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가기전 유난 유난

목적과 목표 없는 산티아고 순례길

by 쌈마이작가
메고 있는 배낭은 현성형이 줬음

산티아고 준비계획 딱 맞아떨어졌었다.

신데렐라가 구두(하이힐인가) 신었는데 앞 뒤가 딱 맞아떨어지는 것만큼이나 말이다.

내 계획은 3월 19일까지 순례길에 대한 정보를 검색한 걸 토대로 내게 맞는 준비물을 하루하루 다이소를 산티아고 순례길 가는 복장을 갖춰 입고 들락 거렸다. 1000원짜리 물건을 요리조리 따지며 심사숙고해서 골라 구입하기로 결정한 그 기분은 다이소에서 죽었던 소를 다시 살리는 기분 같았다. 음뭬 음뭬 소리가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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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지리산 둘례 7구간 / 출처 : http://jirisantrail.kr/wp/?p=2858 우 피렌산맥 출처 :https://www.gronze.com/


지리산 둘례길 7길을 다이소와 인터넷으로 시킨 준비물로 꽉 찬 배낭을 메고 영상도 찍고 드론도 테스트해 볼 계획이었다. 더구나 7구간은 숲 속이고 고도도 첫날에 걷는 피레네 산맥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내 계획에 마지막을 장식할 장소로 충분해 보였다.

누가 그랬는지 몰라도 누가 그랬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명언이다.


내 그럴싸한 계획은 남해편백자연휴양림으로 변경이 되었다. 난 그래도 내 계획에 일부라도 해 보려고 촬영을 했고, 드론을 날렸다. 촬영하며 내게 질문을 해달라고도 했다. 뭔가 영상에 남기려고 노력했다.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다.

내 억지스러운 모습에서 어색함이 느껴졌다. 이질감이었던가, 괴리감이었던가. 긍정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그나마 긍정적으로 포장을 하자면 유난을 떨었다.


남해 바닷가와 잊지 못할 삼겹살


카메라를 치웠다. 목적을 내려놓았다.


저녁에 먹는 술과 함께 하는 이야기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현재의 고민과 이상, 과거의 이야기를 하며 술자리는 끝이 나지 않았다. 솔직하고 담백한 자신들의 이야기로 밤새 술을 마셨다. 지리산 둘례길을 가는 이유는 걷기 위함도 있지만 술자리에서의 즐거움과 행복도 있기 때문에 갔었던 걸 나는 내 욕심에, 목적 때문에 잊고 있었다. 우리의 지리산 둘례길은 이런 자리였고, 이런 모습이었다. 우리의 지리산 둘례길 여행은 혼자만의 목적과 계획도, 욕심도 없는 그런 시간이었다. 그래서 더 기다려 지고 빛났다.


목적이 없이 처음 가본 봉화마을도 좋았다. 노무현대통령 기념관도 좋았다. 남해는 더 없이 좋았다. 혼자 훌쩍 가볼 만한 곳이다. 독일마을에서 먹었던 진득한 맥주 한잔에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는 목적과 목표가 분명했다. 유난이다.

목적이 없어도 될 거 같다. 목표가 없어도 될 거 같다. 욕심까지 내려 놓는다면 한 걸음 한 걸음의 순간을 즐길수 있을 거 같다. 더 없이 빛나는 행복한 한 걸음 한 걸음이 될 거 같다. 여행에 목적이 분명하고 목표가 뚜렷하면 이기적인 모습으로 변할 거 같다. 여행의 본질은 행복인걸 잊었다. 행복한 감정은 기억되고, 기억이 흐릿해 지면 추억이 된다는 걸 잊은거 같다.


작년 상해 공항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가 연착되어 우연히 만난 친구와 한국에서 연락이 돼서 얼마 전 통영과 함안, 진주을 여행했다. 그 친구는 여행에 목적이 없어보였다. 호주 국적인 그 친구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 흔한 셀카도 풍경사진도 찍지 않았다. 목적 없음이 사진을 찍고 안 찍고에서 드러나는 건 아니지만, 자기는 전혀 사진을 찍지 않는다고 했다. 왜냐고 물어보려고 했지만 지금은 알 거 같다. 그 순간을 즐겼던 거 같다. 사진으로 남는 선명한 기억 보다, 흐릿한 기억으로 추억할 수 있는 게 그 친구가 하는 여행의 본질이고, 여행에서 느끼는 행복인 거 같다.


당장 산티아고 순례길이 코 앞이지만, 오는 10월 지리산 둘례길이 더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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