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되새김
2025년 4월, 산티아고 순례길 프랑스길을 다녀왔다. 글로 남기겠다는 다짐을 한 지 어느덧 1년 가까이 지났다. 유튜브에 영상을 업로드하겠다는 계획 역시 마찬가지다. 1년여 동안 편집하지 못한 영상들은 하드디스크에 쓰레기처럼 박혀있었다.
최근 들어 다시 당시의 글과 영상을 열어보기 시작했다. 다행인 것은, 쓰레기처럼 방치된 영상 속에서 그날의 내가 고스란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역시 쓰레기 속에서 진주를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재활용을 해야 하는 이유인 것 같다.
바로 생장(Saint-Jean)에서의 출발을 이야기하려다, 다녀온 지 시간도 꽤 흘렀으니 전체적인 소감과 준비물을 먼저 정리한 뒤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는 것이 순서에 맞을 것 같다.
4월 7일 출발 기준, 나의 현실적인 준비물
[필수 서류 및 현금]
여권: 당연함.
순례자 여권(크레덴시알): 생장 등 출발지의 순례자 사무소에서 2유로에 발급.
카드: 트래블월렛 카드로 필요한 만큼 충전해서 결제.
현금: 800유로를 소액으로 환전해서 들고 감 (트래블월렛으로 출금 가능).
[배낭 및 가방]
- 최소 35~40L. 간식과 식량을 넣을 여유 공간이 필수.
- 등과 분리가 될 것. 하중을 분산할 허리벨트, 우천 시 대비용 레인 커버.
- 어깨띠에 보조 주머니가 있으면 휴대폰 넣기 좋음.
- 수납공간이 있으면 유용함. 물병등 넣지 좋음
- 다이소 연결 고리 몇 개 있으면 좋음.
- 크로스백 : 외출 시 유용함
- 장 볼 때 쓸 얇은 에코백(비닐봉지로 대체 가능).
[수면 장비 및 우의]
침낭: 4월 출발 기준 경량 침낭(부피가 작아 유리함)
- 북쪽으로 갈수록 춥지만 옷을 껴입고 자면 커버 가능.
- 추위에 취약하다면 중량으로 업그레이드할 것.
판초 우의: 비 올 때뿐만 아니라 추울 때 방한용으로도 착용. 배낭 전체를 덮을 수 있는 넉넉한 사이즈 필수.
[신발 및 보조 장비]
스틱: 산길, 비탈길, 내리막길에서 유용하며 동네 개를 쫓을 때도 쓰임, 현지 구입 추천
신발 : 평소 신던 운동화면 라텍스 깔창 까는 걸 추천(5~10mm 여유 있어야 함)
트래킹/등산화 : 길들이지 않으면 물집이 생김.
숙소용 신발: 튼튼한 샌들, 조리, 슬리퍼 중 편한 것. 비가 오면 샌들이나 슬리퍼를 신고 걷기도 함.
[의류 및 생필품]
패딩 : 경량 패딩 또는 바람막이
- 북쪽의 아침저녁 추위 대비, 수면 시 착용
의류 : 속옷/상하의/발가락 양말 최소 5세트
- 속옷 : 허벅지 마찰이 생길 수 있음 목이 긴걸 추천
- 상의 : 면티 및 기능성 티 추천(없으면 입던 얇은 티 라도 상관없음)
- 하의 : 기능성 하의 추천은 하지만 없다면 얇은 작업복도 상관 없음(쇼핑몰에 많음)
- 양말 : 및 발가락 마찰이 생길 수 있음. 속옷도 기장이 긴 걸 추천
[방한 및 햇빛 차단]
모자 : 창이 넓고 끈이 달린 모자(현지 구입 추천)
손수건 : 아침 차가운 공기 차단 및 수건 대용 강력추천
장갑 : 아침저녁 방한 및 스틱 사용 시 필수
선글라스 : 햇빛 차단
[세면/미용]
- 개인 미용 및 샤워 용품(현지 구입 추천)
- 스포츠 타월 또는 얇은 수건
- 바셀린(매일 자기 전 발에 바를 것)
[생활용품]
귀마개 : 다이소 추천, 코 고는 사람 대비
손톱깎이 : 없으면 엄~~ 청 상그러움
면도기 : 건전지 사용하는 것 추천. 1회용 사서 사용해도 됨
손전등 : 헤드랜턴 보조용
식기류: 물통, 컵, 숟가락, 젓가락(포크 달린 숟가락 추천).
[전자기기]
스마트폰 및 이어폰(유선 추천)
보조 배터리: 스마트폰과 이어폰을 최소 2회 충전 가능한 용량.
충전 케이블 2M : 2층 침대 사용 시 선이 길어야 함).
나의 가장 큰 실수는 30리터도 채 안 되는 배낭을 들고 간 것이었다. 그 좁은 배낭에 노트북, 카메라, 마이크, 드론까지 쑤셔 넣었다. 나는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옷은 빨아 입지 뭐", "현지 가서 사지 뭐"
물론 필요한 건 현지에서 구입해 써도 걷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래도 제일 중요한 것은 배낭의 크기다. 최소 35리터 이상을 추천한다. 그래야 필요한 물건과 간식을 넣을 수 있다. 나는 배낭에 공간이 없어 아침을 보통 굶었다. 살이 10kg이나 빠져서 돌아왔다. 돈을 줄이려면 쌀 1kg짜리와 라면, 빵 등 부식을 챙겨 다니려면 반드시 넉넉한 배낭이 필요하다. 이유는 작은 마을에는 변변한 슈퍼나 마트가 없다. 아침 7시에 출발하면 다음 마을에 보통 2시 전후에 도착한다. 하지만 보통 식당은 14시 ~16시는 시에스타라고 해서 문을 닫는다.
혼자 다니는 경우에는 아래 방법을 추천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피로를 줄이는 현실 루틴]
늦어도 5일 차 정도가 되면 생활 루틴이 생긴다. 이 루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탁과 장 보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세탁의 현실과 요령]
알베르게의 세탁기 이용료는 보통 10유로, 꽤 비싸다. 매일 또는 이틀에 한 번씩 의류를 손세탁할 수도 있지만 잘 마르지 않고, 널어둔 옷을 걷는 것도 신경 쓰인다. 갑자기 비가 오기도 하고, 초기엔 깜빡 잊고 그냥 두고 오는 일도 부지기수다. 효율성이 떨어진다.
해결책은 상하의와 속옷을 최소 5개 준비하는 것이다.
오늘 입은 옷이 많이 더럽지 않다면 걷고 난 후 벗어두고, 새 옷을 입고 외출하거나 잠을 잔다. 잠옷과 외출복을 구분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세탁을 하긴 해야 한다. 그래서 다음 날 걷기 시작할 때 어제 벗어둔 옷을 다시 입고 걷는다. 4~5월은 땀이 많이 나지 않아 괜찮다. 하의 밑단이 더러워졌다면 그 부분만 씻어낸다. 7부 바지도 좋다.
비가 와서 다 젖었다면 또는 냄새가 난다면 비닐봉지에 싸서 배낭 깊숙이 짱박아 둔다. 양말과 속옷도 마찬가지다. 빨래를 하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알베르게에서 세탁기와 탈수기를 돌린다. 그러면 금방 마르고 스트레스도 적다.
[알베르게 예약 그리고 장보기와 식사]
체크인 하면 할 일이 많다. 샤워를 해야 한다. 빨래를 해야 한다. 밥을 해야 한다. 세탁을 해야 한다. 여기서 세탁은 최소 1주일에 한 번으로 줄였다.
그럼 알베르게에 가기 전 마트가 보일 때 무조건 장부터 봐야 한다. 샤워하고 나서 장 보면서 보며 동네 구경을 해야지 할 것이다. 그럴 상태가 안된다. 식욕이 우선순위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가 있다. 공립 알베르게는 선착순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 또 15일 차 이상되면 공립 알베르게는 공용 식당이나 취사도구가 없는 곳이 많다.
식비를 아끼려면 취사도구를 갖춘 사립으로 가야 한다. 마을마다 공립과 사립 알베르게 숙박금액 차이가 많이 않나는 곳이 더러 있다. 만약 공립에 취소도구가 있다면 땡큐다.
[도착후 시간을 효율적이게 사용하자]
보통 오후 2시~3시 전후로 사람들이 몰린다. 체크인 후 샤워 하고 장을 본 뒤 밥을 해 먹으려는 사람이 많다. 특정 시간대에는 샤워장과 주방이 심하게 붐빈다. 장을 먼저 본 뒤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바로 밥부터 해 먹는다. 여유롭게 맛있는 음식을 신경 써서 만들 수 있고, 허기를 채운 뒤에 붐비지 않는 샤워장에서 뽀독뽀독 씻을 수 있다. 배가 부르면 한적한 마을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세상에 그런 여유가 또 없을 것이다.
또는 저녁 양을 넉넉히 준비하면, 타인과 밥을 나눠 먹고 와인도 한잔 하며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즐거움도 만들어 갈 수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음식이 사람을 불러 모은다. 같이 먹자는 말 한 마디에 너는 신이된다.
결국 산티아고 순례길은 먹는 게 걷는 것이고 걷는 게 먹는 것이다. 걷기 위해 먹는 것이고 먹어서 걸을 수 있는 것이다.
완주증을 받고 나니 세상 분했다. 34일 동안의 여정이 알아볼 수도 없는 종이 쪼가리 하나로 퉁친다는 게 말이다. 뭐. 자격증도 그 동안의 노력을 글자 몇 줄로 나타 내는 거지만, 이건 너무 허무하다. 허무를 위해서 고생을 한 건 아닌데 말이다. 멋떠러지게 쓴 내 영어 이름과 날짜로 보이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779라는 숫자가 보였다. 779킬로미터??? 800킬로미터라고 알고 왔는데, 그 보다 내가 걸은 거리는 족히 1000킬로는 된다.
뭐야 내 21킬로 어디 갔어. 생각하지도 못한 카드 수수료를 떼인 거 같았다. 억울하다. 왜 779라는 숫자가 적혀 있는지 따져 묻고 싶었다. 아니 왜... 왜... 라는 내 생각을 안다는 것처럼 산티아고 완주증 발급해 주는 사무실에 계시는 한국분이 세상 다정하게 공식적인 거리라고 말씀해 주셨다.
공식적이라는 말에 내 생각도 한 번에 정리 됐다. 그래 내가 실제로 걸은 거리는 비공식적인 것이다.
내가 걸으며 한 고생은 개인적인 것이다. 허무한 감정은 내가 감당해야 할 내 몫이다.
나는 카메라가 있어 여유로움을 느끼지 못했다. 저녁이면 찍은 영상을 하드에 옮겨야 했고, 편집하고 업로드해야 했다. 그래서 이제는 여유롭게 한 번 더 가고 싶은 곳이다. 매일매일이 새로운 곳이다. 갈 수 있는 날이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