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과 목표 없는 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 준비계획 딱 맞아떨어졌었다.
신데렐라가 구두(하이힐인가) 신었는데 앞 뒤가 딱 맞아떨어지는 것만큼이나 말이다.
내 계획은 3월 19일까지 순례길에 대한 정보를 검색한 걸 토대로 내게 맞는 준비물을 하루하루 다이소를 산티아고 순례길 가는 복장을 갖춰 입고 들락 거렸다. 1000원짜리 물건을 요리조리 따지며 심사숙고해서 골라 구입하기로 결정한 그 기분은 다이소에서 죽었던 소를 다시 살리는 기분 같았다. 음뭬 음뭬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지리산 둘례길 7길을 다이소와 인터넷으로 시킨 준비물로 꽉 찬 배낭을 메고 영상도 찍고 드론도 테스트해 볼 계획이었다. 더구나 7구간은 숲 속이고 고도도 첫날에 걷는 피레네 산맥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내 계획에 마지막을 장식할 장소로 충분해 보였다.
누가 그랬는지 몰라도 누가 그랬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명언이다.
내 그럴싸한 계획은 남해편백자연휴양림으로 변경이 되었다. 난 그래도 내 계획에 일부라도 해 보려고 촬영을 했고, 드론을 날렸다. 촬영하며 내게 질문을 해달라고도 했다. 뭔가 영상에 남기려고 노력했다.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다.
내 억지스러운 모습에서 어색함이 느껴졌다. 이질감이었던가, 괴리감이었던가. 긍정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그나마 긍정적으로 포장을 하자면 유난을 떨었다.
카메라를 치웠다. 목적을 내려놓았다.
저녁에 먹는 술과 함께 하는 이야기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현재의 고민과 이상, 과거의 이야기를 하며 술자리는 끝이 나지 않았다. 솔직하고 담백한 자신들의 이야기로 밤새 술을 마셨다. 지리산 둘례길을 가는 이유는 걷기 위함도 있지만 술자리에서의 즐거움과 행복도 있기 때문에 갔었던 걸 나는 내 욕심에, 목적 때문에 잊고 있었다. 우리의 지리산 둘례길은 이런 자리였고, 이런 모습이었다. 우리의 지리산 둘례길 여행은 혼자만의 목적과 계획도, 욕심도 없는 그런 시간이었다. 그래서 더 기다려 지고 빛났다.
목적이 없이 처음 가본 봉화마을도 좋았다. 노무현대통령 기념관도 좋았다. 남해는 더 없이 좋았다. 혼자 훌쩍 가볼 만한 곳이다. 독일마을에서 먹었던 진득한 맥주 한잔에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는 목적과 목표가 분명했다. 유난이다.
목적이 없어도 될 거 같다. 목표가 없어도 될 거 같다. 욕심까지 내려 놓는다면 한 걸음 한 걸음의 순간을 즐길수 있을 거 같다. 더 없이 빛나는 행복한 한 걸음 한 걸음이 될 거 같다. 여행에 목적이 분명하고 목표가 뚜렷하면 이기적인 모습으로 변할 거 같다. 여행의 본질은 행복인걸 잊었다. 행복한 감정은 기억되고, 기억이 흐릿해 지면 추억이 된다는 걸 잊은거 같다.
작년 상해 공항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가 연착되어 우연히 만난 친구와 한국에서 연락이 돼서 얼마 전 통영과 함안, 진주을 여행했다. 그 친구는 여행에 목적이 없어보였다. 호주 국적인 그 친구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 흔한 셀카도 풍경사진도 찍지 않았다. 목적 없음이 사진을 찍고 안 찍고에서 드러나는 건 아니지만, 자기는 전혀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했다. 왜냐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지금은 알 거 같다. 그 순간을 즐겼던 거 같다. 사진으로 남는 선명한 기억 보다, 흐릿한 기억으로 추억할 수 있는 게 그 친구가 하는 여행의 본질이고, 여행에서 느끼는 행복인 거 같다.
당장 산티아고 순례길이 코 앞이지만, 오는 10월 지리산 둘례길이 더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