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생태계 소회
일 년 전 브런치에 가입을 했다. 작가서랍에 글을 한 두 편 쓰다 말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새로운 것을 찾던 중 오랜 시간 묻혀 있던 글쓰기였다. 흩어진 나를 모아 다시 채워가는 여정의 한 부분이다.
공모전을 계기로 작가신청을 했다. 관심이 가는 주제였다. 평가와 승인을 받는다는 것과 이곳이 글쓰기 방향에 맞는지 생각이 들기도 했다. 300자 이내의 작가 소개와 집필 방향, 목차 제출이 작은 기획 시나리오처럼 여겨졌다. 전반적인 큰 틀에서 두루 쓸 소재와 주제에 대한 아우트라인 정도로 올렸다. 그리고 나를 다 드러내지 않으면서 최대한 글자 수 내에 압축 정제해서 소개하기.
그렇게 저녁에 신청하고 다음날 오전 10시, 작가승인 메시지를 받았다. 한 번에 빠른 승인이었고 합격통지서 같은 기분이었다. 소싯적 백일장마다 선생님 권유로 나가면서 줄곧 상을 타왔던 작은 이력은 있다. 디지털 세상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빠른 승인은 또 다른 의미이다. 그렇게 글을 한 두 편 발행하면서 브런치 환경에 적응하는 중이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결과를 내기 전에 선수 쳐서 얘기하고 떠드는 성정이 아니라서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동화를 써보라는 제의를 받았다. 그때는 일상에서 다른 것들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동화는 결이 좀 다른 면이 있기도 했다. 공모전이나 여타 것들에 관심조차 없었다. 사실 소일 삼아라도 할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브런치는 글 좀 쓴다는 글쟁이의 집합소라 했다. 연령부터 이력과 직업의 스펙트럼이 넓다. 작가 프로필로 들어가면 다양한 생각과 시선의 세상이 열린다. 그 소질과 경험, 가치관의 깊이 또한 저마다 다르다.
그런데, 순수한 글 창작보다 영업적 목적과 소통에 대한 것이 닿는다. 채워진 숫자에 진정한 공감은 얼마나 담겨있을까. 읽지 않은 공감. 적잖은 놀라움과 회의가 들었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는 그 정체성에.
돈을 좇으면 돈이 도망가는 이치. 기본이 탄탄하지 않은 구조와 모래성은 스쳐드는 파도에도 무너진다.
작가신청을 하기 전 수익 광고를 보며, 다른 상업적 블로그와 다를 게 뭔가 하는 생각. 작가신청을 유보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글을 한 두 편 올리고 전반적인 시스템과 활동 생태계를 겪으며 이런저런 생각으로 주춤했다.
온라인 매체는 필요시 이용만 할 뿐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어느 곳이든 이미 레드오션이고 블루오션은 계속 생성되고 있다. 스펙터클한 진보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일찌감치 진입해 선점하고 수익과 결과, 누적된 아카이브를 통해 궤도에 오른 이들도 있었다.
브런치는 작가라는 이름의 밀집도가 높다. 상업적 블로그와 다르게 문학적 글을 추구하는 곳이라 여겼다. 막상 들어와 보니 문학장르는 물론 다양한 분야와 주제로 관점과 경험, 형식에 따른 글이 있었다. 블로그에서 볼 법한 생활적 정보와 개인경험 에세이 등 총망라이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브런치의 모토이자 내세우는 슬로건이다. 브런치 작가 관문은 일반 공모전에 비하면 면접 수준이긴 하다. 작가라는 것이 스스로에겐 잘 써지지 않는다. 정식으로 등단을 한 것도 출간을 한 것도 아니라서 꼭 맞는 기분이 아니다. 더욱이 상업적 소통 환경이 그런 생각이 더 들게 한다.
브런치는 장터. 글과 작가가 넘쳐난다. 글쓰기와 작가의 문턱을 낮춰서, 누구나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개방성은 유의미하다. 그런데,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것이 뭘까, 희소성의 전제.
모두가 쉽게 작가가 된다면, 십 년도 되도록 등단을 준비하는 지망생들은 무엇일까. 작가가 되고 싶다는, 책을 내고 싶다는 열망 또한 생성이 될까. 물론 독립출판 등 의존 없이 개인이 출간작가가 되기도 하는 등 기회와 등용이 다양한 시대이다. 예술성과 문학적 가치로서의 작가와 공감과 실질의 필요성에 의한 에세이, 지식과 학습 자료적 글의 작가로 범위가 넓다. 광의와 협의의 개념으로 봐야 하는 건가.
지금은 블로그를 비롯 어디서나 자신의 공간을 만들고 글을 쓸 수 있다. 어떤 이야기든 상관없다. 닥치는 대로 쓰면 된다. 그러다 글이 쌓이고 시간이 흐르다 보면 매체나 기관 등에 픽되어 책을 출간하고 작가로 등극하기도 한다. 글뿐만 아니라 유튜브 등 누구나 방송을 켜고 PD와 진행자, 연예인이 되기도 한다. 어느 날 어떻게 소위 말하는 떡상을 하면 인지도 상승, 방송과 강연 그러다 출간작가가 되기도 한다. 글쓰기의 진입 장벽은 낮아지고 자기표현의 욕구는 늘어난 시대이다.
그런데, 책을 읽는 수요는 현저히 줄어드는데,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작가는 우후죽순 늘어가는 역설적인 현실이다. 수요와 공급의 불편한 역행. 그래서 작가라 내세워지지는 않는다. 플랫폼의 기획 아래 만들어진 수요자로서 글을 쓰는 작가. 작가 양성소의 의미와 함께 플랫폼 이용과 사용의 자격으로서의 작가.
브런치는 기본적으로 단순한 글쓰기 플랫폼이다. 플랫폼의 성장이 목표이고 그것은 양질의 콘텐츠 생산에서 비롯된다. 글을 쓰는 작가가 많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브런치는 작가라는 호칭을 부여하는 콘셉트로 글쓰기에 대한 동기를 독려하고 고무한다. 어쩌면 질보다는 시류를 타거나 자극적인 흥미위주의 삶 이야기로 양적 팽창의 의도로 보인다. 희소성의 가치로서의 작가가 아닌, 많은 작가를 생성함으로써 플랫폼을 활성화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무수히 만들어 낸다. 그렇게 독자를 유입하고 트래픽을 일으켜 플랫폼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독자가 플랫폼 밖보다 내부의 작가가 대부분이라는 것. 작가가 독자이다. 결과적으로 플랫폼과 내외부 독자 입장에서는 좋지만, 작가는 플랫폼의 이용자이고 수요자이며 품앗이 상부상조를 통한 트래픽의 양적 팽창의 기여자가 되는 셈이다.
덕분에 교류로 넓고 다양한 삶과 지식을 읽으며 간접경험을 하고 독서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정독하고, 공감이든 응원이든 감사표시든 그 라이킷의 버튼과 한 줄의 글이 실속일 경우이다. 확실한 것은 독자이자 작가의 무한한 생성이고, 그들만의 리그로서 브런치의 일등 기능이다.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의 괴리.
물론 그 안에서 여러 계기와 과정으로 책을 출간하는 작가가 될 수도 있다. 글을 쓰는 것으로 플랫폼에 아카이브를 축적하고, 포트폴리오로서 브랜딩 할 수도 있다. 사업장과 출판물의 마케팅 수단으로도 이용된다. 단순히 사적 기록공간으로 자유롭게 일기 쓰듯, 하소연하듯 감정을 풀어내 공감을 받고 위로받는 효과도 있을 수 있다.
공감과 트래픽이 일어나고 활성화되면, 에디터에 낙찰되어 홈에 오르기도 한다. 이후 인기상승, 구독상승 등의 패시브를 받으며 성장하고 출간까지도 이루어진다.
브런치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각도로 고민하며 시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만의 작가들이 공존하고 있는 이곳에 작가로 인증을 받고 들어와 글을 쓰고 있다. 발행 후에 일어나는 반응과 플랫폼을 구성하는 유저들의 브런치 내 생업 활동을 보고 겪고 생각한다.
허수로 만들어진 것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브런치는 장터이기도 숲이기도 하다. 숲에는 다양한 나무들이 있고 함께 자라며 생태계를 이룬다. 그 숲에서 진솔한 환경과 개념을 생각해 보는 소회이다.
대부분의 작가나 지망생들이 출간을 꿈꾸고 목표로 달린다. 그에 대한 생각이 그다지 없어서인지 모르겠다. 무엇이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에 생각을 둔다.
묵묵히 길을 가다 우연처럼 어느 날 세상의 이목과 만나는 것.
이곳이 진심과 열정과 글을 두어도 될 곳일지 계속 물음 속에 있다.
광복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