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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혜경 Apr 05. 2022

나는 내 다리가 짧다고 믿었다

<작가 구혜경의 일상에세이> #6

곧 출간되는 앤솔러지에 수록된 단편 '벽장'에는 자신을 가둬놓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갇힌 곳은 자신 혹은 타인의 인식일 수도, 트라우마일 수도, 그래야만 한다는 강박일 수도, 내가 이르게 규정해버린 나의 정체성일 수도, 물리적인 어떤 공간일 수도.


어느 정도 컸을 때부터 나는 다리가 짧다고 생각하며 자랐다. 그런 말을 좀 듣기도 했고, 바지를 사면 자연스럽게 수선해야 하는 현실이 가르쳐주기도 했고. 사실 이래저래 따질 필요 없이 그냥 맨눈으로 보면 느낌이 오고... 일단 나는 키부터 대한민국 여성 평균 이하다. 거기다 미취학 아동 시절 이후 한 번도 날씬한 체형이었던 적이 없고 상체에 비해 하체에 살집이 더 많은 체형이다. 통통한 다리는 그렇지 않은 다리에 비해 더 짧아 보이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다리가 짧다고 믿고 살았다. 의심의 여지 없이.


그리고 얼마 전 모 커뮤니티에서 우연히 '다리 길이 재는 법'이라는 글을 보았다. 인심이라는 용어를 여기서 처음 알았다. 사타구니 가장 안쪽부터 발바닥까지의 길이라고 한다. 신장 대비 평균 인심 길이와 이상적 인심 길이 표를 보고 흥미가 일어 옆에 놓인 줄자를 들고 일어섰다. 얼마나 짧나 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제대로 재는 방법을 몇 번 반복해 읽고 그대로 잰 뒤 표를 확인했는데, 어라. 평균을 살짝 웃돈다. 잘못 잰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시 쟀다. 역시 평균을 조금 넘는 수치였다. 발바닥이 좀 떠서 그런가 싶어 줄자를 더 야무지게 밟았다. 똑같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아니, 나는 삼십 년 넘게 짧은 다리였는데. 그래서 괜히 허리를 접어 앉다가 등이 굽고 그랬는데.


생각해보니 최근 들어 산 바지들은 하나도 수선한 적이 없다. 키 150대 소비자를 위해 나온 바지를 구매하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좋은 세상이다.


샤워하면서 내 다리를 봤다. 알고 나서 다시 봐도 그다지 길지 않다. 음, 아무래도 절대적인 길이를 극복할 순 없으니까. 평균을 살짝 넘었을 뿐 이상적인 길이에는 닿지 못했으니까.


예전에 종아리로만 키가 5cm 더 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일을 떠올렸다. 내 다리를 보고 아무렇지 않게 짧다고 평가했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나는 왜 그 일을 아직 기억하고 있을지 생각했다. 바디워시 칠을 하면서 덤덤하게.


끝판에 가서는 '벽장'의 출간을 알리면서 가볍게 쓰기 좋은 일상 글이다,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배점 3점짜리 주제 독해 문제의 지문 같다. 주제는 '2022년 4월 <AnA> 전격 출간! 많이 읽어주세요.'입니다.)


ⓒ구혜경, 2022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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