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대신 마음 한 스쿱
30여 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보는 즐거움은 그 시간, 그 시대를 지나오지 않은 사람은 느끼지 못한다. 때로는 안타까움과 때로는 아쉬움이 남지만 멈춰진 그 시절의 순간은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근수와 재덕이 한 여름날의 추억여행을 같이하며 지금은 바꿀 수 없는 것들이 무수히 많지만 한 시대를 묵묵히 지나야 훗날 미래를 새롭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여 사장님의 호통소리가 이제는 정겹다. 여름날의 카페가 이렇게 바쁘게 둘을 힘들게 할 줄 알았다면 아마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고 생각도 해 보지 않았을지 모른다.
유난히 더운 날이다. 근수와 재덕이 음료를 만들고 써빙한다고 바쁘다. 더운 날에는 아이스크림과 얼음을 갈아 만든 셰이크 주문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때는 현재이지만 지금에서는 과거일 뿐이다. 제빙기라는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기껏해야 각얼음이나 냉장고 냉동고에 얼려 둔 얼음을 사용한다. 블렌더 그게 뭐야? 집에서나 쓸 법한 믹서기에 준비한 재료들을 넣고 갈아야 한다. 커피숍 안은 온통 얼음 갈아대는 소리로 시끄럽다. 굵은 얼음은 이런 믹서기로는 잘 갈리지 않아서 여 사장님이 재덕이를 불러 얼음을 비닐봉지에 담으라고 말한다. 1층으로 내려가 손님이 볼 수 없는 곳에서 큰 돌로 비닐봉지를 힘껏 내려쳐 잘게 부숴 오라는 것이었다. 얼마나 내려쳤는지 비닐에 구멍이 났다. 거의가루가 된 얼음 조각을 오염되지 않게 조심조심 믹서기에 넣어 갈아 낸다. 그래도 현재를 충실히 열심히 살아야 했고 지금 뒤 돌아보아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음료를 만드는 메모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던 그때, 두뇌 회전이 꾀나 빨라나 보다 메뉴가 물론 많지는 않았지만 한 두 번 해 보고 모든 음료를 만들어 내야 했다. 근수는 아이스크림이 없어 근처에 있는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급히 들어온다. "사장님! 아이스크림 사 왔습니다"라고 하자."그래 얼른 준비해"라는 말과 함께 근수가 사 온 아이스크림 뚜껑을 열어 본다. "꽁꽁 잘 얼은 걸 사 왔네 잘했다" 라며 근수를 바라본다. "예"라는 짧은 대답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한 스쿱 떠 메뉴를 준비한다. 여 사장님이 아이스크림 뚜껑을 열어본 이유는 꽁꽁 얼지 않은 걸 사 오면 메뉴를 만들 때 많이 줄 수 있어서라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현재를 충실히 살아보아야 미래에 더 나은 삶을 위해 변화할 것이다라는 믿음으로 그 시간을 보냈다.
바쁜 와중에 재덕이 주문을 받고 근수가 메뉴를 적어 주방으로 넣은 모양이다. 웬일인지 여 사장님이 메뉴를 챙기고 있었다. 느긋하게 아무 말 없이 기다려준 손님에게 친절히 가져다주며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이런 것도 알바의 몫이니 말이다. 손님이 가고 난 후 주문표와 나간 메뉴를 비교해 보니 다른 메뉴가 나간 것이었다. 그 손님은 오래 기다리고도 다른 음료를 마시고 아무 말 없이 주문하지도 않은 음료를 먹고 간 것이다. 그 마음을 근수와 재덕이 받았다. 세상에 누군가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 눈속임을 하지만 누군가는 자기의 손해를 들어내지 않고 배려한다. 이런 복잡한 세상에 학창 시절의 알바를 기억하게끔 해준 사람들이 나에게 올 미래를 자신의 것을 내려놓고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여 사장님의 이기적인 장사 수안을 비난하거나 나쁘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잘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나이라는 거름종이에 잘 걸러내어 좋은 것을 채워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달콤함 보다는 마음을 담아 가는 우리의 청춘....
근수와 희정은 요즘 함께 밥 먹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식구라는 것이 밥을 같이 먹는 것이라는 데..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시간인데 자꾸만 일상의 행복이 사라지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출근하면서 늘 기도한다. 즐거운 마음 가짐은 행복을 부른다고 했던가?
마치 오늘의 출근과 일상이 어제의 일인 것처럼 착각이 들 때가 있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사람이 어디선가 본 듯한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이런 착각이 근수에게 앞으로 다가올 좋은 인연을 미리 만난 것이라고 믿었다. 좋은 상상, 즐거운 생각이 미래를 결정해 주는 것이라는 걸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집에서는 사람 사는 소리가 소음이 아닌 것처럼 카페에도 사람들의 오가는 소리와 기계음 그리고 대화하는 소리가 마음을 움직이는 잔잔한 음악처럼 들린다.
상쾌한 어느 날 아침의 느낌 좋은 기운처럼 맑은 공기가 가득히 근수와 희정의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좋은 일, 좋은 만남이 이런 날은 한꺼번에 찾아온다. 얼마 전 둘의 마음속으로 들어온 어르신이 언제나처럼 웃음을 머금은 모습으로 유쾌한 카페 동네 카페 주위를 지나가신다. 근수도 역시 언제나처럼 버릇처럼 카페 청소에 많은 신경을 쓰기에 바닥을 열심히 쓸고 닦으며 창 밖으로 보이는 어르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좋은 기운을 전하고 그 기운을 받은 이 가 또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전달해 줄 수 있다며 모두가 좋은 일만 가득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도술을 부리듯 저 멀리 보이던 어르신이 벌써 카페 앞까지 온 동네의 기운을 몰고 문을 열고 근수와 희정이 있는 카페 안으로 들어오셨다.
"커피 한잔 먹고 갈까!" 라시며 근수와 희정에게 상큼한 미소를 보내신다. 이제까지 부부에게서 보지 못했던 숨어있던 표현들이 카페를 하며 서서히 밖으로 꺼내 보이게 된 것이다. 아주 예의 바르게 진심 마음으로 대하는 인사말과 표정들이 어르신의 좋은 기운을 받아 손님들에게 전달되고 있었던 것이다.
"예! 오늘도 아침 일찍 동네 산책하세요?"라고 희정이 어르신께 여쭙는다. "몰랐군! 내가 볼일이 없을 땐 거의 매일 아침 이렇게 동네를 돌아본다"라고 답을 하신다. "오늘은 내외간에 열심히 장사하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좋아서 오셨다는 말씀과 주위에서 많이 좋게 보고 있다"는 칭찬의 말씀을 주셨다. 근수와 희정은 뵙기만 해도 좋은 기운을 전해 주시는데 역시 좋은 인연과 함께여서 더욱 기분이 좋은 날 아침이다. 예의와 친절은 내가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그러한 행동과 말은 평가받는다. 당연하다. 우리 모두는 잊고 있었다 나는 참 열심히 친절히 하는데 왜 그렇지 않다고들 할까! 참으로 많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사람에게서 나오는 마음. 인심은 냉정하게 냉혹하게 돌아올 때 가 있는 것이다.
어르신은 오랫동안 이 동네를 지키며 살아오신 분이다. 오래된 명함 한 장을 내미시며 "내가 이런 일도 했다"라고 자랑하신다. 근수와 희정은 명함을 한참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와! 이런 일도 다 하셨네요"라며 놀란다. 건축자재를 납품하는 회사의 명함이었다. 어르신이 이내 말씀을 이어가시며 "다른 사람들은 내가 놀러 다니고 쉽게 돈을 모은 줄 아는데 고생을 많이 한 거는 알아주지 않더라" 시며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신다. "날 보고 건물주라고 하는데 나는 그저 동네 주민"이라고 하신다. "내가 이 동네 건물을 몇 개 가지고 있으니 어쩌면 나도 이 동네에 덕을 보고 사는 사람일 뿐"이라고 하셨다. 근수와 희정은 속으로도, 겉으로도 부러울 따름이다. 요즘은 다 돈을 모으면 건물을 사서 편히 사는 꿈을 꾸는데 말이다. 근수가 그래도 "어르신의 편안하고 밝은 미소가 저희 부부에게 부모님 같은 기분이 들어 너무 좋습니다. 대단하시고 멋지신 모습 보기가 너무 좋다"라고 말씀드렸다. 어르신이 대화를 나누다 갑자기 일어나시더니 "내가 이렇게 덕을 많이 보고 있으니 내가 아침에 혹은 다른 시간에 동네를 돌아보는 거지"라시며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일이 아님을 말씀하신다. "동네를 지키고 사는 사람들이 다 잘 돼야 되기 때문에 장사가 잘되나 안되나 조사하러 다니신다"는 농담반진담반의 말씀을 미소와 함께 남기시고 이내 카페밖을 나서신다. 평소에 열심히 하면 다 잘된다는 말을 자주 해 주셨다. 오늘도 동네를 돌며 미리 조금이나마 매출에 보탬을 주시기 위해서 애쓰시는 모습을 느낌으로 알게 되었다. 경험을 배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이 순간 삶의 가치는 부자이다.
마음을 얻으려 노력하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듬뿍 담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정과 마음이라는 것이 통하는 세상이 좋다. 인연이 쌓이는 만큼 마음과 행복을 쌓을 수 있어 동네 카페의 주인인 근수와 희정은 지금을 바꾸어 미래를 변화시키고 있다. 상상한 대로 이루어지는 신기한 둘의 미래가 있다.
저녁시간 공원의 조명아래 어디서 뵌 듯한 분이 카페 안을 째려보듯 뱀눈을 지켜 뜨며 바라보고 있다. "누구지?" 라며 희정이 말한다. "어~~~ 우리의 단골이시자 스승이신 교수님??"이라며 놀라듯 근수 말한다. "어! 맞으시네". "이 근처에서 약속 있으신가?" 라며 희정이 말한다. "저녁식사 드시고 나오신 거 같은데 왜 저기서 계시지?" 라며 희정이 또 묻는다. "술 한잔하셔서 못 들어오시나?"라고 근수가 말하자 희정이 얼른 밖으로 나가 "교수님! 커피 드실 거면 들어오세요!"라고 여쭙는다. 멀리서 근수가 지켜보니 커피를 밖으로 갖다 달라는 것처럼 보였다. "교수님이 커피 밖으로 배달해 달라고 하신다"라고 희정이 말한다. 눈치가 빠른 근수는 "아~~ 커피도 커피지만 뭔가 하실 말씀이 있으신 것 같다"라고 희정에게 말한다. 교수님이 차마 말씀 못하고 계신 사정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