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발적 집순이가 되어버리다
현대인이 천둥번개 때문에 벼락 맞아 죽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혹자는 말한다. 로또에 맞을 확률보다 더 낮다고. 하지만 나는 이 천둥번개 때문에 아주 오랜동안 괴로워했다.
주로 소리가 문제였다.
성인 남성의 큰 고함 소리,
오래된 세탁기의 탈탈탈탈 거리는 위협적인 소리,
태풍이 올 때 창문을 불규칙적으로 때리고 가는 소리, 오토바이 소리,
천둥번개의 소리.
이런 소리는 밤의 적막과 대비되어 더 잘 들린다. 곤히 잠을 잘 자고 있다 하더라도 이런 소리가 들리면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온 몸에 찌릿한 통증이 느껴지고 뒤이어 심장 소리가 아주 크게 들리며 잠에서 즉시 깬다. 그리고 온몸에 땀이 나기 시작하고 몸이 굳는다. 이미 방 안에 숨어있지만 더더욱 깊숙한 곳으로 숨고 싶어진다. 하지만 너무 무서워서 오히려 몸이 굳고 눈만 껌뻑 껌뻑 하며 번개의 불빛이 쨍한 후 몇 초만에 천둥이 치는지 덜덜 떨며 초를 세기 시작한다. 저 천둥이 도대체 나로부터 가까워지나 멀어지나 에 대해 지켜보느라고 그날 밤 잠은 멀치감치 달아나있다.
피뢰침이 제대로 작동 안 하면 어떡하지, 우리 아파트 라인이 홀랑 다 타버리면 어떡하지, 그래도 나 혼자 죽는 거 아니니까 다행인가. 아파트 모든 동이 잿더미가 되어서 뉴스에도 잔뜩 나오겠지, 나만 죽고 부모님은 사시면 부모님은 마음 아파서 어찌 사시나, 아니면 나만 살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아원에 가야 하나, 이모들 중 한 명이랑 같이 살게 될까. 등의 매우 구체적이고 부정적인 상상이 시작된다. 천둥소리가 작아지고 번개가 잦아들기 전 까지는 잠에 못 든다. 숨도 제대로 못 쉬어서 들숨만 가득 가슴에 한참을 담고 있다.
한편 자고 있을때 싸우는 성인 남성의 고함 소리에는 여름에도 심장이 서늘해진다. 직장에서 근무할 때였다. 그때는 한 낮이었지만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같은 팀 선생 하나가 괜히 나에게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았다. 그 다음날은 나의 퇴사였고 내가 어떻게 대처를 하던 사실 앞으로 안 볼 사람이라 상관이 없었다. 심지어 그 선생은 본인의 인성 문제로 다른 선생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좋지 않았다. 근데 나보고 고함을 지르고 거의 욕 비슷하게 비난을 했는데도 나는 그 자리에 서서 단 한마디도 못 했다. 지금도 가끔 억울하다. 그 냉장고 닮은 별 것 아닌 남자가 뭐라고 난 그렇게 무서워했을까. 그 당시에는 머리가 말 그대로 정지해버렸다.
어린 시절 아빠는 자주 술을 마시고 고함을 질렀다. 자고 있는 나와 동생을 깨우기도 했다. 아마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 소리가 무의식적으로 나의 불안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엄마는 워킹맘이었다.
아침에 출근을 하실때 "안녕히 다녀오세요"
하지만 속마음은
안녕히 (살아) 다녀오세요
였다. 출장을 가시거나 저녁에 늦게 집에 오시는 날이면 아주 구체적으로 교통사고가 나는 상상이 시작된다. 혹은 강도나 범죄에 연루되는 장면도 그려진다. 납치가 될 수도 있고, 아주 끔찍한 살인사건까지 여러 방법으로 뉴스나 소설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마음껏 각색한다. 너무 당연하게도 내가 즐거워서 이런 상상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일련의 생각 고리들이 자동적으로 아주 빠르게 펼쳐져서 이것을 중단하려면 나의 의지가 적극적으로 개입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한 건 30대 중반이 넘어서부터였다. 그 전에는 내가 나쁜 상상을 또 하고 있구나, 라고 인식할 수 조차 없었다. 그저 자동적으로 아주 빠르게 머리속에서 영상과 함께 펼쳐진 내용을 수동적으로 보고 느끼며 불안해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엄마가 집에 들어올 때 현관 열쇠를 드르륵 하고 열쇠 구멍에 집어넣기 전 까지는 끔찍한 상상에서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가족 모두들 내가 조용히 잠을 자는 줄 알았겠지만 이불속에서 또 덜덜 떨며 나쁜 상상과 싸우고 있었다. 갑자기 응급실에서 엄마 아닌 다른 사람에게 연락을 받는 상상, 아니면 내일 아침까지도 엄마가 집에 안 오시는 상상. 더 심하게는 유혈이 낭자한 도로에 대한 상상 등의 차마 글로 옮기기도 힘든 끔찍한 망상이 계속되었다. 성인이 돼서는 이런 생각이 머리에 떠오를 때마다 의식적으로 다른 일을 하며 시간을 견 견디려고 노력했다. 주로 결말을 보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악질적인 엔딩을 가진 미국드라마 혹은 현실보다 훨씬 끔찍하고 무서운 좀비영화가 주로 도피처가 되었다. 영화가 끝나면 현실은 훨씬 평온해서 그 안도감으로 버텼다.
결혼하기 전에는 내가 걱정하는 대상이 엄마나 아빠가 100퍼센트의 지분을 차지했다면 지금은 세대주 90, 부모님 10정도로 바뀌었다. 그래도 그나마 지금은 휴대폰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 줄 모른다. 걱정하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시간이 훨씬 줄었다. 그 대신 6-7년간의 결혼생활 중 총 다섯 번 정도 남편이 연락이 안 된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당연하게도 다행히도 이 글을 쓰는 지금 순간에는 엄마나 아빠, 그리고 세대주 모두 건재하다. 그래도 여전히 내 마지막 연락으로부터 1시간 이상 답 연락이 안 오면 밤이고 낮이고 불안하다. 이 불안한 마음은 떨쳐지지가 않는다.
나 역시 집을 나설 때 오늘 다시 이 집에 발을 못 들이면 어떡하지, 강아지는? 남편은? 아기는? 하고 또 온갖 부정적인 상상을 하지만 아닐 거라고 나 자신을 더욱 더 강력하고 구체적이게 속인다. 그렇지만 할 수만 있다면 집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 밖은 약육강식이 난무하는 정글이다. 모든 것이 위협요소이자 위험이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한다. 몸 상태가 좋지 않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경우, 그리고 생리 중인 경우 이 생각은 더욱더 강해진다.
그렇게 나는 비자발적인 집순이가 되어갔다.
뉴스를 보면 숨이 막혀서 잘 보지 않는다. 텔레비전도 한 달에 두 번 켤 까 말까 하며 피한다. 그렇게 열심히 부정적인 뉴스로부터 열심히 도망 다니지만 요새는 필요한 것을 검색하기 위해서는 꼭 포털사이트를 하루에 한 번은 들어가야 하더라. 그러면 사람들이 자주 보는 사건사고의 기사 한 줄은 어찌나 눈에 잘 띄는지. 늘 평소처럼 집을 나서도 멀쩡하던 백화점이 무너지고, 다리도 무너지고, 건물도 무너진다. 그렇게 해서 희생된 분들은 그들이 그렇게 생을 마감할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상상이나 했을까? 그 뿐인가? 교통법규를 아무리 잘 지켜도 술이나 약물 혹은 둘 다 아니어도 정말 재수가 없으면 타인의 범죄 때문에 죽거나 다친다. 거의 모든 뉴스는 이렇게 불행한 일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요새는 살인 사건도 굉장히 많다. 교통사고는 1위 악성신생물질(암), 2위인 자살을 뒤이어 한국의 사망원인 3위로 꼽힌다. 내가 아무리 교통법규를 잘 지켜도 상대편의 잘못 때문에 죽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죽은 사람만 정말 너무 억울하다. 그런 뉴스를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미어져 차라리 안 보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의도적으로 피한지는 꽤 여러 해 째다. 이런 생각 때문에 외출을 될 수 있으면 피하게 된다. 게다가 코비드 19 때문에 어찌나 강박적으로 손을 씻어대는지. 외출 시 나만의 철칙이 있는데, 사람이 많은 곳에 갈 때는 무조건 kf94를 쓴다. 그리고 그 마스크는 무조건 그날 밀폐된 봉지 안에 폐기해야 한다. 그리고 자동차 핸들을 잡기 전 무조건 손은 두 번 씻어야 한다. 손을 씻고 나서는 절대 아무것도 만지지 않고 손잡이나 버튼은 팔꿈치나 손가락 바깥의 마디로 누르는 미션을 긴장 속에서 수행한다. 이러한 수없이 많은 규칙을 지키느라 솔직히 너무 버겁다. 이렇게 지키고도 2주 동안 몸 상태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아니 2주가 뭐야, 한 달은 불안하다. 그런데 한 달동안 아무데도 외출하지 않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러면 다시 또 지켜보는 한 달의 재시작이다. 사실상 24시간 코로나 전시 대비 상황이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지내는 것을 안다. 나만 이렇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이 유일한 위안이랄까. 이런 모든 루틴을 지키느니 차라리 안 나가고 만다. 나는 이렇게 철저한 비자발적 집순이가 되었다.
확실히 완벽한 망상 인지도 모르겠다. 적당한 걱정과 조심성은 사실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이 글을 쓰기 전에 몇몇 지인의 의견을 구했다.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어서 의외로 위로도 되었다.
여름에는 특히 가전제품의 사용량이 많아지는데, 땀을 많이 흘리니 수건이니 속옷이니 빨래를 자주 돌리게 되고, 습하니까 건조기능을 더 자주 쓴다. 건조기능까지 한꺼번에 돌리면 세탁기가 과열되어서 폭발하는 상상을 한다. 그래서 아주 급할 때가 아니면 세탁까지 다 돌린 후 잠시 세탁기를 쉬게 했다가 다시 처음부터 켜서 건조기능만 돌린다. 한꺼번에 하면 길게는 여섯 시간까지 걸리기 때문에 그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너무 두렵기 때문이다. 올해 여름은 굉장히 더웠다. 어느 날 하필이면 수건이 다 떨어졌고 하필이면 속옷도 없었다. 그리고 비가 왔고 습하고 덥기까지 했다. 건조기능까지 한꺼번에 누르니 세탁기는 6시간 14분이 걸린다고 나에게 번쩍거리며 하얀 글씨로 알려줬고, 에어컨은 너무 더워서 차마 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 낮에 또 하필이면 식기세척기조차 돌려놓지 않아서 자기 전에 돌리고 자야 내일 쓸 식기가 생기는 상황이었다. 세탁기는 여섯 시간, 에어컨은 3일 내내 켜 둔 상태, 그리고 식기세척기마저 한 시간 사십 분 남짓은 걸린다는 것이었다.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도저히 심장이 뛰고 숨이 가빠져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세탁기가 누전돼서 파바박 불꽃이 튀는 상상, 그 불꽃이 가스배관을 타고 부엌이 폭발하고 뒤이어 아파트 전체에서 화재가 나고 소방차가 대거 출동하는 상상. 하얀 식기세척기의 외관이 불꽃 때문에 오그라들어서 타는 상상. 플라스틱이 타는 냄새까지 거의 현실인지 상상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생생하게 느껴졌다. 결국 새벽 두 시가 다되어 잠을 못 이뤄서 세탁기를 끄고, 에어컨을 끄고서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잠은 잘 잤냐고? 당연히 못 잤다. 너무 더웠다. 그래도 타 죽는 것보단 더워서 나 혼자 못 자는 게 낫다고 나를 위안했던 길고 긴 그날 새벽이 생각난다.
지역 주민 카페에 들어가 보니 몇 날 며칠 에어컨을 전혀 끄지 않은 세대가 너무도 많다는 것에 충격을 받아 악플이 달릴 걸 감안하고 글을 썼다. 화재 위험성을 언급하며 에어컨의 전원을 잠시라도 껐다가 다시 켜자고 독려했다. 에어컨을 안 껐다는 사람 닉네임에 혹시 우리 동이 들어가는지도 꼼꼼히 살폈다. 혹시 우리 윗집이나 아랫집, 혹은 같은 동이면 우리 집에도 불이 옮겨 붙을 수 있으니까.
이렇게 겁이 많으면서 또 혼자서 자취는 어떻게 15년 넘게 했을까. 이사를 굉장히 자주 다녔고 자취를 하면서부터는 보일러까지 나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추운 여름에 보일러를 켜면 뜨뜨뜨의 점화되기 직전의 기계음이 나오다 불이 확 켜져서 쇠로 된 네모난 보일러 박스 안에서 불이 막 활활 타오른다. 금방이라도 그 밖으로 불길이 나와서 옮겨 붙을 것만 같다. 불꽃이 터지면 모든 가전제품들이 뒤이어 터지기 시작하겠고 당시 나는 4층 빌라에 살았으니 ‘불이야’ 하고 크게 소리 지르면서 휴대폰을 가져가서 1층으로 탈출한 후 119에 신고할 계획까지 꼼꼼히 세운다. 춥긴 추운데 보일러는 켜야겠고 그 보일러의 소리와 불꽃이 무서워서 최대한 보일러로부터 먼 방에서 잠을 청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늘 2-3시간 예약으로만 해놔서 역시나 매우 싸늘한 방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보일러는 생각보다 안전했다. 그 집에서 사는 내내 다행히도(?) 터지지 않았다. 이렇게 늘 불안한 상태로 어떻게 살아왔던 걸까.
대학원을 다닐 때였다. 버스를 타고 친구라도 만나려 치면 아주 길고 높은 고가다리를 건넜어야 했다. 모두들 알다시피 서울 시내버스 기사님들은 아주 박력 있으시다. 출퇴근시간이 아닌 애매한 낮 시간에는 제법 속도를 내서 주행할 수 있다. 버스를 타게 되면 아주 정확하게 기사님이 핸들을 도로에 맞게 틀고 있는지, 졸고 있지는 않은지, 휴대폰을 보면서 딴짓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감시(?)를 하기 위해 맨 앞자리들을 자처한다. 출입구 쪽 자리가 기사님의 핸들이 잘 보이고, 기사님 바로 뒷자리는 기사님의 집중도를 파악할 수 있어서 좋다. 정면을 똑바로 응시하는지, 졸지는 않는지, 가끔씩 같은 회사 버스 동료분을 만나 하이파이브를 하는지 눈인사는 정확히 하는지 등등을 보면 기사님의 정신 명료도(?)를 파악할 수 있다.
부정적인 상상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예를 들면 오른쪽으로 핸들을 틀어야 하는데 잠깐 딴 곳을 보시는 바람에 핸들을 틀지 않아서 고가다리 아래로 떨어지는 상상. 떨어질 때는 어떤 느낌일까, 손잡이를 아주 꼭 붙잡고 있으면 조금이라도 부상을 덜 입을까. 아니면 앞자리라서 맨 아래로 곤두박질치느라고 이런 생각을 할 세도 없이 바로 즉사해서 차라리 다행일까. 혹은 머리만 다치거나 팔다리만 다쳐서 영구 장해를 입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다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정말 인간은 모두가 이렇게 늘 불안해하며 매사를 지내는 줄 알았다.
이미지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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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librewiki.net/wiki/%EB%B3%B4%EC%9D%BC%EB%9F%AC
+교통사고에서 피해를 입으신 분들께 큰 위로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