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담 선생님은 브라질리언 왁싱 선생님
아쉽게도 거의 대부분의 상담기관은 그 날 당일 방문은 어렵다. 미리 예약을 해놓아야 하고 시간과 요일도 내 마음대로 정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상담을 예약할때는 바로 저 마음이다. 지금 바로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분노나 우울 그리고 불안이 나를 다시 또 지배하게 될까봐 무서워졌다.
심리상담센터를 처음 방문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오륙년 전이었다. 좋은 상담 선생님을 만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친절하고 따뜻하다 싶으면 너무 내 이야기를 듣기만 하다 회기당 십만원도 넘는 한시간이 끝나버렸다. 처음이라 그러겠지 하고 5-6회기를 가도 몇 번의 질문 말고는 딱히 해결해주시는 건 없었다. 회기가 지날수록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나 시계만 보게 됐다. 불안증이 또 도질 것 같았다. 상담 시간이 끝날까봐 이야기를 재구성하는데 에너지가 너무 많이 쓰였다. 또 다른 선생님은 해결책을 시원시원하게 주는 선생님이어서 좋았다. 그러나 성추행을 당한 경험을 털어놓다가 왜 그자리에서 싫다고 하지 않았느냐, 강력한 거부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느냐면서 나를 나무랐다. 심지어 상담 전체를 나에게 억지로 동의를 얻어 녹음을 하는 바람에 점점 입을 닫게 되었다.
한편 해결책도 주시면서 적당히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는 선생님은 또 너무 "그정도면 괜찮은 남편 아닌가요?" "그 정도 안하는 사람도 많아요. 감사하는 마음도 가지세요." 하면서 나를 가르치려 들었다. 물론 가르침을 받고자 상담센터를 방문한 것은 맞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역시 몇 회기 가지 못하고 발걸음이 자연스레 끊겼다.
하지만 그렇게 여기저기서 진행한 상담은 조용하지만 꾸준히 도움이 되고 있었다. 먼저 가장 컸던 건 내 이야기를 가감없이 솔직하게 털어놓을 누군가가 늘 같은 자리에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위안이 됐다. 내가 돈을 지불했으니 일단은 이 사람은 무조건 내 이야기를 우호적으로 들어줄거란 근거있는 믿음은 내가 내 감정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정해진 시간동안에는 방해받지 않고 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것도 안정을 찾는데 의외로 도움이 됐다. 그리고 내가 힘들때 느껴지는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라는 조언도 유용했다. 화가 나면 화가 나는 그대로 나를 인정해주라고 하셨다. 그 감정을 그대로 관찰하라고 했다. 감정은 감정이니 흘러가면 또 다른 감정이 온다고 하셨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감정이 단어 하나로 응축되면서 감정의 근본적인 뿌리를 찾아가게 되었다.
여러 상담 선생님을 거치면서 단 한번도 울지 않은적은 없었다. 어떤 때는 어린 내가 측은해서 스스로에 대한 연민의 울음이었고 어떨 때는 내 마음을 몰라주는 사람이 야속한 마음에 흘리는 슬픔의 눈물이었다. 또 어느 날은 모진 말을 한 사람에 대해 화를 내지 못해 분해서 나오는 눈물이기도 했다. 울고 나온다고 해서 무조건 후련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거울에 비친 빨개진 내 눈과 잔뜩 부은 눈꺼풀을 보고 오늘도 내 인생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는 생각이 들어 기운이 빠졌다.
거주지를 계속적으로 옮기면서 가장 최근까지 상담했던 S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S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너무 듣기만 하지도, 그렇다고 나를 너무 가르치려 들지도 않았다. 선생님 본인의 생각을 적절하게 섞여서 얘기해주었다. 어떨 때는 내 편을 들기도 하고 어떤 때는 내가 했던 행동이 과했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이고 나서는 이런 말이 불쾌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꼭 필요한 질문을 해주셔서 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 생각에 대한 답을 다음 회기때 이야기하면 그것이 또 다음 상담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S선생님과 처음 만나서 했던 심리평가 결과는 참혹했을 것이다. 고소 사건도 있었고 자살사고도 있었고 약물치료도 필요하다고 해석했다. 특이했던 건 결과지를 나에게 직접 주지 않겠다고 꽤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만약 결과가 다른 기관에 넘기기 위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그 결과를 기관으로 직접 팩스로 보내줄수는 있지만 내가 직접 보는것은 권하지 않는다고 거듭 말씀하셨다. 약물치료를 권해야 하는 수준이기는 하지만 조금만 더 상담치료를 함께 해보자고 하셨다.
어느 날은 내가 경계선적 인격장애라는 의심을 잔뜩 하고 상담실을 찾았다. 유튜브는 물론이거니와 각종 블로그의 글들을 참고하여 거의 확신하고 갔다.
선생님, 저 경계선적 인격장애라서 결과 안 보여주신거죠? 이거 고쳐지긴 하는건가요? “
선생님은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다. 오히려 내가 기대했던 답변이었는데 그럼 나는 왜 이렇게 늘 힘드냐며 도리어 억울했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 답정너가 없을까 싶기도 하는데 그날도 선생님은 내가 경계선적 인격장애가 아닌 이유를 조목 조목 얘기했고 그래도 내가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자 dsm-4 가져와서 보여줄까요? 하고 장난스레 나를 설득했다.
상담을 꾸준히 가지는 않았다. 내가 필요하면 예약했다가 다시 또 취소하는 일도 잦았다. 분노와 불안을 다스리기 위해 상담을 예약했다가 엉뚱한 곳에서 분노발작이 터져 상담을 못가게 되는 일도 있었다. 그렇지만 점점 회기가 넘어가면서 나는 점점 선생님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브라질리언 왁싱.
어느 날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제 브라질리언 왁성 선생님과도 같아요. 제 모든 치부를 들으셨잖아요. 선생님을 만나면 마음이 시원해져요. 그리고 제가 배울점이 참 많아서 좋아요.
선생님은 내 모든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참 힘들었겠다고 여러 번 말씀해주셨다. 내가 힘들었던 마음이 엄살이 아니었던게 타인에 의해서도 인정이 된 것 같아서, 그리고 내가 나약한 인간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그 부분이 크게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아기도 키우고 죽지 못하니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행복하고 즐거워질 수 있을지 방법도 너무 다 잘 아는데 하기가 싫었다. 선생님은 하기 싫으면 억지로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도태되는 것 같아도 지금이 재충전할 시기라고 나를 칭찬했다. 이제까지 버틴 것도 대단하다고 인정해주었다.
아마도 나는 이런 인정과 칭찬이 정말 필요했다.
최근에 새로 이사 온 지역의 상담센터에 최근에 방문했다. (내가 가장 힘들 때)평가했던 결과지를 보시고 새로운 선생님은 너무 놀라셔서 한동안 말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수 분이 지난 후 내가 지겹도록 듣는 그 말을 또 하셨다.
"이제까지 정말 힘드셨겠어요....."
'아 이래서 나한테 그때 평가지를 보여주지 않으셨구나.....'
평가를 하고 공식적으로 1년 6개월이 지나 평가결과를 들었다. 예민하고 까칠한 성향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성향과도 연관지을 수 있다고 하셨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굉장히 다르지만 성향과 기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받아들이기로 한 업그레이드 된 버전의 새로운 내가 구버전의 나를 토닥였다.
이제까지 했던 상담의 결과가 차곡차곡 쌓여서 결국엔 불안장애를 딱히 파내지 않아도, 완벽하게 완쾌(?)되지 않아도 더불어 잘 살아갈 추진력을 받았다. 파내려고 노력하다 보면 결국 나를 부정하게 되었다. 나의 부정은 곧 부모님과 가족의 부정으로 이어갔다. 나에 대한 자학은 익숙했다. 하지만 부모님까지 부정하는건 굉장히 복잡하고 아픈 일이었다. 부모님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예민함이 잘 다듬어져 날카로움과 영민함으로 빛나고 있었다.
물려받은 예민함과 섬세함 덕분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읽고 공감도 잘 한다. 상대방이 많이 설명하지 않고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쉬이 마음이 읽힌다. 따라서 나는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는 것이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이것은 그 어떤 것보다 큰 장점이 될 수 있었다.
같은 자극이어도 받아들이는 농도와 사람이 다르면 결과값은 천차만별이 될 수 있는것이 대화와 소통의 맹점이었다. 같은 정보를 받아도 해석 촉수가 훨씬 두텁고 많아서 이해의 폭이 넓은 것이 내가 이제껏 여러사람을 성공적으로 상담해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사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의적인 해석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나의 긍정에너지를 끌어올리는 데 이 클리쉐가 지대한 공헌을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