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분석가가 바라본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
아빠, 이번 시험은 어려웠어
중학생 딸아이 기말고사 성적이 나왔습니다. 밤늦게 주말까지 공부를 한 딸의 말에 깊은 공감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렇게 '성적향상' 은 얼마나 많은 학생들과 부모님, 선생님, 학원 모두의 염원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시험은 어려웠다"라는 딸의 말을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데이터는 좀 달랐습니다.
(중간고사) 획득점수 73 / 평균 68
(기말고사) 획득점수 66 / 평균 72
중간고사(68점)에 비해 기말고사(72점) 평균점수가 높아졌습니다. 이것은 기말시험이 모든 학생에게 어려웠다는 의미가 아니고, 우리 딸에게만 어려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데이터는 이번 시험이 어렵다는 딸의 말을 재해석하게 만듭니다.
사람을 믿을 것인가? 데이터를 믿을 것인가?
딸의 성적이라는 문제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우리 사회에서 관찰되고 있는 수많은 사건들이 그렇습니다. 이 사회적 현상에 대해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저서 『호모 데우스』를 읽고, 데이터 분석가의 관점의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너 신을 믿어? 아니면 사람을 믿어?
이번에는 초등학생 아들에게 질문했습니다.
"당연히 사람이지!"
"왜?"
"증거가 없잖아, 증거가"
하지만 이 질문에 '당연히'라고 답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수천 년 동안 옛날 사람들은 태양, 바다, 곰과 호랑이에 신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전쟁, 홍수, 전염병 등의 재앙이 닥치면 신에게 도와달라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이것이 종교의 시작입니다. 사람들은 신을 믿었습니다. 덕분에 불가능했던 많은 일, 이를테면 피라미드를 쌓거나 아테네 신전을 세우는 업적을 이뤄냈습니다.
사람들은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 파라오, 중세 기독교 신을 숭배했습니다. 하지만 근대 이후 인간은 과학과 이성을 가진 존재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르네상스', 인간으로의 회귀입니다. 신이라는 존재에 기대어 있던 인간은 스스로 서게 되면서 인본주의가 열렸습니다.
이제 사람이 중심이 되자 자유, 평등과 같은 이상들이 생겼습니다. 인본주의는 신에서 인간으로 자연스럽게 권위가 이동되었습니다. 루쏘와 같은 인본주의 사상가들에 의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지가 최고의 가치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들과의 대화에서처럼 사람들이 믿는 것이 있습니다. 아들은 이것을 '증거'라고 부르고, 어른들은 '과학'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과학의 발전은 데이터(Data)와 AI 알고리즘(AI Algorithm)으로 수렴하고 있습니다.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자유는 사람에서 네트워크로 연결된 알고리즘으로 이동했고,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예를 들어,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도 어제 봤던 유튜브 영상과 유사한 콘텐츠를 무의식 중에 보고 있습니다.
또 내가 관심 있는 브랜드 티셔츠가 생일에 사주기로 한 아들 축구화가 계속 저를 쫓아다닙니다. 이제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도 알고리즘으로 추천된 영상, 뉴스기사에 빼앗깁니다. 심지어 그 영상과 글을 읽는 중간에 사고 싶은 물건이 튀어나오면 어느새인가 쇼핑을 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당신이 스마트 폰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스마트 폰이 당신을 보고 있다.
상업적인 알고리즘을 제외하더라도 구글 캘린더는 우리에게 할 일을 알려주고, 아침 일찍 골프약속에 알람을 보내줍니다. 스마트 워치는 이제 좀 움직일 시간이라 말합니다. 또 일주일치 목표 운동시간이 멀었다 이야기합니다.
점점 인공지능은 똑똑해져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알람을 3번 끄는 것을 학습했습니다. 4번째 알람은 자동으로 더 큰 소리로 전환합니다."
또는 "운동할 시간을 5번 지키지 않았습니다."
"최근 혈당 수치 데이터와 당신의 운동 패턴, 식단으로 봤을 때, 당신의 수명은 38.7 년에서 29.3년으로 줄어들 예정입니다"
이쯤 되면 알고리즘이 나의 비서인지, 주인인지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하는 경계점(Threshold) ² 가 생길 것입니다. 권력은 개인에서 알고리즘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2) Machine Learning과 Deep Learning의 알고리즘에서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성능 한계점을 쓰레시홀드(thredhold)라고 합니다. 이 값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에 의해 조절됩니다.
오늘 당신은 스마트 폰으로 본 것 들을 모두 잊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스마트 폰은 그렇지 않다.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라는 영화제목이 떠오르는 것은 저만의 느낌일까요?
우리는 사생활과 개인정보 데이터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문호를 개방할 것입니다. 마치 조선말기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시대의 흐름을 막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죠.
사실 우리는 이 사안에 대해 이중성을 띄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읽고 싶은 기사를 위해, 사고 싶은 상품을 위해 쿠키 허용(Accept Cookies) 버튼을 읽지도 않고 누릅니다.
나의 개인정보 << 주가정보, 질병의 치료, 더 나은 선택의 부등호는 이미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고, 어쩌면 이것들이 알고리즘화 되어 나의 자유의지를 묻지 않게 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실제 생물학과 컴퓨터 과학은 이제 한 곳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뇌과학 연구 기업 '뉴럴링크'가 FDA(미국 식품의약국)으로 부터 인간의 뇌에 칩을 이식하는 임상시험을 승인받았습니다.(2023.5.25)
뇌에 이식된 칩은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 물질의 데이터 흐름과 패턴을 학습합니다. 그렇게 학습된 패턴을 입력값을 쓰면 뇌신경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뉴럴링크는 마비와 시각장애 같은 신체적 장애부터 우울증, 정신분열증에 이르는 정신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영화에서 봐왔던 것처럼 좋은 기술이 악용될 소지는 없을까요? 핵폭탄을 손에 넣으려는 악당처럼 말이죠. 또 이 기술의 문턱이 낮아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마치 무허가 눈썹 문신을 하거나 쌍꺼풀 수술을 하는 것처럼요. 필자는 아마도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이 기술을 도입하거나 자연스레 큰 시장이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공부 잘하는 시술이 나오면 받을까?
빌 게이츠에게 단 하나의 초능력이 주어진다면, 책을 빨리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가 학창 시절에 MC²(엠씨 스퀘어)라는 백색소음을 내는 기기가 인기였습니다. 당시 가격으로 20만 원가량이었는데도 그 인기는 하늘을 찔렀죠. 만일 두뇌의 치료가 아니라 향상이 목적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인간의 두뇌능력을 높을 수 있다면, 과연 사람들은 가만히 있을까요? 임대료가 가장 비싼 강남대로에 성형외과가 깔려있는 것 ¹ 만 봐도 답은 이미 나와있습니다.
1) 전국 1137개 성형외과 중 624개소가 서울에, 그중 440개소가 강남구에 위치하고 있다.(출처 : 국가통계포털, 2023.7.18 데이터 갱신)
그리고 이것은 양극화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지금도 교육, 재산, 직업에서 시작되어 심지어 시간까지도 양극화가 되어있습니다. 이제 지능과 능력도 만들어낼 수 있는 신의 영역을 사람들이 대신하고자 합니다.
18세기 인본주의가 신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인간을 밀어 넣었습니다. 앞으로 데이터는 그 자리의 인간을 밀어낼 것이라고 유발 하라리는 말합니다. 이것은 종교에 가깝습니다.
인간을 하나의 알고리즘으로 봅니다. 태어나서 자라고 학습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일을 하고 죽는 프로그래밍된 존재로 보고 이들은 데이터를 남깁니다.
그리고 데이터는 집단, 사회, 도시, 국가를 넘어 세계로 보다 정교해진 데이터 처리 시스템과 인공지능으로 인간보다 인간을 더 잘 아는 신과 같은 존재가 만들어질 것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자유시장 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처럼, 이해할 수 없는 알고리즘에 따라 데이터 흐름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네트워크를 만듭니다. 개인은 마치 런던의 빵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이동할 뿐입니다.
고르바초프는 죽어가는 소련 경제를 회생시키고자 자본주의 시스템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볼 목적으로 최측근 한 명을 런던으로 보냈다. 런던의 관료들은 소련에서 온 그 손님에게 런던 시내와 증권거래소, 경제학교를 소개해주었다. 몇 시간 뒤 그는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
"잠깐만요. 복잡한 경제이론들은 일단 집어치웁시다. 하루종일 런던을 쏘다녔는데, 이해할 수 없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모스크바에서는 최고의 두뇌들이 빵 공급 체계를 관리하는데도 빵 가게와 식료품점 앞에 늘어선 줄이 줄어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런던은 수백만 명이 사는데도 그 많은 상점과 슈퍼마켓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본 적이 없습니다. 런던에서 빵 공급하는 일을 맡아보는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비밀을 알아야겠습니다."
런던 관료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런던에 빵 공급하는 일을 맡아보는 사람은 없는데요"
『호모 데우스』 중에서
"우주는 데이터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윈의 "종의 기원" 이후로 인류의 DNA는 단백질의 구조임이 밝혀졌습니다. 이제 생물학과 컴퓨터 과학이 만났습니다. 인지하고 사고할 수 있는 인간지능은 사실 알고리즘이고, 신경전달물질과 데이터의 흐름을 제어함으로써 조절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뿐만 아니라 만물이 인터넷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만물 인터넷입니다.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를 비롯해 식물과 동물 들 모두 네트워크로 연결될 미래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데이터들의 생성과 흐름은 누구도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구글 엔지니어도 애플 엔지니어도 전 세계의 데이터가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아무도 알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개인들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지구의 거대한 시스템 안의 작은 칩이 되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데이터를 보고 처리하고, 또 다른 데이터를 쉴 새 없이 생산합니다. 내가 어디에 있고, 얼마를 쓰고, 얼마를 벌고, 무슨 일을 하는지 생산된 데이터 조각들은 어디에 쓰이는 줄도 모르게 거대한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고 있습니다.
자유시장경제에서 시장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여지듯이, 데이터를 믿는 사람들은 데이터의 흐름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여질 것을 믿습니다.
유기체는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데이터 처리과정인가? 생각이 호모 데우스의 질문입니다.
인간도 동물도 기계처럼 하나의 알고리즘일 뿐이다.
식물, 동물, 인간, 사물 모든 것의 네트워크에서 인간은 과연 어떠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까요?
데이터를 믿습니까?
데이터 교는 신의 존재와는 상관없이 데이터를 숭배하고 경배하는 새로운 사상입니다. 사람들이 데이터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데이터를 통해 인류의 미래를 개선하고자 하면서 자연스레 믿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데이터 교인들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함으로써 인간들의 행동과 생각, 그리고 자연의 현상들을 이해하고 예측하려고 합니다.
데이터 교인들은 데이터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로, 데이터를 통해 인간들이 더 나은 선택과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의료 분야에서는 많은 환자들의 건강 기록과 유전자 데이터를 분석하여 더 나은 진단과 치료 방법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회적 현상을 데이터로 분석함으로써 범죄 예방이나 재해 대응 등에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데이터 교인들은 데이터를 통해 인류의 미래를 밝고 희망적으로 바라봅니다. 데이터를 활용하여 인간들이 더 현명한 선택을 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데이터 교인들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과 기술이 미래에 인류를 더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는 데이터를 믿는 우리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풍성하게 줍니다.
단,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측된 미래는 계속해서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설 귀경길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우회로를 알리는 내비게이션이 생각납니다. 마치 내비게이션에 안내된 길로 모두 향한다면 그 남은 시간이 계속 바뀌는 것처럼 말이죠.
인식하지 못하면 바꿀 수도 없습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호모 사피엔스들에게 새로운 종의 미래가 다가올까요?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
사람을 믿습니까?
아니면 데이터를 믿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