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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문 Oct 10. 2022

왜 도토리가 내 머리 위에 떨어졌을까?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야기를 남긴다.



도토리가 내 머리 위에 떨어졌다.


아내와 아이들이 잠든 새벽 눈이 떠졌다. 누워서 휴대폰을 보는 대신 산책을 나섰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참나무 잎을 톡톡 치며 피아노를 치는 것만 같았다.

살짝 젖은 숲 속 길 산책은 하늘이 주신 선물 "차분"이었다.


한 손에 든 따뜻한 커피가 산책길 행복감을 더했다.

그런데 도토리가 내 머리 위에 떨어졌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도토리가 내 머리 위로 떨어진 거지?'

'누구야? 다람쥐나 청설모인가?'



이윽고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들이 눈에 들어온다.

도토리들은 바닥에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모자를 벗은 친구들도 있고, 아직 모자를 쓰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도토리만 보았다.


톡, 톡

이따금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정확히 얘기하면 어떤 소리가 들렸는데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로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도토리 소리만 들렸다.


왜 도토리가 내 머리 위로 떨어진 거지?


나는 도토리만 보였고, 도토리 소리만 들렸다.

세상에는 도토리와 나 둘만 되었다.

머릿속이 온통 도토리 생각으로 가득했다.




도토리가 내 머리 위에 떨어졌다.


당황스러웠다.

도토리가 머리 위로 떨어질 확률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 중대한 사건은 두 개의 중요한 사건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하나는 내가 숲으로 가서 도토리나무 밑, 그 지점에 서 있는 사건이었다.

이것은 사건 A이다.


전체 지구의 표면적, 그러니까 둥근 지구를 네모난 종이처럼 펼쳐보았을 때,

내가 서 있는 면적을 우주에서 내려다보았다고 생각해본다.

이 사건이 일어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1. 사건 A가 일어날 확률 : 지구 육지 표면적 분의 나의 머리 면적

1) 지구 표면적
   - 지구는 "구" 형태이고, 구의 겉넓이는 4πr² 로 계산한다.
   - 지구의 반지름은 6,371 km 이므로 지구의 표면적은 4π x 6371² = 509,805,890 ≒ 5억 km²
   - 지구 표면의 29%가 육지, 71%는 바다이므로 5억 km² x 29% = 147,843,708 ≒ 1.5억 km²
2) 나의 머리 평면적
     - 머리를 원으로 가정. 반지름이 약 10 cm(0.00001km) 이므로 평면적은 πr² = π x 0.00001²
        = 0.000000000314 km²
2)÷1) 내 머리 면적 ÷ 지구 표면적
= 0.000000000314 km² ÷1.5억 km² = 2.12 x 10^(-8)


로또가 당첨될 확률의 6분의 1  


 > 결론적으로 사건 A가 일어날 확률은 2.12 x 10^(-6) = 0.00000212%

로또 1등 당첨 확률은 1/8,145,060

= 0.00001227%


쉽게 이해하기 위해 로또 1등 당첨 확률과 비교해본다.

사건 A만 비교해봐도 로또가 당첨될 확률의 1/6 밖에 되지 않는다.




벌써부터 어마어마한 사건은 끝이 아니다. 두 번째 사건 B가 기다리고 있다.

이 중요한 사건은 내 머리 위에 작은 도토리가 명중될 확률이다.

도토리의 크기 역시 표면적으로 계산해본다.


2. 사건 B가 일어날 확률 : 나의 머리 면적 분의 도토리의 면적


1) 나의 머리 평면적 :  0.000000000314 km²
2) 도토리의 평면적
     - 도토리는 위에서 내려다보면 넓은 쪽의 면적이 가로와 세로의 길이가 다른 타원이다.
     - 타원의 면적 S = a x b x π = 2cm x 1 cm x π = 2π cm² = 0.00000000000628 km²
2)÷1) 도토리 평면적 ÷ 내 머리 평면적
= 0.000000000314 km² ÷0.00000000000628 km² = 0.02

 > 결론적으로 사건 B가 일어날 확률은 2 %

사건 A에 비하면 아주 개연성이 있을 법한 문제이다.



3. 사건 A와 사건 B가 동시에 일어날 확률


이제 두 가지 독립적인 사건이 동시에 일어날 확률 Probability를 구한다.

그 방법은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날 확률을 곱하는 것이다.


사건 A : 내가 지구상에 하필이면 그 나무 밑에 서있을 확률

사건 B : 하필이면 그 나무 도토리가 내 머리 위에 떨어질 확률


P(A) X P(B) = 0.0000000212 X 0.02 = 0.000000000424

= 0.0000000424 %


"이 엄청난 확률이 나에게 일어난 거라고!!
정말 대단해!"



툭 툭 툭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졌다. 내 머리 위에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뭐지.. 빗방울이 떨어질 확률?'

빗줄기는 점점 세졌고, 머리를 옷을 흠뻑 적 쉬었다.

그리고 그 대단한 확률들은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마치 빗물에 씻겨 버린 것처럼




돌아오는 길에 짧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여행이란? 지금 기서 복의 줄임말


도토리도 비도 없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나는 다시 창가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아이들과 숲 속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눈다.


"아빠 근데 새 똥 맞은 적 있잖아! ㅎㅎㅎ"


커피 온기와 아이들의 목소리가 울리는 소리의 진동을 느낀다.





이 순간이 너무 특별해 도토리와 사진이 찍고 싶어졌다.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하지만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한 손에 든 커피, 그 위에 도토리를 얹고 오른손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도토리, 커피, 사진기
그리고 두 손



그 순간 한 손에 든 커피가 위태롭다.

'잠깐이면 돼.'

"아이고"


잠깐이면 되었다. 내 옷에 커피 자국을 낼 수 있는 시간은.

'이 놈의 도토리!'

마음속에서 애꿎은 도토리 탓을 해댄다.


'여벌 옷이 있던가?'

'커피를 지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하루 종일 이렇게 묻히고 다녀야 하는 거 아냐?'


그렇게 한동안 나는 옷에 생긴 커피 얼룩 생각만 들었다.

머릿속이 온통 커피 자국 생각으로 가득했다.


산책길의 끝은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졌다.

빗방울이 제법 굵어졌다.

내 머리 위에도 빗방울이 떨어졌다.

정신없이 산에서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빗방울이 내 옷에 얼룩을 만들었다.

어떤 것이 커피 자국이고 어떤 것이 빗 자국인지 구분하기 어려워 보였다.




돌아오는 길에 짧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여행이란? 지금 기서 복의 줄임말


도토리도 비도 없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나는 다시 창가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아이들과 숲 속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눈다.


"아빠 근데 새 똥 맞은 적 있잖아! ㅎㅎㅎ"


커피 온기와 아이들의 목소리가 울리는 소리의 진동을 느낀다.




개의 페르소나가 커피 온기와 아이들의 목소리가 울리는 소리의 진동을 느낀다.

그리고 추억했다.


살면서 새 똥을 맞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정확히 두 번 맞았다.

그리고 그 순간을 정확히 기억한다.


그 첫 경험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등굣길에 내 머리 위에 새 똥이 떨어졌다.

머리 위에 질척한 촉감은 손으로 만져보고,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했다.

당시 정확히 내 정수리 위로 떨어진 새 똥 덕에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두 번째 새 똥은 몇 년 전이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 기린 앞에서 맞았다.

아이들과 같이 기린을 보고 있는데, 내 어깨에 노랗고 하얀 액체 한 무더기가 떨어졌다.


그때, 왜 내 가족들이 아니라 나한테 똥이 떨어졌을까?

사실 "왜"라는 이유보다는 우리는 아직도 그때 새 똥을 맞은 그 순간을 추억한다.


우리는 내가 새 똥을 맞은 이유가 아니라
그 순간을 추억한다.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가족들이 모두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행복한 서울대공원으로 모두 돌아간다. 만일 내가 그때 새 똥을 맞지 못했더라면 그 순간이 그렇게 특별할 수 있었을까? 새 똥이 너무 고맙다.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도토리는 시간 속으로 떠나갔다.

행복을 주었던 커피는 얼룩을 주었고, 그 얼룩도 사라졌다.

남은 것은 이야기뿐이다.


지금 그 이야기 만나러 갑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이 아니라, 이야기를 남깁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당신에게 도토리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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