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랍 속 장마를 꺼내고 회색빛 장맛비의 운치를 담으며
어김없이 여름 그리고 장마.
습하고 덥고 꿉꿉한 날이 며칠 가면
신기하게도 햇살 반짝 가을날 하늘처럼
맑고 청아한 하늘이 그 습도를 말려준다.
오늘 지금의 하늘처럼.
몹시 춥다가 간간이 따뜻하게 온기를 주는
겨울의 삼한사온처럼.
자연의 순리란 그런 것이다.
무섭도록 쏟아지는 집중호우도, 소나기도,
태풍의 끝도
음양의 그것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맑고 깨끗한 하늘과 밝고 따뜻한 햇살이
비 그 끝을 정리한다.
그저 맑다.
때마다 느끼는 그것이 마침 오늘의 날씨이다.
이러다 곧 어둑하고 습하게 비가 쏟아질지 모른다.
아니 곧 온다.
그런데, 막힌 숨을 뚫듯. 어쩌면 이리도 맑은지.
음습하던 습기를 따뜻하게 깨끗하게 말린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리가 너무도
경이롭다.
내가 가치롭게 생각하는 그 순리이다.
거스를 수 없는 거슬러서는 안 되는 순리.
인간사도 그렇다.
과거에 머무르는 것도, 미래를 거부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과한 발전은 결국 순리의 역습을 받는다.
지금 세상의 자연적, 사회적 폐해들이
그것의 결과이다.
발전을 계속한다는 것은 결국은 인간의 욕심이다.
욕심의 끝없는 진행이다.
양면은 늘 존재한다.
그것을 알고 두려워해야 한다.
물질문명의 부정적 단면에 대한 목소리들에
소소하게 가끔 호응하기도 하지만,
다시 자본주의에 열심히 목매달고 산다.
그러면서 경쟁에서 이기든 지든
몸과 마음의 피폐는,
자연과 여백을 찾고 위로받고 치유한다.
결국은 자연을, 순리를 거슬러 닳고 파이고,
다시 자연에서 숨통을 틔우고 치유하는 역설이다.
문득, 너무 맑고 청해서 올려다본 그 하늘에서
눈에 띄는 전기전선.
주위 곳곳 어디에나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그 전선과 고층 아파트와 맑은 하늘의,
우리가 지금 사는 세상의 콜라보.
자연과 인공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편리한 세상.
그러나 잠재된 순리의 역습이
순하게 진행하고 있을 거라는 걸 안다.
작년 7월의 서랍 속 장마가,
올해는 6월에 이미 시작되었다.
그렇게 순리의 시간은 흐른다.
오늘 지금 하늘은, 회색빛으로 꿉꿉한 습도를 품은 장대비를 내리고 있다.
그 와중에 간간이 햇살이 힘을 더 얻었는지
전등불처럼 잠시 밝히기도,
빗줄기가 잦아들기도 한다.
장마와 더위의 자리싸움.
그 틈새에 새소리는 정겹다.
그런 장마는 또 어떤 야릇한 운치가 있다.
그 회색빛 장대비와 꿉꿉한 습도의 감성에서 오는 여운과 잔상.
비가 내리면 또 빗줄기가 셀수록
어떤 흥분과 희열이 있다.
장맛비는 아날로그적 카타르시스가 있다.
짧든 길든,
추억과 기억의 소환이 있다.
올해도 장마는 어김없이 찾아왔고,
이르게 왔다는 숙연함이 함께 있다.
점점 더 빨라지는 더위와 또 이른 장마를 맞으며,
순리의 역습이 순리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은 확연해진다.
그럼에도,
장맛비가 주는 한 계절, 한때의
낭만적 카타르시스와 감성 그 본연의 힘을,
색을 발하기를 바란다.
순리가 그 길을 순리대로 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