피고 지는 모습도 다릅니다.
우리 모두는 이미 피어있는 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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