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착이론 니 생각 아니냐고?

우리 모두는 낯선 방에 있는 아이였다.

by 쌈마이작가

애착 이론을 접하고 나서 추모공원에 갔다. 지난 2년 동안 몇 번 오지도 않았던 곳이다. 어머니가 어디에 계시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전산 기계에 어머니 이름 석 자를 눌렀다. 가로세로의 크기가 한 뼘이 조금 넘는 공간 속에 어머니가 있었다. 유리 칸막이에 붙은 사진 속에서 어머니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내 방에도 어머니가 웃는 모습이 액자안에 있었다. 지난 2년간 아무 감정 없이 액자 속 어머니를 봤었다. 며칠 동안 눈이 마주치면 눈물이 났다. 혼자서 컥컥거렸다. 무려 2년이 지나서 나는 어머니 장례를 치렀다. 어머니의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 묘했다. 마음이 묘하게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시큰둥하게 넘기던 유튜브 쇼츠를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누군가와 통화할 때 농담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2년 동안 나를 짓누르던 그 이질적인 감정이 사라진 게 신기했다.


이제 액자 속에 있는 어머니를 보면 가끔 전화기 너머로 쏘아붙이던 잔소리가 떠올랐다.

"술 좀 엥가이 무라." "밥 잘 챙겨 묵고 댕기라."

이젠 술을 조금 멀리한다. 이제 가끔은 뭐라도 만들어 먹는다. 전직 셰프였다. 칼질이 서툴렀다.


원래 내가 이랬던가? 지난 2년 동안의 그 좀비가 내 진짜 모습 아니었을까? 시간이 약이 된 건 아닐까? 아니면 내가 억지로 애착 이론에 나를 끼워 맞추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형이네, 회피형이네 흔히 술자리에서 말하는 단순한 주장 같은 건 아닐까. '단순한 이론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상대성 이론은 아인슈타인 니 생각일까. 아니다. 상대성 이론은 하나의 단순한 문장이나 규칙이 아니다. 우주의 시간, 공간, 빛, 중력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보여주는 방대한 설명서다. 이론 안에 규칙과 법칙이 들어가 있다.


애착 이론은 수천 명의 영유아와 성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과 관찰 결과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특정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불안을 느끼고, 매달리거나 도망치는지 반복적으로 확인된 방대한 데이터를 구조화한 결과이고 단순한 감정이 아닌 생존 본능에 대한 분석이다. 진화생물학적이고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규명한 것이라고 한다. 심리학의 거대한 뿌리라고 한다.


그 증거가 바로 심리학에서도 유명한 <낯선 방 실험(Strange Situation)>이다. 애착 이론의 창시자 존 볼비와 메리 에인스워스는 생후 12~18개월 된 아기들을 낯선 방에 엄마와 같이 넣고 관찰했다. 잠시 후 엄마가 나가고, 낯선 사람이 들어오고, 다시 엄마가 돌아왔을 때 아기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본 것이다.

내가 조카를 돌보며 겪었던 경험을 낯선 사람의 입장에 대입해 보겠다.


첫 번째 아기

엄마가 방을 나갔다. 아기는 울기 시작한다. 내가 장난감을 흔들고 안아줘도 눈물이 뚝뚝 흐르고 콧물이 주르륵 흐른다. (나도 우는 조카를 안고 형수한테 들고뛴 적이 있다. 내겐 답이 없었다.)

엄마가 다시 들어왔다. 아기는 엄마를 반기며 품에 쏙 안긴다. 울음도 눈물도 금세 그치고 안정을 찾는다. 그러고는 엄마 품에서 내려와 다시 장난감을 가지고 나랑 논다. 안정형이다.


두 번째 아기

엄마가 나가자 아기가 운다. 울음소리가 갈수록 커진다. 얼마나 서러우면 저렇게 울까 싶어 안절부절못하며 달래 보지만 소용없다.

엄마가 돌아왔다. 아기가 엄마 품에 안긴다. 그런데 아기의 반응이 이상하다. 울면서 작은 손으로 엄마 가슴팍을 때린다. 밀어내기도 한다. 울음이 좀처럼 그치지 않는다. 서서히 안정을 찾긴 하지만, 엄마가 바닥에 내려놓으려 하면 장난감을 버리고 다시 악착같이 매달린다. 불안형이다.


세 번째 아기

엄마가 나갔는데, 아기는 우는 것도 아니고 안 우는 것도 아니다. 그냥 무덤덤하게 혼자 장난감만 만지작거린다.

"아이고, 엄마도 안 찾고 순하네"라며 장난감을 흔들며 꼬셔보려 해도 본체만체한다.

엄마가 다시 들어왔다. 아기는 엄마를 투명 인간 취급한다. 고개를 돌려버리거나 시선을 피한다. 엄마가 있든 없든 상관없다는 듯이 행동한다. 내가 흔드는 장난감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겉으로 침착해 보이는 이 아기들의 심장 박동과 뇌 호르몬 수치를 기계로 재보면, 울고불고 난리 난 아이들보다 스트레스 수치가 훨씬 높게 나온다고 한다. 어차피 울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해서 살기 위해 감정의 스위치를 끄고 억지로 참는 것이다. 회피형이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불안형을 몰입형이라 부르고, 회피형을 거부 회피형과 공포 회피형으로 나눈다.




물론 어릴 때의 양육 방식만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이 낯선 방에서 뇌에 입력된 생존 시스템은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진다. 살아가며 겪는 각자의 환경에 따라서, 만나는 사람과 이별에 대한 반응에 따라서 나도 모르게 학습된다.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수정되고 바뀌기도 한다.


그럼 누가 봐도 안정형이 제일 좋은 거 같다. 안정형으로 바꿀 수 있을까. 결론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애착 이론에서는 훈련을 통해 안정형으로 갈 수는 있다고 말한다. 이걸 획득된 안정형이라고 부른다. 외우자. 획득된 안정형.


획득된 안정형으로 가야 하는 이유는 하나다. 바로 시간, 돈, 감정을 아끼기 위해서다. 이 세 가지는 내 삶을 굴러가게 하는 귀중한 에너지다. 불안형과 회피형은 연애를 할 때, 그리고 이별을 맞을 때 상대에게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한다.


에너지를 밑 빠진 독에 들이부으면서 "집착 쩌는 새끼", "재수 없는 새끼", "미친 새끼"로 퉁치고 만다. 내가 상대에게 그리고 스스로 낭비한 에너지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정말 무서운 건, 다음에 만나는 사람도 집착이 심하거나 회피하는 인간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 번 세게 당하고 나면, 다음 연애는 시작하기도 전에 두려움과 방어에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단언하건대 공감 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럼 외우자.


애착 이론을 통해 획득된 안정형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은, 내 과거를 객관적으로 되돌아보는 것이다.


"나는 왜 그랬을까? 걔는 왜 그랬을까?"라는 의문을 던져야 한다. 물론 어렵다. 나 모르게 무의식에서 벌어지는 생존 본능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당연한 것이라 여긴다. 그래서 전문가와 상담을 하거나,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이다. 텍스트로 나를 객관화하면, 낭비되던 그 에너지를 내 일상과 내 삶으로 다시 돌릴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외우는 걸로 시작한다. 더 이상 울고불고 매달리거나, 도망치고 숨는 데 귀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서. 집착할 수밖에 없고 숨을 수밖에 없었던 그 환장했던 행동들이 모두 살기 위한 생존 본능이었다는 걸 이해하기 위해서다.

월요일 연재
이전 03화영화 <데몰리션>과 애착이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