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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Sep 29. 2024

나도 자연인이 되어볼까?

자연인이 산으로 가는 이유

‘도대체 이렇게 깊은 산골까지

뭐하러 들어와서 사는 걸까?’


그런 사람들을 찾아야 하는 게 나의 직업이면서도 프로그램을 하던 초창기에는 자주 이런 생각을 했었다.


천고지나 되는 가파른 산길을 갈 때나 혹은 험한 오지로 답사를 갈 때면 나도 모르게 짜증스러운 한숨이 새어 나왔다. 눈앞에서 뱀이 지나가는 걸 목격하고, 한 발이라도 헛디뎠다간 깊은 호수로 빠질 거 같은 외길을 기다시피 걸을 때면 의문은 신경질로까지 번지기도 했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맡은 지 6년이 지난 지금, 이제 그런 의문과 못마땅한 마음은 사라졌다.


첫 번째 이유는 병원에서 포기한 병을 안고 ‘마지막 희망으로’ 산을 찾은 자연인들이 어떻게 생존하는지를 실제로 목격하면서였다.


3개월밖에 살지 못한다는 폐암 환자가 산에서 7년을 살기도 했고, 직장암 말기의 환자가 장루 주머니를 차고 산을 찾았다가 건강하게 사는 경우도 봤다. 병원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어지럼증, 실명 위기의 대상포진, 위 천공, 초기 암 등 수 많은 통증들로 일상생활이 어려웠던 이들이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의 신비(?)로 일상을 회복하는 경우를 셀 수 없이 봐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서 두 번째 이유를 납득하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다.


몸에 병이 있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당 부분 외부와 단절된 채 홀로 산에 살기를 선택한 이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자연이 좋아서, 산이 좋아서’라는 말로 포장은 했지만, 사회 부적응자, 왕따, 혹은 그들 스스로 말하는 ‘또라이(?)’같은 느낌이 들 때도 왕왕 있었다.      




20대에 산에 들어와 거의 30년을 산에서 지낸 총각 자연인을 주인공으로 방송을 만들 때였다. 한창 일할 나이에, 법을 공부하러 들어왔다가 철학적인 사유에 빠져 평생을 산에 눌러앉았다는 자연인, 나는 그를 포장해야 할 마땅한 아이디어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나뭇가지에 못을 박아 아궁이 위에 걸어둔 자연 친화적인 옷걸이, 수 십년을 일일이 손으로 쌓았다는 투박한 돌담들, 날짜 가는 걸 호두알로 샌다며 그릇 두 개를 놓고 호두를 옮기고 있는 모양, 겨우내 계곡물이 얼면 빨래를 할 수 없어 모았다는 수 십켤레의 양말들, 자주 넘어지는 곳에 커피믹스 봉지를 묶어 표시해둔 줄들...


30년 산생활이 오롯이 묻어나오는 정취가 모두 정겹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무려 30년을, 그 아까운 청춘을 이 산골에서 보낸 그의 마음을 나는 도무지 공감하지 못했다.


느리고 수줍어하며 수더분한 모습이 담긴 촬영 파일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면서도 도무지 구성 아이디어가 떠오르질 않아 나는 난감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아예 넘겨버렸던 인터뷰 하나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나무가 땅의 물을 빨아들이면 내가 숨을 쉬는 거

같아,

나도 숨 쉬고 나무도 숨 쉬고 그런 나무를 보고 있으면 든든해.

그냥 같이 있는 거지. 저는 나보고 나는 저보고 같이 사는 거야.

서로 말을 안해도 서로 지켜보고 있는 거, 그게 좋은 거지.

언젠가 내가 서울 영등포에 갈 일이 있었는데 내가 거지인 줄 알고 주민등록번호를 묻더라고.

노숙자 사기 뭐 그런 거였나 봐...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보더라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실제로 그가 노숙자처럼 보인다는 걸 반증하는 인터뷰가 될 거 같아 넘겨버린 내용이었다.

하지만 다시 찬찬히 듣고 있자니 어쩐지 이 말이 계속 곱씹어졌다.

‘그냥 나는 난데...’ 라며 멋쩍게 웃어 보이는 모습도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반복해서 볼수록 마음을 멈추게 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런 마음으로 다시 촬영된 내용들을 찬찬히 보고 있자니 느리고 답답하다고 넘긴 인터뷰마다 자연의 품을 느끼는 마음에는 진심이 묻어있었다.

그리고 차츰 방향도 잡혀 갔다. 결국 그 편은, 자연인의 진심 그대로 ‘정말로 산이 좋았던 순수 총각’ 컨셉으로 방송을 했다.       


사실, 답사를 다니다 보면 자연인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산은 말이 없어 좋다는 것이었다’. 세월을 거듭해도 그저 묵묵히 그들 옆에 있어 준다는 것. 뿐만 아니라 매해 값없이 자연의 소산물까지 내어준다는 것이다. 비록 산이 주는 위로에 대해 그럴싸한 말로 표현하진 못하더라도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산을 예찬했고, 그 품이 얼마나 한결같은지, 든든한 것인지 온몸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다만 내가 듣지 못했을 뿐.      


이제야 그들이 말하는 ‘묵묵한 산’에 대해 동경할 수 있게 된 나는 온전히 그들과 같은 편이 되어 종종 그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관계 속에서 위로라는 이름으로

건네는 말들 중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벗어나는

말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라는...

물론 상대의 진심까지 매도하자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작정하고 대화의 내용을 보면

그저 들어주기만 하는 대화는 몇 마디 되지 않는다는 걸 금세 알게 된다.

너나 할 것 없이 쉽게 건네는 어줍잖은 위로가

충조평판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누구도 상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어떤 조언도 어떤 판단도 미뤄둔 채

그냥 들어 줄 수는 없는건가?

그래서인지 때로는 상대의 위로가 길어질수록

이 힘듦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라는 외로움 속에

더욱 갇히게 되고,

그 위로는 공허해지기 일쑤인 순간을 자주 만난다.     


자연인들이 계절마다 피는 꽃에, 열매에, 나물 한 줌에, 나무가 주는 그늘에, 매일 뜨고 지는 해에 그토록 위로를 얻는 건, 그래서 그 산에 더욱 의지하고 사는 건, 판단하지 않고, 조언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 들어줄 누군가가, 그런 순간들이 간절히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너무 오랜 세월 그런 시간이 필요했던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자연인들을 만나는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분명해졌다.

그리고 그 산의 침묵 앞에 서면 나 역시

자주 입이 다물어지게 됐다.    

  

‘뭐하러 이렇게 깊은 산에 들어와서 살고 난리야’ 라던 몇 년 전 나의 마음은 그렇게 점점 변하더니 묵묵한 위로가 절실한 요즘, ‘나도 자연인이 되어볼까’라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었다.


종종 우리 팀 작가 넷이서 누가 먼저, 서로의 아이템이 되어줄지 앞다투어 내기를 하고 있는 걸 보자면 그런 마음은 비단 나만 느끼는 건 아니었나 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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