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에 애착 시스템이 있다

애착 시스템, 그 리모컨에 대한 이야기

by 쌈마이작가

애착 시스템은 천장 군데군데 박아 놓는 화재경보 시스템과 같다. 경보 오작동 시 관리실에서 제어나 통제를 할 수도 있다. 또한 애착 시스템은 발표 주제에 맞춰 슬라이드 한 장 한 장에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지 미리 디자인해 놓은 PPT 파일과 같다. 우리는 리모컨을 쥐고 슬라이드를 뒤로 넘길 수도, 앞으로 되돌릴 수도 있다.


방금 위 문단에 고개를 끄덕였다면, 당신은 아직 외우지 않은 거다.

애착 시스템은 제어나 통제가 불가능하다. 며느리도 모른다고 했다. 애착은 무의식에 박혀 시스템화되어 있어서 제어나 통제가 불가능하다.

이런 애착 시스템을 존 볼비(John Bowlby)는 아예 경보 시스템(Alarm System)이라고 불렀다.


건물에 불이 나면 시끄러운 화재 경보가 울린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존의 문제 앞에서 인간의 이성은 마비된다.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불이 났을 때 자세를 낮추고, 젖은 수건으로 코를 막고, 비상구를 찾는 대피 요령을 익힌다. 이런 것을 학습이라고 한다. 지진 대피 요령도, 수영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생존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하는 학습이다.


뇌는 이 학습된 대피 요령을 무의식 깊은 곳에 '화재 시 생존 PPT 파일'로 만들어 슬라이드에 말과 행동을 적어 둔다. 평소에는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진짜 화재경보가 울리는 순간 뇌에서도 생존 경보가 울린다. 무의식은 화재 발생 시 생존 PPT 파일을 강제로 실행시킨다. 슬라이드에는 학습한 말과 행동이 적혀있다. 우린 그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생존 본능이 이성을 지배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슬라이드에는 '나를 희생해서라도 타인을 생존시켜라'라고 적혀 있는 사람이 있다. 반대로 '타인의 생존보다 내 생존이 우선이다'라고 적혀 있는 사람도 있다. 죄책감도 없다. 내 생존을 당연시한다. 우리는 슬라이드에 적힌 생존 매뉴얼대로만 움직이게 된다.



애착 시스템도 정확히 똑같다. 사람들과의 갈등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전조 증상이 발생하면 뇌에서는 미친 듯이 비상경보가 울린다. 이별은 원초적 생존이 달린 문제로 뇌가 인식하기 때문이다. 무의식은 애착 시스템의 생존 PPT 슬라이드를 띄운다. 이성이 마비된다. 이 슬라이드에는 사람들에게 치이며 배운 상처, 과거의 연애와 이별, 심지어 글과 영상으로 학습한 것들이 적혀있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의 인간관계와 연애는 이미 뇌에 설계되어 박혀있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사람마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 연인과 헤어지지 않기 위해, 불안과 공포를 다루기 위해 튀어나오는 말과 행동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화재 대피 요령처럼 단체로 학습하지 않아서 사람마다 다르다. 폭력적일 수도 있다. 집착할 수도 있다. 회피할 수도 있다.


끔찍한 건 이런 행동과 말을 제어나 통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뇌 속에서 울리는 경보 소리를 줄이거나, 강제 재생되는 애착 시스템 생존 PPT 슬라이드에 적힌 말과 행동을 제어할 수 있는 '리모컨'이 아예 없다는 뜻이다.


애착 이론은 존재하지도 않은 이 리모컨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제어나 통제할 수 없는 이 애착 시스템은 어디서 어떻게 설계되어 우리의 뇌 속 무의식에 박히게 된 걸까. 애착 이론의 창시자 존 볼비는 유아기 때 주 양육자인 주로 어머니와 겪은 경험으로 학습하게 된다고 한다. 이 개념을 존 볼비는 '내부 작동 모델(Internal Working Models)'이라고 정의했다. 우리는 이 내부 작동 모델을 바탕으로 인간관계와 이별 그리고 상실에 대해서 어떻게 말과 행동하게 되는지 무의식이 제멋대로 학습하게 된다.


이 내부 작동 모델의 반응 패턴에 따라 현대 심리학에서 애착은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된다. 바로 안정형, 불안형, 거부 회피형, 공포 회피형이다. 불안형을 몰입형이라고 하고, 공포 회피형을 혼란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네 가지의 패턴은 주 양육자와의 경험뿐만 아니라 성인이 된 이후의 개인의 환경과 경험에 따라 변화하거나 고착화되기도 한다. 나도 모르게 다시 학습되는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이 자기를 구하러 온 사람의 머리를 짓누르는 걸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듯, 이별과 상실의 공포 앞에서는 상대방의 미친 짓을 이해할 수 없다. 그 상대방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남는 건 "왜 이 사람이 내게 이럴까", "저 사람은 왜 저러지"라는 원망 섞인 물음뿐이다.

그 원망 때문에 시간, 감정, 돈, 즉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에너지를 엉뚱한 곳에 소비한다.


이제 타인에게 향하던 에너지를 다시 나에게로 돌려야 한다. 그 시작은 리모컨을 내가 쥐고 있다고 믿는 일이다. 내 감정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 변화는 출발한다.


그 첫걸음은 영화 <데몰리션>의 데이비스처럼 모든 것을 분해하는 일이다. 내 애착 시스템에 적힌 슬라이드를 글로써 분해하고, 자기 객관화를 시작할 때 비로소 삶의 에너지를 온전히 자신에게 돌려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애착 이론의 핵심이자,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인 '획득된 안정형'으로 가는 길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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