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구혜경의 일상에세이> #7
예전에 살던 동네에는 고양이가 많았다. 나는 스물한 살때 독립해서 9년 정도 혼자 살았다. 고양이가 많던 동네는 세 번째 자취방이 있던 곳이다. 살다 보면 동네의 생태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나는 고양이들을 살피길 좋아했다. 어떤 표정을 짓는지. 골목의 어떤 포인트를 좋아하는지. (대개는 볕이 잘 드는 곳에 있다) 나를 얼마나 경계하는지. 이곳의 대장 고양이는 누구인지. 나의 세 번째 동네는 고양이와 사람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테이블이 서너 개 놓인 소박한 가게들이 뜨문뜨문 놓인 거리. 그 가게들 앞에 깨끗이 관리된 사료 그릇, 물그릇이 때마다 나와 있곤 했다. 동네의 고양이는 피둥피둥했고 나를 적당히 경계했다. 내가 안녕, 하면 흘깃 눈길을 주고는 총총히 멀어지거나 입을 쩍 벌리고 하품했다. 이 적정한 거리가 좋았다. 그들의 골목 생활이 녹록할 리 있었겠느냐만 그래 봐야 등 따시고 배부르고 발 뻗을 곳 있는 인간일 뿐이라. 참 따뜻한 동네야, 했다.
그리고 어디에 소문이라도 난 건지 못 보던 고양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온몸이 흰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누가 봐도 이 골목에 있을 만한 고양이가 아니라서 눈에 띄었다. 구석에 웅크린 흰 고양이는 당혹스러운 눈을 하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알지 못하는 그런 눈. 나는 멈춰서서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일단 가던 길을 갔다. 그 뒤로 그 고양이를 몇 번 봤다. 비슷한 자리에서. 근처에 부동산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고양이를 챙겨주고 있었다. 흰 고양이는 볼 때마다 꼬질꼬질해졌다. 흰색 털은 회색에 가까워졌다. 어느 날은 누가 봐도 다른 고양이가 할퀸 것 같은 상처가 난 걸 봤다. 이 아이를 여기에 두었을 누군가를 생각했다. 이 아이를 굳이 여기까지 와서 두고 간 그 ㅅ... 아니, 그 누군가는 나름대로 동네를 고르고 고른 거겠지. 왜일까. 이 동네가 온정적이라서? 고양이들이 잘살고 있어서? 가게 사장님들이 좋은 분들이라?
흰 고양이는 골목에 적응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등 따시고 배부르고 발 뻗을 곳 있는 나는 몰랐지만, 골목의 생태는 생각보다 몹시 치열하다. 실제로 나는 고양이가 참새를 사냥하는 걸 이 동네에서 본 적이 있다. 처음엔 낙엽을 물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낙엽이 파닥거리길래 뭐지, 하고 자세히 보니 참새가 날개를 펼치고 안간힘 쓰고 있는 거였다. 이 얘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하자 대부분은 '길고양이가 새를 잡는다고? 신기하다.'라고 했다. 나도 직접 보지 않았다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흰 고양이는 동네에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다시 사람의 집으로 입양되었다. 돌보던 분들이 합심해서 한 일이다. 정말이지 좋은 분들이었다.
그 후로도 간혹 새로운 고양이들이 나타났다. 당혹스러운 눈을 하고. 나는 따뜻한 동네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요즘도 종종 그 동네를 지나간다. 지금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어 골목에 있던 건물 전체를 싹 밀고 대대적으로 아파트 단지를 건설 중이다. 신기한 게, 이 글을 쓰다 보니 아직도 가게를 운영하시던 사장님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 동네에서 많은 걸 배웠다.
ⓒ구혜경, 2022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