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날의 희생
청량 김창성
한 소녀가
배롱나무와 닮았다
배롱나무에는
하이얀 꽃
붉은 꽃이 핀다
그 소녀의
새 하얀 꽃은 얼굴빛과
붉은 꽃은 입술을 닮았다
잘 록한 나무 허리를 보니
엉덩이를 뒤로 빼고
입맞춤하고 싶었졌다
백 날을
몰래 피었다 지는 꽃
남몰래 우는 꽃
고즈넉한 산사에
백일홍의 색이 번진다
이미 끝나버린 삶의
어느 무덤가에서
한 사람을 지켜주려
그렇게 백날을 피고지다니
피눈물이 된 붉은 꽃
새 삶의 시작 흰꽃
자꾸만 보아지는 배롱나무에
비가 내린다
사시나무 떨듯 떨며
알몸으로 서 있는 배롱나무
속살까지 젖었다
꽃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가면
꽃을 기대하는 시간이 온다
내 마음도 알몸으로
백날을
기다리고 기다린다
배롱나무의 붉은 꽃에
입 맞출 시간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