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형, 불안형, 거부 회피형, 공포 회피형
애착을 한자어 그대로 해석한다면 사랑할 애(愛)와 붙을/집착할 착(着)을 써서, 대상을 몹시 사랑하여 마음이 쏠리고 매달려 떨어지지 않는 마음을 의미한다. 그럼 반대말은 뭘까?
분리(分離)라고 할 수 있다. 서로 나뉘어 떨어진다는 의미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그 유명한 '분리불안(Separation Anxiety)'의 어원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애착 대상과 분리가 현실로 닥칠 때 뇌에서 비상경보가 울리고 이성이 마비된다. 분리에서 오는 불안은 곧 생존에 대한 공포로 뇌가 인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애착 시스템 생존 PPT 슬라이드에 적힌 그대로 말하고 행동하게 된다. 애착 이론에서는 이걸 '애착 시스템 활성화'라고 부른다. 외워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에게 이 활성화된 애착 시스템을 제어하거나 통제할 리모컨이 없다. 우리는 슬라이드에 적혀 있는 말과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한다. 그리고 시스템을 제어하기 위해서 리모컨을 찾아야 한다. 왜냐고? 예를 들어 화재 경보가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하루 종일 울린다고 생각해 보자. 일상생활을 할 수없다.
마찬가지로 분리는 비상경보 시스템이라고 했다. 이별이 닥치면 입맛도 없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 직장 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상이 무너지는 것이다. 그래서 애착 시스템을 제어할 리모컨을 찾게 되는 것이다. 물론 존재하지는 않지만.
애착 이론에서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존재하지 않는 리모컨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4가지 패턴으로 분류했다.
안정형 : 리모컨을 내가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리모컨을 내가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경보 소리를 점점 줄인다. 일상으로 빠르게 돌아갈 수 있다.
4화에서 말한 낯선방 실험에서 아기가 엄마 품에서 안정을 찾은 뒤, 미련 없이 내려와 다시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일상에 에너지를 쏟는 것이다.
불안형 : 상대가 리모컨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리모컨을 네가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너를 찾아간다. 너에게 매달린다. 너와 다시 연결되면 경보 소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분리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아기가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이유는 품에서만 비상경보가 울리지 않아서이다.
거부 회피형 : 나만 리모컨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내가 가진 리모컨으로 내 감정을 아예 꺼버린 척한다. 그래서 너 없어도 잘 사는 척, 사실 너 별로 안 좋아했던 척하며 스스로를 속인다. 상대가 울며불며 매달려도 철저하게 무시한다.
아기가 엄마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이유다. 하지만 겉으로만 감정을 꺼버린 척하는 것이다. 내면의 감정은 시끄럽게 요동치고 있다. 아기의 뇌파와 심박수로 증명된 사실이다.
공포 회피형 : 리모컨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네가 리모컨으로 내 감정을 제어할 수 있다고 믿는다.
리모컨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하지만 네가 그 리모컨으로 내 감정을 통제할까 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리모컨을 쥔 상대가 다가오면 상처받을까 봐 무서워서 밀어낸다(회피). 막상 상대가 지쳐서 멀어지면 버림받을까 봐 미친 듯이 매달린다(불안). 그러다 상대가 다시 마음을 열면 또 무서워서 도망친다(회피).
아기는 엄마에게 다가가지도, 그렇다고 투명 인간 취급하지도 못한 채 얼어붙어 버린다. 자신이 무슨 감정인지도 모른다. 그저 거대한 공포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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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펼쳐 놓고 보면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내가 만났던 그 사람이 왜 그렇게 숨 막히게 집착했는지, 왜 그렇게 재수 없게 선을 그었는지, 왜 그렇게 나를 헷갈리게 했는지 말이다.
결국 분리의 공포 앞에서 '내 감정을 제어할 리모컨을 누가 쥐고 있다고 믿는가'가 이미 우리 뇌 속에 시스템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럼 단지 이 리모컨의 주도권만으로 4가지 유형을 나누었을까? 아니다.
애착 이론의 창시자 존 볼비(John Bowlby)는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 시스템의 뼈대를 '내적 작동 모델(Internal Working Models)'이라고 정의했다.
이후 여러 심리학자가 이를 체계화했고, 현대에 와서는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가', '타인은 믿을 만한가'라는 무의식의 대답을 바탕으로 지금의 4가지 유형을 분류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철저하게 이 무의식의 애착 시스템 안에서 움직인다. 그래서 분리의 불안과 공포에 각자는 자신의 말과 행동이 너무나 당연하고 정당하다고 믿는다. 반대로 상대방의 생존 방식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서로가 서로를 보며 똑같이 이상한 놈 취급을 하다가, 결국 우린 안 맞아 라는 아주 쉬운 결론을 내려버린다.
그렇다면 한 번 활성화된 애착 시스템은 어떻게 되는 걸까?
말했다시피 우리에겐 제어나 통제할 수 있는 리모컨이 없다. 그래서 이 시스템은 뇌 속에 켜진 채로 방치된다. 마치 언제 찍었는지도 모를 옛날 사진들이 휴대폰 메모리 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비상경보 소리 자체는 자의든 타의든, 아니면 억지로라도 줄어들 수 있다. 우리는 꾸역꾸역 일상으로 돌아간다. 흔히 말하는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경보음만 잦아들었을 뿐, 그때 슬라이드에 불안과 공포를 달래는 생존 방식은 평생 무의식에서 지워지지 않는 영구 데이터로 뇌 깊은 곳에 박혀버린다.
그 강력한 증거가 바로 첫사랑이 잊히지 않는 이유다.
첫사랑과 겪었던 분리의 거대한 공포는 무의식에 낙인처럼 깊게 박힌다. 그리고 어떤 장소, 어떤 음식, 어떤 노랫말을 마주하는 순간,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그 사진처럼 불쑥 튀어나온다. 평소 생각지도 않았던 기억들에 "그때 그랬었지"라고 할 수도 있다. 또한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하기까지 한다.
우린 그걸 빛바랜 추억이라고 아련하게 포장할 뿐이다.
단지 무의식 속에 활성화되어 방치되어 있어서 그런 것뿐이다.
비단 첫사랑뿐이겠는가. 사람과의 지독한 갈등과 강렬했던 이별의 경험들은, 앞으로 만날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가 조금만 흔들려도 무의식에서 강제 소환되어 우리의 말과 행동을 지배해 버린다. 이런 것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튀어나오기도 한다. 우리의 무의식은 제멋대로 상처를 학습하고, 변형하고, 고착화시켜 뇌 가장 깊은 곳에 박아버리는 것이다.
이것 역시 제어나 통제하지 못한다. 본능이기 때문이다.
애착 유형은 마트에서 진열된 물건 고르듯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무 자르듯 완벽하게 나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인간관계에 따라 안정형에 불안이 섞일 수도, 회피가 튀어나올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내 애착 시스템이 고장 났다고 해서 내가 이상한 사람이나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애착 유형은 각자 자신의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발버둥 쳤던 비명이자 처절한 몸부림의 결과인 것이다. 자신만의 생존 방식인 것이다.
그러니 뇌 속에 박힌 내 애착 시스템을 너무 미워하지 말자. 나를 너무 미워하지는 말자. 내가 생존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켜지는 시스템일 뿐이다. 어찌 보면 그 시스템 덕분에 그 힘든 시간을 버티고 지금까지 살아왔다.
지금까지 의식하지 못했다. 몰랐을 뿐이다. 모르는 것에 화를 내면 안 된다.
내 애착 시스템은 아홉 살에서 성장을 멈춰버렸다.
그래서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생존 방식을 구구단처럼 외우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