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이루어 주는 마법사
근수와 재덕이 무심코 뛰어들었었던 아르바이트도 막바지에 이른다.
얼마 안 되는 월급봉투를 받아 들고 뿌듯해했을 그날이 그립다. 근수와 재덕이는 첫 월급으로 부모님들에게 선물할 내의를 사기 위해 들떠있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고 만남 또한 헤어짐과 또 다른 만남을 의미한다는 것을 배웠다. 재덕이는 가정 형편이 근수보다는 훨씬 좋았다. 그래서인지 내복을 사려는 약속을 어기고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카세트 플레이어를 샀다. "이거 어때? 요즘 좋아하는 노래 있어서 샀다" 며 자랑한다. 근수는 단단히 화가 났는지 심드렁하다. "좋겠네" 라며 대답한다. 근수는 기뻐하실 부모님의 모습을 떠 올리며 부러운 티를 내지 않고 태연한 척한다. 서로 그동안 수고 했을 마음을 위로한다. 지나간 것들을 되돌리는 마법을 부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파했던 사건들과 배신 그리고 아픈 사랑의 추억을 내 멋대로 설계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 참고 착하게 살았으니 이 만큼의 시련으로 끝날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무미건조하게 변할 수 있었던 시간들을 친구와 함께 한 것만으로 행복했다고 하자.
재덕이 자신을 험담하고 다닌 여 학생과 오해를 푼 후. 제법 오랫동안 근수 몰래 만나며 사귀고 있었다. 근수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재덕이 출근이 늦었다. 아마 아르바이트가 거의 끝나가던 날이었을 것이다. 밝은 모습과는 정말 다르게 진진한 표정으로 커피숍으로 출근했다. 오늘 왜 이렇게 진지하냐 얼굴 인상 좀 펴라" 근수가 말한다. 재덕이는? 몰래 숨기고 여자 친구를 사귄 게 미안했던 게 분명하다. 아무리 좋아해서 만나는 연인이라도 싸울 일이 생긴다. 이번 일은 꾀 심각한 일인 것 같았다. 재덕이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연다.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자꾸 잔소리를 했다고 한다. 재덕이 말은 "옷을 왜 그렇게 입어?, 다른 거 좀 입어라!", "머리는 그게 뭐냐!" 등등하지 말라는 게 왜 그리 많은지" 라면서 말을 잇는다. 잠깐 다른 남자 친구도 못 만나게 해! 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래서?" 근수가 궁금해하며 묻는다. "자꾸 싸우게 되고 내 맘대로 하니까, 화를 내더니 헤어지자고 하더라"며 울분을 토해 낸다. 근수는 자기 일 같았지만 다른 사람의 일을 확실히 알지 못하니 뭐라고 해 줄 말이 없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잘 지내고 있다가 부모님들의 반대로 어쩔지 없이 헤어진 모양이다. 어린 마음에 경험 없는 재덕이 많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헤어짐이 얼마나 아팠을까? 근수도 묘한 감정에 빠져들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드라마에서 장면이 변하면서 딱 맞아떨어지는 음악이 커피숍 안을 감싼다. 88년도 인기곡이자 긴 생머리에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여자가수의 노래가 근수와 재덕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양수경의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 이 타이밍에 흘러나오다니...
재덕이와 여자 친구는 버스 터미널에 쭈그리고 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통고하는 울음을 터뜨리며 있었다고 한다. 막차가 올 때까지 말이다. 그 헤어짐의 순간을 재덕이 근수에게 고백했다. 재덕이도 버스에 오르는 여자친구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살면서 가장 슬픔의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가사 중에 "그렇지만 문득 /그대 떠오를 때면/ 이 마음은 아파 올 거야 /그 누구나 세월 가면 / 잊혀지지만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 가사가 이렇게 귀에 쏙쏙 들어와 심금을 올리다니 밤새 이 노래를 듣기 위해 재덕이가 근수와의 약속을 어겼던 것이다. 근수도 그 마음을 이해하며 용서하기로 했었다. 근수 자신이든 재덕 이든 온전히 아파할 줄 아는 시간들이 나중에는 모든 아픔을 되돌려 줄 마법이 되어 주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재덕이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소식도 없이 군입대를 하고 만다. 친구에게 행복만 가득할 수 있도록 내 마법이 전해 지길 바라본다. 마법처럼 지금을 회상하며 다시 만날 수 있길 희망하며 아쉬운 작별을 했다. 회상의 끝은 모든 이에게 돌아보는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다. 근수의 마지막 추억 회상은 끝나지 않은 기록이 되어 주었다.
근수와 희정은 아침을 여는 카페의 시간에 어떤 마법을 갖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끌어당기는 마법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잔잔한 음악이 지난 추억 속의 노래가사처럼 들린다. 분명 다른 노래, 다른 음악이자만 딱 이 시간만큼은 그 노래로 들리고 있다. 한 동안 가슴속 깊이 남아 마음을 달래 주던 그 음악이 자꾸 들린다. 맞다. 재덕이도 보고 싶어 진다. SNS에 사람 찾기라도 해야 되나 싶기도 했다. 많이 보고 싶었다. 그때와 똑같은 마음으로 만날 수 없는 사라진 시간이 안타깝기만 하다.
오늘은 근수가 가장 싫어하는 자동이체의 날이다. 카페의 음악도 결제 시스템도, 인터넷사용도, 쿠폰 적립 등등 매달 결제를 해야 한다. 근수가 농담으로 희정에게 통장에서 자동이체로 모든 것이 빠져나갈 때마다 말했다. "내 통장은 들어오는 돈이 스쳐 지나가는 곳"이라며 말하곤 했다. 희정은 그 말에 "맞는 말이다"며 미소를 지었다. 회사를 다니며 월급을 받아 본 지 까마득하다. 그때도 지금의 기분은 아니었다. 보너스라는 것도 있고 가끔 명절에 선물도 받곤 했는데... 장사꾼은 그런 게 없다. 장사는 손님이 찾아주지 않으면 수익을 낼 수 없다. 스쳐 지나가는 통장이 아닌 차곡차곡 쌓이고 불어나는 통장이 되는 마법을 일으켜 주길 바라며 근수와 희정은 행복의 주문을 함께 외우고 있다.
가끔은 반가운 소식과 반가운 손님이 하루의 피로를 날려 줄 때가 있다. 오늘 하루는 더 기대된다. 반갑고 고마운 사람들을 많이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아침 첫 손님은 스승님이자 가족이 되어 가고 있는 교수님. 오늘 하루도 함께 열어 주셨다,
한 달에 두어 번쯤 카페는 사랑방이 된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모임의 저녁식사 후 카페를 찾아 주신다, 단체로도 오시기도 했다. 희정이 사람을 잘 기억하는 능력도 여기서도 계속 발휘된다. "얼마 전에도 오셔서 커피 드시고 가셨죠?" 라며 인사를 한다. 희정이 이렇게 친절히 샘 넘치는 사람은 아니었는데라고 근수도 놀란다. 어르신들이 희정을 보며 "저번에 너무 잘 막고 가서 여기 단골이 되어야겠다"라고 하셨다. 달달한 커피를 드시는 분과 아메리카노 드시는 분을 기억해 두고 희정이 대신 주문을 해 드린다. "알아서 저번처럼 해 달라"라고 하신다. 근수가 메뉴를 준비하며 엄지 척을 희정에게 날린다. 홍보가 많이 되기도 하고 커피를 드시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선 결제도 잘해 주시고 음료를 직접 테이블까지 들고 가시기도 한다. 근수와 희정은 부모님 같으신 어른들께는 "제가 갖다 드릴게요"라고 말씀드린다. 달달한 과자와 설탕까지 꼼꼼히 챙겨 갖다 드리면 어르신 들도 꼭 이렇게 회답하신다. "내가 갖고 와도 되는데"... 설탕하고 과자까지 주시네" 라며 말씀해 주신다. 희정이 "설탕 넣으시고 잘 저어 드세요" 라며 마음을 다해 말씀드리고 자리로 돌아온다. 근수도 가끔이지만 카페에 새로운 시설이나 좋은 소식이 있으면 가시기 전에 꼭 자세히 안내해 드린다. 자식이 부모님에게 자랑하듯 말씀을 드린다. "참 좋네. 잘했네" 라며 칭찬도 아끼지 않으신다. 어느 날 집안 사정으로 갑작스럽게 알려드리지 못하고 카페를 닫은 적이 있었다. 며칠 후 어르신들이 자신의 일처럼 걱정해 주셨다. "무슨 일이 있어서 그랬는지 이렇게 문을 닫아 걱정 많이 했다"라고 하셨다. 근수와 희정은 이런 분들의 마음을 잘 안다. 지금 세대가 느낄 수 없는 어르신들의 마음은 그 무엇과 바꿀 수 없었다. "다음부터는 꼭 미리 알려드리거나 입구에 꼭 적어 두겠습니다." 라며 근수가 말씀드린다. "아니야~" 라시며 큰일이 아니며 됐다" 며 안심하신다. 근수와 희정은 습관처럼 그분들이 카페를 나서실 때 문 밖까지 나가 인사를 드렸다. "늘 건강하시라"는 말씀은 빠뜨리지 않았다.
대학가라서 한 학기에 두 번은 독서실처럼 분위가 조용하다. 이야기를 나누시는 손님도 조심할 정도였다. 카공족이라는 또 하나의 신조어가 생길 정도다. 근수와 희정은 카페에서 시험기간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 이번에는 부모의 마음으로 변한다. 간식으로 먹으려던 과자나 초콜릿을 주면서 근수와 희정이 동시에 "열공!"을 외쳐준다. 동네 카페는 사랑방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아니 사랑방의 분위가 더 좋아졌다. 어르신들의 인생이 담긴 소중한 말씀이 흔들리는 마음을 달래 준다. 그 단골 어르신 중 한 분이라도 보이지 않으면 걱정이 앞선다. 어디 편찮으신 건 아닌지 안부를 걱정스럽게 여쭙기도 했었다. 이사를 가거나 편찮으시다는 말씀을 들으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카페를 운영하는 근수와 희정은 나무와 같다. 나무에 찾아든 새가 둥지를 옮기고 떠나는 것처럼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하는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다행히 그분들이 베푸는 마음의 역시나 마법을 부렸다. 먼 곳에서 모임을 꼭 참석하시고 다시 찾아주시고 편찮으신 분도 건강을 다시 회복하셔서 함께 오셨었다. 마음이 전하는 마법이 서로에게 좋은 소식과 선물을 전하는 제비가 되어 주었다.
근수와 희정은 지금 달리고 있는 이 인생길의 종착역은 알 수가 없다. 무작정 달리는 인생길은 아니지만 잠시 멈추는 간이역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마음 나눔은 곧 행복이라는 종착역에 닿을 것이다.
내가 만약 지금 이 순간 일일 DJ라면 어떤 곡을 틀어 놓을까?
조동진의 행복한 사람을 좋겠다. /외로운 가요 당신은 외로운 가요 /아~ 그러나 당신은 행복한 사람/아직도 바람결 느낄 수 있는/그렇게 아름다운 그 마음 있으니../
때로는 음악이 최고의 마법을 부린다. 아 그래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었으니 이 보다 큰 부자는 없다.
근수와 희정이 금전보다 소중한 의미의 행복을 얻고 있다. 나누고 베푸는 세상의 행복.
"자기야! 우리는 부자야! 행복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