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는 없다는 진부한 진리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by 청연


행복과 만족은 마음속에

스스로 만들어 낼 것.

도망친 곳에 파랑새는 없다.

내가 모두 만족할 곳은 아무 데도 없다.

회자되는 그 진부함이 결국은 진리임을.


원시 원초적인 삶에서 불과 도구 등 문명의 발견과 개발, 발전 그렇게 지금 인공지능의 시대까지 왔다.

산업화, 자본주의, 민주화, 복지국가 그렇게 현대 사회. 그 현대사회가 첨단기술과 함께 편리하고 세련되어 겉은 화려하고 고상한 듯하나,

그 속 본질은 이기적이고 비합리적인 위선이 있다.

그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 개체에 대한 말이다.


이기려 경쟁하고 넘어서고, 시기, 권모술수, 협잡, 앞뒤 다른 얼굴로 포장하며 강약약강,약육강식의 본질이 내재되어 있다.

자본주의와 맞물려 내가 살고 이익을 위해 인간성 좋은 사회생활을 한다.

겉의 바른 언행, 진정성 없는 칭찬, 올려치기

달달한 혀의 마법으로 감언이설 주고받기.


그 축소판을 공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정치판이다.

개그 코미디가 필요한가.

언론 방송에서 이제는 sns까지 합체해서 재미도 그런 재미가 없다. 씁쓸한 재미.

이면에 위선과 내로남불, 불공정, 비상식에 화를 억제하기 힘들기도 하다.


사실, 기득권을 유지하고 그들만의 세상을 정치와 법과 언론, 경제 모든 것을 스며들듯 장악하면서

먹고살기 바쁜 우매한 대중들을 사탕발림과 작은 이익으로 지배하려는 그들보다,

진실을 모르는 채 왜곡된 사실과 논리와 포퓰리즘에 그리고 언론의 말장난과 본질 또는 이해관계인의 침묵으로 세뇌되고,

그 또한 개인의 사익에 따라 소탐대실하는 팬덤적 지지가 있다.


그들의 지배와, 통치 논리와, 의도의 눈가림식 구조화에도

가치관과 개념 없이 민중의 포지션에서 옳고 그름을 인지하지 못하는

가장 잔인한 자에게 지배당할 준비를 갖춘 무지성 지지가 있다.


인간은 종교나 신념, 관습 그리고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법질서와 규범,

그로 인해

그 안에서

집단적, 시대적 세뇌또는 사회적 동물로서의 사회화로 이성적, 윤리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 본질에는 위선이 있다.


경건하고 청빈과 자비를 행할 종교,

법과 상식, 공정에 의해 정의로워야 할 정치 법조,

사실과 공정보도를 최우선의 가치로 해야 할 언론 방송사, 희생 봉사 장인정신의 히포크라테스의

의학 의료산업, 윤리적이고 모범이 되어야 할 교육,

청렴과 봉사 강직해야 할 공직, 선한 봉사정신과 옹호자로 투쟁의 선봉이어야 할 인권단체, 복지기관 등

보편적 대중적 목적과 소임이 있는 일반적 집단에서 그 본질과 논리를 벗어나는 행태들이 있다.


무형의 문화예술과 공연 등 자유로운 창의 창작을 모티브로 인간 내면과 비물질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곳에서도 그렇다.

그 안에서 본질과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무릇 범인간 세상이 다 그렇다.

다 각자의 생존논리에 따라 속고 속이기도, 서로 소비자와 생산자, 피해자와 가해자, 갑과 을, 을과 갑의 순환적·인과적 얽힌 관계로서,

톱니바퀴 돌아가듯 엉킨 실타래처럼 세상 속에 뒤섞여 주고받고 맞추고 틀어지고 생산하고 소비하고 그렇게 적응하며 살아간다.


인공지능이 대세인 현대세상, 그러나 그 안에서 정신과 의식이 피폐한 현대인간.

세상이 발전할수록 정신과적 환자가 넘쳐나는 세상.

개발과 발전이 그리도 좋은 걸까.

이기적이고 나약한 인간본성조차 이제 AI와 로봇이 운영하고 장악하는 세상에

서서히 잠식되어 가는 것인데,

그곳에서 부딪치고 적응하고 스스로 위로와 휴식을 찾아 해소하며 유연하게 살아가는 것일 뿐이다.


인간 세상이라는 것이 그렇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불완전한 존재이다.

강하거나 유연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도태되고 짓밟히고 제거당하기도 한다.

약육강식 아수라.


상층, 하층, 나이, 성별, 직업을 불문하고 어딜 가나 그 안에서 텃세와 서열이 존재하고, 물고 뜯기도 치열하게 경쟁하며 군림 또는 지배당하며 산다.

가족, 친구 가까울수록 터놓을수록 뒤로는 시기하고 돌려까고 상처를 주는 반전이 있다.


물론 관계 속에서 협력과 상호부조, 이익을 추구하는 조화와 친목도 있다.

봉사와 희생, 투철한 직업의식과 가치관으로 소임에 대한 소명으로 제자리를 충실하게 꿋꿋이 지켜내는 사람들도 있다.

담백하고 청렴한 이타적인 삶도 도덕적, 인격적 선인도 있기는 하다.

그런 한 면에,

그나마 세상 살 맛과 동지적 인류애를 느끼게 된다.

각박한 세상이라는 통념 아래.


그럼에도 본래의 성정의 인간이 합을 이루는 사회라는 곳에서 인간은 정신적, 신체적, 경제적 독립을 하고 스스로 독하게, 유연하게, 타협하며 살아내야 한다.

먹잇감이 되지 않으려면, 무시와 멸시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독립하고 힘을 키우고 거절과 저항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호구 인생이 된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된다.


인간과 현대세상에 치이고 상처받아 너덜해진 정신을 자연과 동물과 AI 챗봇에게 위로받고 치유하는 아이러니.

서로 상처 주고 울고, 때로는 위로받고 겪고 나아가는 나약한 인간 세상 드라마.


다 위로와 격려가 인정이 필요한 세상이다.

강하게 유연하게.

그것이 살길이다.


그 세상 속 한 부분으로서의 끄적임.

허공에라도 한마디 던지고 싶은 소견일 뿐이기는 하다.

언젠가 소통강사의 강의 중 한마디가 가슴을 머리를 쳤다.


"그래, 당신 여기까지 잘 왔다."


나와 당신 모두 여기까지 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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