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비수기의 울란바토르여행
아무리 푹신한 침대여도, 안락한 방이어도 잠은 쉽게 오지 않는다. 밤새 뒤척였다. 언제부턴가 낯선 곳에선 잠을 쉽게 자지 못한다. 잠자리를 가리게 된 거 같다. 알람을 아침 7시에 맞춰 놨지만 듣지 못했다.
10시. 눈 뜨니 배가 고프다. 내 식욕은 장소를 가리지 않나 보다. 휴대폰도 배가 고픈가 보다. 일정에도 없던 충전기를 구입해야 한다. 마침 숙소 근처에 E마트가 있었다. 몽골에 E마트라. 거긴 충전기가 있지 않을까?
휴대폰 날씨 앱에서 눈이 올 거라고 알려준다. 구름 색은 회색이다. 바람이 차갑다. 기온은 2도였다. 왜 비수기인지 체감이 된다. 몽골 낮의 첫 느낌은 불안이다.
10여 분을 걸어 E마트에 왔지만 고용량 차저가 없다. 물티슈와 얼굴에 찍어 바를 니베아를 샀다. 이 차가운 날씨. 내 피부는 소중하니깐. 푸드코트 키오스크에서 영어로 치킨이라고 적힌 메뉴를 주문했다. 내가 두 번째인 거 같다. 내 아침이 만들어지는 걸 지켜봤다. 아. 웍질은 저렇게 하는 게 아닌데. 괜히 참견이 마렵다. 이래 봬도 전직 셰프다. 그리고 꼰대인 거 같기도 하다. 음식이 나오고 나서야 내가 주문한 게 치킨과 야채를 버무린 덮밥인 걸 알았다. 그리고 너무 달다.
마트에서 시간을 너무 허비했다. 전자제품 파는 곳만 가면 되는 것을 또 괜히 마트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계획이 없다. 아마 국영 백화점에는 있을 것이다. 그래 어차피 환전 때문에 백화점 가야 한다는 정신 승리.
구글맵에는 이마트에서 국영 백화점까지 2.5Km. 걸어서 30분, 버스로 30분. 이게 무슨 개소린가 싶었다. 그럼 누가 돈 들여서 버스를 타고 갈까 했다. 10여 분 걷다가 생각을 바꿨다. 추웠다.
버스비는 편도 1000 투그릭. 400원이 좀 넘는다. 30분 걸리는 이유는 트래픽이 장난 아니다. 버스에 앉아 창밖을 보니 이건 또 여기가 몽골인지 한국인지 모르겠다. 사람들 생김새도 비슷하고 낯익은 한국 브랜드들이 눈에 들어온다. 유럽 여행에서 느꼈던 이질감이 없다. 버스 타고 다이소로 가는 기분이다.
백화점 내부는 겉모습보다 화려했다. 여느 백화점과 마찬가지로 층마다 구분되어 있었다. 5층엔 삼성과 엘지가 보였다. 5층 제일 구석진 곳에서 환전을 했다. 그리고 고용량 차저를 구입했다. 4만 원. 이 돈이면 공항까지 가는 편도 택시비다. 한국으로 갈 때는 버스 타고 가야겠다.
밥 먹고 환전하고 휴대폰 충전기 하나 샀는데 시간은 벌써 오후 3시가 되어간다. 이제 달란자드가드로 가는 버스 티켓을 발권하러 가야 한다. 국영 백화점에서 6.6Km 도보 1시간. 버스로 45분 거리라고 찍힌다.
국영 백화점 앞 도로가 울란바토르의 메인 도로인 거 같다. 맵에서는 군데군데 빨간 선으로 트래픽 상황을 대신 보여주고 있다. 택시라면 우회할 수도 있는 거 같지만 버스는 직진이다. 다행인 건 드래곤 버스 터미널이 시외에 있다는 것이다. 울란바토르의 그 복잡한 곳을 벗어나자 버스는 빠르게 달렸다.
여기도 뜬금없이 E마트가 있었다. 아. 정말 아침에 바로 티켓을 발권하러 왔다면 여기서 밥을 먹고 가는 길에 백화점에서 충전기를 샀으면.. 이래서 여행 계획이 중요한가 보다. 그래서 정신 승리가 중요한가 보다.
구글 번역기로 돌려서 10월 15일 아침 8시 달란자드가드로 출발하는 티켓과 앞자리 좌석으로 발권했다. 18,000원. 8시간 약 600Km 거리를 가는 금액치곤 너무 저렴하다. 하긴 400원이라는 버스비가 물가를 대변해 준다. 마지막으로 버스 탑승하는 곳을 확인하고 나자, 숙제를 다 한 거 같은 기분이 든다. 사람에게 이런 순간이 온다면 배가 고파진다.
날이 저물어간다. 길거리에 사람들이 부쩍 많이 보인다. 터미널 건너편 정류장에도 사람들이 제법 많이 서 있다. 퇴근 시간인가? 숙소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생김새도 옷차림도 비슷한 사람 틈에 있으니 혼자라도 왠지 모를 편안함이 든다. 휴대폰을 집어넣고 그 사람들 속에 섞인다. 집으로 향하는 몽골 사람들처럼 멍하니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