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느끼며 알아가는 것들
누군가 말했다 내가 하려고 하면 그 어느 때보다 사소함이 버거움으로 다가온다는...
근수가 처음으로 시작한 아르바이트 그 여름은 유난히 덥고 힘든 일들이 많이 생기기도 했다. 어쩌면 누구에게나 똑같은 여름날이고 힘든 것들이라 하겠지만 느끼는 사람은 자신만이 힘들고 지친다고 할 수도 있는가 보다. 처음 마음먹었던 생각들이 흔들리고 잘못된 거라 의심해 볼 때도 있다. 자신들이 더 성숙해지고 발전한다는 걸 세월이 흘러야 알아간다는 걸 새삼 느끼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학창 시절에는 자유를 잠시 내려놓고 한 가지만을 생각하며 집중해야 한다. 스무 살이라는 성년에게 주어지는 자유는 행복이다. 대학생활 몇 개월의 자유로움을 이제 스스로 내려놓고 다시 자신을 옥죄고 있다. 오히려 사춘기 때보다 더 많은 생각과 독백의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근수 자신을 다시 되돌아볼 시간이 된 것이다. 그래도 나이 듦의 자유는 소중한 것이다. 먼 훗날 뒤 돌아보아도 괜찮을 만한 이야기가 되어 있길 바라본다.
근수가 재덕이보다 먼저 커피숍에 나와 오픈 준비를 하고 있다. 처음 시작 할 때와는 달리 같이 나오서 준비하리라는 약속이 흐릿해져 가고 있다. 사람이 살면서 일에서든 사람관계에서든 늘 좋은 일만 있지는 않다. 작고 사소하면서 별거 아닌 일에도 사람에게서 멀어진다. 그래도 근수와 재덕이는 친구다. 좀 늦는다고 실망하거나 속상할 사이는 아닌 것이다. 정이라는 것도 내가 더 많이 나누고 베푸는 것이지 다시 되돌려 더 많이 받으려는 것은 아니라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내가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만으로도 서로 가진 것들을 나누는 것이고 신뢰를 쌓아가는 길이라 믿었다.
근수가 힘든 일이 있고 피곤한 날이라도 이제는 그런 일들에게서 이겨내는 법을 알아 가고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이나 사람의 관계 속에서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는 걸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오늘은 커피숍의 원두가 없어서 원두를 갖다 주시는 사장님이 오는 날이다. 아르바이트 첫날 원두 가는 향기와 커피 내리는 향기에 반해버렸다. 새로운 원두가 오는 날은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마치 봄날에 처음 보는 꽃처럼 좋고 나들이 가는 어린아이처럼 기다려진다. 기다림이란 늘 지루하고 길다. 그러던 차에 손님들에게 주문 전에 서비스로 나갈 물을 준비하고 있다. 정수기 그런 거 없을 때가 아닌가. 커다란 냉온수용 대용량의 물통에 물을 채워두어야 한다. 무거운 스탠으로 된 물통을 힘겹게 혼자 내려 물을 가득 채워 다시 들어 올려 두었다. 여름에는 시원한 물을 준비해야 되기에 얼음을 넣어 둔다. 이렇게 무엇엔가 집중을 해야 시간이 잘 간다. 이때 누군가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린다. 기다리던 업체 사장님이 원두를 갖다 주러 오셨다. 제법 무거운 원두를 혼자 들고 올라오셨다. "사장님! 알바를 부르시죠?, 혼자서 이 무거운 걸 들고 오세요?"라며 근수가 말한다. "아! 이 정도는 혼자 배달해, 오래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겨 무거운 줄도 모르겠네"라며 근수에게 말씀하신다. "오늘 사장님 많이 기다렸습니다"라고 근수가 말한다. "아! 그래?"라며 사장님이 이유를 묻는다. "제가 요즘 원두커피 맛과 향에 반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사장님이 오신 날 원두를 갈면 향기가 너무 좋아 하루 종일 기분이 좋더라고요" 라며 근수가 이유를 설명해 드린다. "그랬구나! 꼭 주인장처럼 말을 하네"라며 근수를 바라본다. 근수는 무슨 이유인지 그 사장님에게 마음이 끌린다. 그래서 가끔이지만 오시는 날이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물도 대접해 드리고 우유도 한잔씩 드리곤 했다. 사람이 사람을 당긴다는 건 참 묘하고 좋은 기운을 나눠준다. 사장님이 오늘은 그 마음을 보답하듯 다른 업체에 들렀다가 받은 걸 손에 들고 계신다. 근수도 처음 보는 음료수를 내민다. "이거 내가 가끔이지만 얻어먹었으니 학생생각이 나서 안 먹고 들고 왔어"라며 근수에게 말한다. 근수는 사람이 주는 마음이란 것이 줄 때 더 좋지만 무엇인가를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받는 것도 참 감동스러웠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챙겨 주시니 오늘 감동입니다"라며 사장님을 바라본다. "별거 아닌데 좋아해 주니 내가 더 기분이 좋네"라고 말한다. "요즘 장사가 안된다는 곳이 많은데 장사가 잘되는 곳에 알바를 하는 것도 복이다"라고 말한다. 근수를 바라보며 "나중에 또 알바를 할 계획이 있으면 나한테 꼭 말해"라며 다짐을 받으려 한다. "전 경험도 없고 일도 잘 못해요"라고 근수가 말한다. 커피숍 사장님이 "자기 일 처럼하고 차분하게 일 처리를 잘한다"라고 칭찬하시더라며 근수를 치켜세운다. 아마 여 사장님이 재덕이의 급한 성격과 대조가 되어 그렇게 말한 것 같았다. 그래도 칭찬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지나간 좋지 않은 일들이 오늘의 좋은 일들을 다 잊게 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을 대할 때는 신뢰를 먼저 얻고 그다음 마음으로 정을 나누는 거란 걸 알았다. 처음 본 사장님은 무뚝뚝하고 성격이 거칠 것 같았는데 마음을 열고 사람을 알아가려고 노력하다 보니 진심으로 대 할 수 있었다. 알면 알수록 사람에게 다가가는 요령이 생기고 정을 나누는 법과 진실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장님과의 아쉬운 만남을 끝내고 근수는 새로운 원두를 갈고 있다. 원두의 향기가 사람의 향기처럼 느껴지는 날이다. 이때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난다. 평소 같으면 또각또각하고 빠르게 나야 하는데 오늘은 왠지 그 소리가 천천히 또~각 또~각 하며 느리게 들린다. 문이 열린다 재덕이다. 계단 오르는 소리가 느린 걸 보니 재덕이 오늘은 일하기 싫은가 보다. "너 오늘 일하기 싫구나?" 라며 재덕에게 말한다. 재덕이 얼굴에 답이 있었다. 그래도 기분 좋은 날의 활기찬 마음을 친구와 나누고 내가 친구에게 위로가 되어 줄 수 있어 좋다"라고 근수는 생각하고 있다. 다음엔 재덕이 근수에게 더 많이 위로가 되는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근수와 재덕이는 아직 서로에게 줄 것도 받을 것도 나눌 것도 많은 좋은 관계이다. 근수와 재덕이 서로를 바로 보며 웃고 있다.
근수가 스무 살 알바시절을 떠올리고 있다. 기억 속에 억지로 남기려 하지 않아도 떠오르는 건 근수 스스로 감동을 저장해 둔 것처럼 갑자기 쓰윽하고 펼 펴져 행동까지 멈추게 한다. 근수도 지금 아침 일찍 카페에 나와 이것저것 재료준비도 하고 주문할 것들을 챙기고 있다. 그때처럼 물을 준비할 필요는 없다. 정수기에서 물을 1리터 정도 되는 피처에 담아 서비스 테이블에 올려 두면 된다. 세상이 시간에 따라 바뀌는 것이니 적응을 하는 것은 사람들의 몫이다. 주문 전 물을 서비스해 줄 필요도 없고 물이 필요하면 서비스테이블의 물을 마시면 된다. 이런 것을 셀프라고들 한다. 정이라는 것들이 불편과 편함의 사이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각박하다는 말도 스스로가 말해 버릴 일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모두가 만들어 낸 시간의 변화, 환경의 변화이다. 누군가 혼자 함부로 만들어 낸 환경적인 문화는 아닌 것이다. 함께 만들어 버린 셈이 된다. 그래도 일부의 사람들끼리는 변화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길 바라고 또한 지키고 싶은 것들을 몸으로 마음으로 표현하고 싶어 한다. 은근히 끌리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가 나누고 싶어 지는 것. 다가서고 함께 나누는 시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근수의 카페가 한몫을 하길 바랐다. 스무 살에 반해 버린 커피 향이 꿈처럼 스치는 오늘. 마침 오늘도 원두가 배달되어 오는 날이다. 커피머신을 더 신경 써 청소하고 에스프레소 한잔을 뽑아 커피잔에 담는다. 그때의 그 커피 향과는 다르지만 그 감정과 향기가 교차된다. 꿈을 깨우듯 희정이 근수를 부른다. "나도 아~메 한잔 부탁!"이라며 근수에게 말한다. 손님보다 더 반가운 커피 주문이다. 근수는 자신의 커피와 희정의 커피를 정성 들여 창 넓은 고정석으로 간다. 잠시 조용한 시간이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의 정을 쌓는 길이 있다. 한 가지는 이미 쌓여 가는 사람과 더 높고 오래 쌓아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처음의 정의 첫돌을 쌓아 이어가아야 할 정이 있다. 카페를 운영하다 보면 화들짝 놀라고 회의감 같은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장사가 바쁘게 잘 되면 카페의 장비가 하나둘씩 탈이 난다. 그때마다 푼돈을 벌어 조금씩 모아가는 재미와 즐거움을 앗아 간다. 왜냐하면 장비의 소모품을 수리하려면 목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때는 맥가이버 같이 짠 하고 실력발휘를 해야 한다. 돈을 들 리이지 않고 뚝딱 고쳐내야 하기 때문이다. 근수가 어렵지 않은 고장과 탈을 고치면 희정이 "대단해요!" 라며 칭찬을 해 준다. 이런 것이 바로 이미 쌓여있는 정과 사랑 사람의 감정에게 영양분을 제공하는 것이다. 근수는 그때마다 뿌듯하고 희정의 앞에서 어깨에 힘을 준다. 아주 당당히 말이다. 누구의 말 보다 행복한 얼굴이 된다. 그런 후 "제발 부탁이야 장비들아! 고장 나지 마라"며 속으로 기도를 한다. 근수와 희정은 늘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동네 카페를 운영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과 친해지고 가까워져서 관계가 깊어진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개인적인 것에 대해 상의도 하고 넋두리도 해가며 정으로 이어지는 소통을 한다. 사람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을 한다기보다는 조금만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진심을 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근수와 희정이 느끼고 있다. 인사 한마디, 나누려는 마음이 잘 전달되는 것이야 말로 이 긴 카페의 운영시간의 지루함을 이겨내고 힘듦을 이겨내는 방법이었다. 어느 때부터인가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 연세에 어울리지 않게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켜 창 넓은 창가에 자리를 잡고 밖을 내다보시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시기도 하고 근수와 희정의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눈웃음을 보내주시곤 조용히 가신다. 희정이 "저분은 뭐 하시는 분이지 궁금하지?" 라며 근수에게 묻는다. 근수도 궁금하긴 마찬가지 인지 추측만 할 뿐이다. 아마 동네 유지이신 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요즘 말로 액티브시니어이신 거지... 어떤 일을 하셨든 은퇴를 하시고 모아 놓은 재력으로 여러 활동을 즐기시고 모임도 많이 참석하시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궁금증만 더해 갈 뿐이었다. 며칠 후 그분이 카페로 오셔서 근수보고 사장님 커피 한잔 살 테니 이리 와 앉으라고 하신다. 예 알겠습니다. 라며 근수가 아메리카노 두 잔을 들고 자리에 앉는다. 대학 신입생 때나 들어 본 서로의 호구조사의 시간이다. 어색하고 서먹서먹한 대화가 오고간다. 그분은 자신이 이 근처에 사신다며 카페가 생겨 궁긍하던차에 왔다가 두 분이 인상도 좋고 친절해서 자주 오게 되셨다고 하신다. 부부의 인상이 참 선하고 착해 보이고 인심이 좋다고 소문이 났다고 말씀하신다. 손님이 많아 장사가 잘 되는 것도 열심히 해서라고 덕담까지 주셨다. 그분은 은퇴 후 건물을 가지고 월세를 받고 계신다고 하셨다. 근수와 희정이 꿈꾸는 것이 건물주인데 말이다. 사람은 나이를 먹어 가면서 꿈도 미래의 설계도 바뀌어 간다. 하지만 근수와 희정은 요즘 건물주가 되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 그분은 두 분 열심히 지금처럼 하면 나같이 나중에 건물사서 편하게 살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나이 지긋한 분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그분이 보낸 경험을 배우고 그분을 알아가는 것도 흥미롭고 재미가 있었다. 성공과 실패를 오가는 이야기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사연으로 남는다. 이렇게 사람과 사람이 정의 시간을 나누는 것도 카페를 하는 즐거움이 되기도 한다. 어느 날 나이 지긋한 분들이 10명 정도 카페로 들어오셨다. 희정이 망설이시는 분들을 친절히 안내해 자리를 잡으셨다. 조금 있으니 그 어르신이 손님을 데리고 오신 것이다. 그날 대화 이후 그분이 열심히 하고 친절하다는 말과 함께 그분들이 잘 가시지 않는 카페로 일부러 데리고 오신 것이다. 매출을 올려 주시려고 말이다. 근수와 희정은 늘 생각한다. 장사도 사람이 하는 것이니 온 마음을 다해 사람을 대하면 우리 또한 그분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고... 그분이 부부에게 전한 이 뜨거운 정은 어떤 것으로든 갚을 수는 없다. 근수와 희정은 너무 많은 것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능력 껏 되돌려 주려고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해서 이다. 때론 일에서 지치고 사람에게 지치지만 지금 이 순간은 감사하고 좋은 날이다. 부부가 나누고 있는 정만큼 이나 동네 카페에 퍼지는 정, 그리고 그런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카페를 지키면서 살아남아야 하는 가치관이 되어 줄 것이다. 내가 나눈 마음의 정. 내가 받은 사랑의 정은 거스름이 필요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