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울수록 더욱 빛나는 별처럼
누구나 한 번쯤은 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아주 어릴 적 별에게 소원을 빌기도 하고 가장 빛나는 별을 애써 찾아보기도 하고 말이다. 별들은 아무 대답도 해 주지 않는다. 질문을 던질수록 그 해답은 질문을 던진 스스로가 찾아내고 결론 내려야 한다. 배움으로 얻어지는 것과 느끼며 깨달음을 쌓아가는 시간이 스무 살 여름날의 소나기를 피하는 법을 익혀 가는 것일지 모른다. 그 어느 때 보다, 어느 순간보다 사람의 관계와 사람을 대하는 법을 알아 가고 있었을 것이라 해 두자. 뜨거운 여름날에 내리는 소나기를 피하지 않고 맞아 보고 싶었던 지난날들, 그리움이 되어 버린 그날들의 기억은 하세월이란 지지 않는 별이 되어 가슴에 남았다. 수많은 별들 사이로 혼자 빛나고 있을 그 별은 연필로 꾹 눌러쓰고 지워버린 것처럼 아직도 흐릿하게 남아 있다. 무심코 바라본 하늘에서 그 별과 눈이 마주쳐 한참을 기억 속을 더듬으며 방황하고 있다.
여름날의 소나기는 일기예보와는 상관없이 갑자기
쏟아져 잠시나마 더위를 식혀 준다. 인연도 그런 것일까. 젊은 날의 인연도 소리 없이 예고 없이 갑자기 요란하게 빠르게 다가왔다. 번개 치는 소리에 놀라 심장이 쿵쿵거리며 뛰고 있었다. 사람이라는 관계 속의 소나기 우산을 접고 선 우리들의 이야기로 인해 묘한 감정의 물방울이 맺혔다.
소나기가 내리고 있을 때는 커피숍이 너무 조용하다. 오가는 사람들이 비를 피하기 위해 오는 손님이 가끔 있을 뿐이다. 다들 비를 피해 자리를 잡고 있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재덕이 오늘 소나기에 비를 피하듯 말문을 닫았다. 지금처럼 이런 묵직한 표정은 볼 수 없었다. 근수가 조심스레 묻는다."오늘 무슨 일 있었냐?"라고 재덕이 얼굴을 바라본다. 재덕이는 한숨만 내 쉴 뿐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부터 재덕이 기분이 좋지 않았었다. 그때부터 근수가 모르는 일이 재덕이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 같았다. 개인적인 일을 꼬치꼬치 물어볼 수는 없었다. 눈치 빠른 근수도 도저히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고민이 깊으면 으레 스스로 말을 꺼내는 법.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재덕이가 뭔가 할 말이 많은 듯 근수 곁으로 다가선다. "야~ 뜸 그만들이고 할 말 있으면 해라 여긴 일하는 곳이다"라고 근수가 재덕이를 다그치듯 말한다. 재덕이 무겁게 닫았던 입을 연다. "있잖아!"라고 재덕이 말문을 여는데 근수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빨리 말해라! 있긴 뭐가 있는데 답답하다" 라며 말한다.
" 어~ 그 애 있잖아 왜~ 그~, 같은 동네 사는 여자애 말이야" 재덕이 말한다. "누구? 그렇게 말하면 알 수 있나? 알아듣게 말해" 라며 근수가 궁금해하며 말한다. "이름이~ 미정이라고 알지? 그 여자애가 이상한 말을 하고 다닌다는 말을 며칠 전에 들었어." 라며 재덕이 말한다.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지만 별로 좋지 않은 내용인 게 분명했다. "미정이란 여자애가 나에 대해 험담을 하고 다닌단다며" 화를 내기 시작한다. "뭐라고 했다는데?" 라며 근수가 묻는다. "말이 많다느니, 못 생겼다느니, 자기를 자꾸 쳐다본다느니, 와! 사람이 없는데서 그런 말을 하고 다녀도 되냐?" 라며 재덕이 말한다.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 거 보니 관심이 있나 보다" 라며 놀리듯 근수가 말한다. "네가 당사자가 아니라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말라며" 근수를 째려본다. 근수가 "내가 보기엔 재덕이 너도 그 애를?..." 더 많이 씩씩거리며 근수를 본다. 나중에 만나면 직접 물어보라고 일단락이 되는 듯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 전화벨이 울린다. "근수가 OOOO입니다" 전화를 받았다. "아르바이트생 중에 재덕 씨 있느냐고" 낮은 여자목소리가 들린다. "예" 라며 근수가 답을 하니 바꿔달라고 한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라며 재덕이를 바꿔준다. 재덕이 손님이 없어서 제법 통화를 길게 한다. 언제 그랬냐는 듯 제법 환한 웃음을 보이며 전화를 끊었다. "갑자기 얼굴이 환해졌네.. 어라~ 얼굴도 빨개지고" 근수가 궁금해하며 재덕에게 말한다. 재덕이 그간의 오해가 풀렸다며 설명하기 시작한다. "본의 아니게 여자친구들이 재덕이 얘기를 하니 놀려서 나쁘게 말했다고 실은 친해지고 싶었다고 했다고" 근수에게 말해 준다. "아하~" 부러운 듯 재덕이를 보며 짧게 말한다. "친구 뺏기는 거니?" 라며 바로 근수가 재덕에게 말한다. "야~ 놀리지 마라"라고 하면서도 싱글벙글이다. 그리고 곧 미정이 이 근처에 온다고 했다며 더 신나는 모습이다. 옷매무새를 바로 잡으며 오줌 마려운 강아지처럼 이리저리 왔다 갔다 몸 둘 바를 모르는 재덕이 모습이 신기하고 재밌어 보여 근수가 일부러 모른 척 딴 청을 하고 있었다. 언제 나갔는지도 지도 모르게 지 재덕이 커피숍에서 사라졌다.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재덕이 흰 와이셔츠가 흠뻑 젖은 채 커피숍 안으로 들어왔다. 한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
오해를 한 것 같은데 잘 풀었냐고 근수가 말한다. 재덕이 미소를 머금고 끄덕이며 젖은 머리를 닦는다. 야 좋겠네 꽃 선물을 다 받고. 라며 놀린다. 대답도 하는 둥 마는 둥 급히 화장실로 가 버린다. 한참을 기다려도 재덕이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정이 꽃다발과 함께 편지를 적어 준 것이었다. 그 걸 얼마나 많이 반복하며 공부하듯 읽었는지... 그렇게나 좋은 걸까. 그중에 작은 봉투에 메모하듯 적은 글귀를 보여 주었다. 항상 밝게 웃으며 다른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는 글이었다. 근수는 가지고 있지 않은 가볍지만 속은 묵직한 재덕이었다. 이래저래 소나기가 내리는 어느 여름날. 재덕이에게 찾아온 소나기처럼 세차게 다가온 인연은 오래도록 첫사랑의 기억처럼 남아 그의 가슴에 별이 되어 줄 것이다. 이런 소나기처럼 재덕에게 다가온 만남을 흠뻑 젖어 좋은 기억으로 남아 주길 바라본다. 둘 다 소나기에 흠뻑 젖은 채 서로의 마음을 전할 수 있었으니 세찬 소나기를 피하기보다 일부러라도 맞아도 기분 좋은 추억이 되었다. 이 둘의 두근거림은 계속되었을지는 둘만이 알 것이고 근수는 세월이 지나 전해 들었을 것이다. 추억을 소환하는 시간이 찾아오면 그 들이 만든 별처럼 다시 회자될 것이라 믿는다. 소나기는 나를 피하지 않는다. 비에 젖어도 좋고 비에 젖은 채 걸어가는 것이 청춘을 지나가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학창시절 읽었던 소나기가 다시 읽고 싶은 날. 재덕이 그런 주인공이 되지 않길.....
근수는 희정이 교수님에게 커피 배달이라도 해 드리자고 나간 지 족히 10분은 지난 것 같은데 아직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교수님은 희정의 눈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시고 하고 싶은 말도 편히 하시 못 하는 것 같았다. 희정이 교수님 아무래도 아메리카노 한 잔 배달해 드려야겠어 라며 카페 안으로 들어오며 근수에게 말한다. 왜 안 들어오시고? 라며 궁금한 듯 희정에게 말한다. 이 근처에서 학교 직원들하고 오랜만에 회식을 하셨는데 들어오시기가 좀 그러신가 배달해 달라고 하시네 라며 결제 포스에 쿠폰을 확인하고 무료쿠폰을 써 드리면 되겠다고 말한다. 근수는 예민하고 까다로우신 스승님의 아메리카노를 준비하고 있다. "그럼 내가 배달해 드릴까?" 배달이랄 것도 없지만 가끔 웃는 게 좋은 거라고 농담을 섞어가며 재밌게 카페의 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잘 준비된 아메리카노를 들고 근수가 밖으로 나간다.
조심조심 테이크아웃 컵을 들고 스승님이신 교수님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며 근수가 "교수님! 왜 여기서 계시냐며" 묻는다. 교수님은 평소와 다르게 계속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다른 곳을 응시하시며 "내가 오늘 이 근처에 외식을 하면서 술을 한잔했는데 사장님 얼굴이 보고 싶어서 왔다며" 쑥스러운 듯 말씀하셨다. "그럼 더 안으로 들어오셔서 편하게 커피 드시고 가시죠?" 라며 근수가 교수님의 뭔가 말씀하지 못하고 숨기는 의도를 슬쩍 떠 보았다. "술을 마셔서 괜히 민폐를 끼칠까 봐 밖에서 맛있는 사장님 커피를 마시고 가려고 한다고" 하셨다. 근수는 처음 교수님을 발견하고부터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었다. "이 시간에 여기서 사장님 커피를 마시니 색다른 느낌이 든다고 하시며" 말씀을 이어 가신다. "요즘은 옛날과 다르게 회식을 자주 하지는 않는데 개강이나 종강 때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회식을 하죠. 근데 주위의 식당 사장님들은 손님에게 친절하지가 못하고 되려 불편하게 하신다며" 넋두리를 늘어놓으신다. "두 분 사장님 카페를 볼 때마다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자주 느낀다고 하시며" 술 취한 김에 칭찬을 마구마구 해 주셨다. 사장님 카페에 손님이 많아지는 걸 보니 내가 다 기분이 좋다고 하시며 그 마음 한결 같이 간직하고 사업을 하라"라고 덕담을 해 주셨다. 근수는 "너무 칭찬하시는 몸 둘 바를.. 늘 교수님의 좋으신 말씀과 독려로 열심히 하고 있어 잘 되는 것 같다"라고 고개를 숙인다. 다 교수님 덕분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바로 눈치 빠르게 교수님의 마음을 떠 본다. "교수님 오늘도 차를 타고 출근하셨죠? 대리 불러 드릴까요?"라고 묻는다. 둘 중 하나다. 대리를 불러 달라는 부탁이거나 아님 근수에게 차를 집까지 운전해 달라는 것은 분명했다. 댁까지의 거리가 차를 타면 10분도 안되기 때문에 대리를 부르기도 그렇고 해서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시는 중이신 거다. 다음 날이 휴일이라도 학교에 꼭 나오시기 때문에 차를 꼭 가지고 가셔야 된 것 같다. 이미 알아차린 근수가 "제가 교수님 차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라고 여쭈어 보니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신다. "그렇게 해도 될까 모르겠네요" 라시며 은근 기대를 하신다. "교수님과 저 사이에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교수님은 그렇게 생각 안 하시는 가 봅니다" 라며 근수가 말한다. 이제 제법 교수님의 성향과 성격을 알았다는 듯 농담도 주고받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 손님이 뜸 한 시간이라 교수님 차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술이 취하셔서 그런지 너무 담담한 표정으로 편하게 부탁을 하시니 오히려 가까운 사이가 되어 가는 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근수도 음주로 차를 몰고 가실까 하는 걱정을 하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편했다. 가까운 거리라 근수는 다시 걸어서 오면 된다. 주인과 손님의 관계를 벗어난 지 오래다 얼마나 오래 사람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심을 더하는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믿는다. 베푸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어 진심을 나누는 것이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교수님의 댁 주차장에 도착했다. 천천히 주차를 해 드리고 돌아 선다. 교수님이 근수를 바라보며 무언의 감사 인사를 한다. 근수도 교수님을 모시고 가는 것이 마음이 더 편했다며 돌아서려는 교수님을 불러 살짝 안아 드렸다. 남자의 시간은 그렇다 남자의 세계는 많은 말보다 뜨거운 정이 먼저다. 청춘의 인연이 소나기라면 중년의 인연은 이슬과 같다 그동안 쌓아 온 정이 관심이라는 푸른 잎새에 이슬처럼 맺혀 툭 하고 큰 물처럼 번져 나간다. 점점 삭막한 세상에 큰 부탁은 아니지만 고민을 고백하듯이 말할 수 있는 관계, 그 고백 같은 부탁을 들어줄 수 있는 근수는 너무 행복했을 것이다. 다시 또 이런 상황이 되어도 근수와 희정은 망설이지 않고 행할 수 있고 마음을 던질 수 있는 큰 자산을 쌓아 갈 것이다. 볼까지 빨개 진 모습을 근수와 희정에게 보여 줄 만큼 서로가 가까워진다는 건 이미 마음을 열고 다가설 수 있겠다는 순순함이고 대가 없는 행복이 되어 줄 것이다.
근수는 다시 카페로 발걸음을 옮긴다. 몸이 좀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한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해 줄 수 있는 게 기분 좋은 일이다. 매장 안으로 들어서니 희정이 "다녀왔어?" 라며 근수에 말한다. "응, 멀지도 않고 차 때문에 쉽게 말을 하지 못하신 것 같다" 며 어깨에 힘을 준다. "안전히 댁으로 들어 가시는 걸 보니 안심되었다고" 말한다.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다행히 바쁘지 않았다고" 희정이 말한다. 내일 아침에 교수님이 뭐라고 할지 궁금해졌다. "술 드신 모습으로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 쑥스러워하시길까" 라며 근수가 내일 아침의 분위기를 그려본다. 희정이 "미안하셔서 안 오시는 건 아니겠지?" 라며 조금 걱정 섞인 말투로 말한다. "설마! 그러시기 까지야" 라며 근수가 희정을 안심시킨다. 담담한 하루였다. 이익을 남기는 하루보다 더 많은 걸 남길 수 있는 기분 좋은 날이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어김없이 교수님은 시계처럼 정확한 시간에 카페에 오셨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마치 어제와 똑같은 모습으로 고개를 숙인 채 인사를 하시며 그렇게 카페로 들어오셨다. "덕분에 잘 들어가셨다며" 짧은 말씀과 함께 "맛있는 커피 잘 마실게요" 라며 학교로 향하셨다. "그 누구도 내게 그렇게 까지 해 주는 사람이 없는데 감사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내게 편히 농담을 하는 사람이 없는데 처음 봤을 때부터 범상치 않더니 이렇게 재밌고 편안 아침을 보내게 되어 좋으시다"라고 까지 하셨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소나기처럼 놀라게 하는 인연도, 교수님같이 기대치 않은 인연도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근수의 중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렇게 사람들과의 인연은 근수의 마음 하늘에 별이 되어 주고 있다. 그렇게 별자리가 되어서 보고 싶을 때 찾을 수 있는 사람과의 인연이라는 별 하나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근수와 희정은 그렇게 내일의 아침을 기다린다.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